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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이슈/칼럼

[143호] 역사의 수레바퀴_상하수도협회 10년의 티끌

[143호] 2012년 2월 10일 금요일 발행
 

역사의 수레바퀴

상하수도협회 10년의 티끌

 

발행인 칼럼

생물과 생물 간의 관계에서 서로의 손익에 따라 4가지의 분류가 있다.

꽃과 벌처럼 개미와 진딧물 같은 상호 모두의 이득을 얻는 공생관계도 그 중 하나이다.

한쪽은 이익을 보지만 다른 쪽은 아무런 피해가 없는 관계는 편리공생, 양쪽 모두 이익을 보는 관계를 생물학적으로 상리공생이라고 한다.

반면 한쪽은 이익을 보지만 다른 쪽은 손해를 보는 남에게 빌붙어 사는 생물이나 남을 잡아먹는 동물들을 기생과 포식관계라고 말한다. 호랑이와 모기와의 관계라고나 할까.

또 양쪽 모두 피해를 보는 관계가 경쟁 관계이며 나도 손해를 보지만 남의 손해가 나보다 더 큰 악의의 관계도 있다.

경쟁과 포식 그리고 기생관계는 생태적으로 자연발생현상이 대부분이다. 유독 인간사회만큼은 의도적인 악의의 관계가 성립된다.

 

김동환
약력: 시인/수필가, 환경ISI소장, 한국작가회회원, 한국문인협회회원, 국제펜클럽회원, 환경부중앙환경자문위원, 소비자시민의모임 운영의원, (사)한국수도산업발전회 부회장, (사)한국환경계획 조성협회 자문위원
저서 : 시집 「날고있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 칼럼집「우째물꼬를 틀꼬」 논문 「황금시장 물산업의 경쟁력」

얼마 전 상하수도협회가 창립 10년을 맞아 기념식을 했다. 환경분야에서 최근 일고 있는 역사적 자료화를 위한 백서식 10년간의 묶음집도 간행했다.

환경부가 30년사를 간행하면서 자료를 구하기 어려웠던 끔찍한 체험을 하고서야 관련 기관들이 허겁지겁 20년사, 10년사들을 잇달아 간행하고 있는 것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누구나 흠결이 있겠지만 10년사에서 발자취를 망각하고 사실인 양 끼워넣기식 편집과 슬그머니 도려낸 내용들은 10년이란 짧다면 짧은 역사적 사실도 쉽게 위장되고 변질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나마 김순용 위원장이 설립 초기 당시의 위기상황에 대해-수도협회 임원들이 공무원과 정치인들을 설득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라는 지적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협회의 미래가 불확실한 가운데 열성분자 몇몇의 움직임은 그 오랜 세월 열악한 환경의 땅 위에서 뜨거운 열정과 협력을 일궈낸 많은 수도인들의 가슴을 시리고 아프게 한다.

역사는 다수의 흔적보다는 말미에 한두 명이 실체를 만들어 내는 것도 역사가 될 수도 있다는 그 사실을 알게 한다.

1원 한 장 없는 무주공산의 운영자금을 위해 수도협회 말기의 임원들은 모두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기꺼이 자금을 지원해 준 신진정공 김재호 사장, 아세아조인트 민신웅 회장, 수경산업 김선배 사장, 서용엔지니어링 박철한 사장, 일본 현지까지 동행하면서 결국 민·관·지자체가 아우르는 협회가 기존의 협회와는 다른 융합적 상생력을 지닐 수 있다고 법을 허가한 강장석 수석전문위원, 기관대표격으로 참여한 수자원공사 허태준 처장과 서울시 조성현 부장, 환경청 차장을 지내고 일본 교토대 겸임교수로 활약 중이면서 일본 현지 통역을 맡은 김정현 회장, 수도를 끔직히 사랑했던 주봉현 수도정책과장과 남궁은 상하수국장, 그리고 인생을 건 듯 오매불망 협회를 위해 평생을 종사해온 김순용 회장과 양재근 사장, 이들의 길목을 마련하고 융합적 사고로 견인차를 했던 김동환 소장 등은 꽃과 벌처럼 상호 이익을 위한 공생관계를 만들려는 집념으로 이룩한 창립공신들이다.

이들을 모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10주년 행사에 초대하여 유공포상도 하고 담소도 나눴다면 젊은 후배들에게도 떳떳하고 역사적 의의도 높았으리라 본다.

다 그럴만한 이유야 있다지만, 평생 수도인으로 살아온 수도인 일부를 배척하고 끼워 넣기식으로 얼버무려 타인의 헌신과 희생 위에 기생하는 포식관계를 형성시켜 보여주면 참 민망한 꼴인데 그걸 모르는 것 또한 역사인 듯하다.

“후진사회에서는 권력지향적인 사람과 권력을 추종하는 사람들로 득실댄다.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군림하려는 미친 사람들도 많다. 역사는 진보한다. 역사는 정의이며 역사는 늘 정의의 시대로 가고 있다. 역사의 정의는 ‘평등’과 ‘평균’의 공동체로, ‘사랑’과 ‘평화’의 인간으로 가게 한다.”

어느 취래원 농부의 말이다.

옳고 그름을 바르게 말하지 못하고 침묵하거나 방관하는 것은 명백한 동조며 야합 몰이와 같은 패거리 문화의 답습이다. 균형과 형평을 이유로 끼워넣기식 국내 정치판의 한 모습을 답습하고서야 어찌 정치를 염려하고 협회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할 수 있을까.

협회의 활동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그 깊이만큼이나 균형감각도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
악의 축이 되는가, 선의 축이 되는가. 그 기로에서 선택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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