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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이슈/칼럼

[139호] 쪽방촌과 동장군

[139호] 2011년 12월 7일 수요일 발행

 

쪽방촌과 동장군

 

발행인 칼럼

남산을 돌아 국립극장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잃어버린 낭만을 주워 담게 한다.

황혼녘 서울 전경 끝자락에 하나 둘 켜지며 반짝이는 빌딩숲과 네온사인은 마치 서울 전체가 영화관인 듯하다. 노란 은행 단풍도, 떨어져 뒹구는 낙엽도 남산을 더욱 황홀한 장소로 만드는 주역이 된다. 

서울 야경의 전망지이며 청와대가 마주하는 남산 아래에 우리나라 최대의 쪽방촌이 밀집되어 있다.

살인자 태섭은 도피생활 중에 공소시효를 얼마 남기지 않고 만나게 된 수절과부의 지극한 사랑으로 변신하고 검은  장갑과 주석이 아들과 함께 꼬방동네를 떠난다는 내용의, 배창호 감독, 안성기 출연, 이동철 원작의 「꼬방동네 사람들」.

꼬방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는 황석영 원작, 이장호 연출 「어둠의 자식들」이 80년대 초반 우리의 마음을 울렸던 적이 있다.

 

김동환
약력: 시인/수필가, 환경ISI소장, 한국작가회회원, 한국문인협회회원, 국제펜클럽회원, 환경부중앙환경자문위원, 소비자시민의모임 운영의원, (사)한국수도산업발전회 부회장, (사)한국환경계획 조성협회 자문위원
저서 : 시집 「날고있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 칼럼집「우째물꼬를 틀꼬」 논문 「황금시장 물산업의 경쟁력」
 
「어둠의 자식들」은 주인공 이동철이 46년 경기도 포천에서 출생, 결핵성관절염으로 대퇴부를 절단하고 불구로 신설동, 양동 등 빈민가와 창녀촌을 전전하며 살아온 인생의 드라마를 메모하듯 쓴 것을 소설가 황석영이 소설 ‘어둠의 자식들’로 세상에 상제 했고 이것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출판사가 직접 이동철에게 쓰게 한 소설이 「꼬방동네사람들」로 이 두 권의 책은 모두 이동철의 삶을 조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20년 후인 2000년 초 창작과 비평사에서 좋은 어린이책 공모에 당선된 김중미 창작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나오게 된다.

괭이부리말은 인천 만석동 판자촌을 지칭하는 말로 작가 김중미 씨가 87년부터 괭이부리말에서 살며 지역운동과 공부방을 운영하던 작가의 생생한 경험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초등학교 5학년인 숙자와 숙희 쌍둥이 자매를 중심으로 가난한 달동네의 구석구석을 착실하게 그려나간 동화형 소설이다.

어둠의, 꼬방동네 등 80년대의 소설은 판자촌과 쪽방이 어우러져 힘들었던 당시 기성세대의 삶과 애환, 사랑과 빈곤으로부터의 탈피를 위한 시대상황의 축소판이었다.

해방과 전쟁이란 극한적 현실을 차고 나가며 우리들 삶의 언저리에서 숨기고 싶은 그러나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빈곤으로부터 오는 어쩔 수 없는 현실과 좌절, 갈등과 분노를 향한 어른들의 몸짓이었다.

반면 2000년 초 등장한 괭이부리는 부모와의 생이별이라는 아픔을 빈곤한 집단 속에서 동질적인 유대관계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결국 가정으로 돌아온 아버지와 어머니를 향해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동심의 사랑을 실행하는 청소년들의 내면을 비춤으로써 찡한 감동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세계를 걱정하고 아프리카의 기아와 허덕이는 물 한 모금을 간절히 갈구하는 지구촌을 염려하는 21세기 한국에서도 쪽방촌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남산을 기점으로 종로, 중구, 용산, 영등포구 등 4개 구에만도 288개의 허름한 쪽방 건물에 쪽방 수만도 3,508개로 한 가구 평균 13개의 방에 한 명씩 살아가고 있다.

 80년대는 가족과 이웃의 소통이 있고, 2000년대의 결손가정이지만 아이들의 건강한 눈빛이 살아 있다면 지금의 쪽방촌 사람들은 내일이라는 희망 조차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환경관련 연구원에서 기후변화에 대비한 국가전략연구에서 겨울철 에너지의 낭비가 상대적으로 심하고 에너지 효율도 저조한 지역이 쪽방촌 등 빈민지역이어서 이들 지역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실행되지 않는 한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국민적 실현은 매우 어렵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런 일환으로 서울시의 조직 중 특별회계로 운영되는 상수도 본부가 지난해 극심한 한파로 수도계량기와 관로 파손으로 인한 겨울 홍역을 사전예방하고 안정적인 급수를 위한 쪽방촌에 대한 사전조사가 시행되었다.

그 결과 쪽방 수는 3천 개가 넘는데 계량기 수는 그 10분의 1인 300개 정도로 1개의 수도계량기를 통해 10가구가 사용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들 소외계층에 대한 물 관리를 비롯한 각종 에너지의 낭비적 요소를 차단하고 개선해주는 것도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자상한 복지정책이라 본다.

서울 중심, 행정부와 시청이 있는 광화문과 남산을 아우르는 핵심지역에 우리의 쪽방촌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어 또다시 이어지는 쪽방촌 이야기가 영화나 소설로 다시 등장하여 진정한 복지정책의 말미를 장식하지 않을까.

남산의 쓸쓸한 겨울 하늘이 더 더욱 시립게 느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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