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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 교육/여행

<134호>[연재]한국의 다리(18)

[134호] 2011년 9월 23일 금요일 발행

 

수표교(水標橋)

 

 

이 다리는 朝鮮朝 태종(太宗) 26년(1406)에 인부 600명을 동원, 인공으로 수로를 뚫은 개천(開川) 청계천(淸溪川)에 가설되었던 다리 중의 하나로서 서울 성내 開川에 흐르는 수량(水梁)을 측정(測定)하는 시설(施設)로 다리 돌기둥에 강(康).진(辰).지(地).평(平)이라는 수준(水準)을 새기고 물의 깊이를 재어 홍수(洪水)에 대비(對備)하였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수중주석표(水中主石標)’라 하고 있어 여기서 다리의 이름을 딴 것임을 알 수 있다.

 

수표교는 세종4년(1422) 제2차 개천공사 때 목교에서 석교로 교체되었다. 이때의 다리 이름은 근처에 우마시전(牛馬市廛)이 있어서 마전교(馬廛橋)라고 했다. 세종23년(1441) 다시 서쪽에 수표(水標)를 세우면서 다리 이름도 수표교로 바뀌었다. 이 수표교는 500년 넘게 청계천을 지키고 있다가 1959년 11월 청계천 복구 공사 때 철거되어 세검정이 있는 신영동에 갔다가 1965년 지금의 장충단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표교는 화강석으로 만들었고 현대식 다리와 마찬가지로 평교이며 양쪽에 돌난간을 갖추고 있다. 9개씩 5줄로 세워진 교각은 모두 45개, 기둥위에 길이4~5m, 폭 1m나 되는 길다란 석재를 걸쳐 놓고 그 위에 가로로 4줄씩 돌을 깔았다.

 

수표교는 역대 임금마다 자주 건너 다니던 다리인데, 이유는 지금의 중구 저동 중부경찰서 자리쯤에 있었던 영희전(永禧殿)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역대 임금의 영정을 모시고 해마다 설날, 한식, 단오, 추석, 동짓날 등 오속절(五俗節)에 임금의 전배(展拜)가 있었으므로 거둥 행렬은 으레 이곳 수표교 다리로 왕래하였다.

 

<천년 후, 다시 다리를 건너다> 글 | 손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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