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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 교육/여행

<130호>[연재]한국의 다리(16)

 

[130호] 2011년 7월 21일 목요일

고막천 석교

 

 

마을에서 떡을 만들어 이 돌다리를 건너 나주와 영산포에 떡을 팔았다하여 일명 “떡다리” 혹은 “똑다리”라고 불리운다.

 

이 다리의 돌쌓기 방식을 살펴보면, 다듬거나 모양을 내지 않은 화강암 석재 4~5개를 척척 포개어 교각을 만들고 네모난 돌을 한두 개 받쳐 굄돌로 삼았다. 그 위에 다시 시렁돌을 올렸는데 이 돌은 노면보다 양쪽으로 50cm 가량 튀어나와 있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다리의 날개처럼 보인다.

 

교각위에는 넙적한 돌을 얹어 노면(路面)을 만들었다. 양쪽 가에 난간돌을 6개씩 놓고 그 사이에 두 줄로 빈틈없이 판석을 깔았다.

 

다리의 길이는 25m, 폭 3m, 높이 2m가 넘으며 옛날에는 수수, 조를 널어도 한 알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상판에 틈이 없었다고 한다. 원래 다리의 길이는 현재(25m)의 배 이상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동학난에 관군이 쳐들어 올 때 다리를 뜯어놓았다가 다시 복원시키면서 축소되었다는 설도 있다.

 

일제시대에 2회 보수를 하면서 엉성하게 조립하여 본래의 품격을 잃었지만, 원형이 많이 훼손된 오늘날에도 무수히 거듭되는 조석 간만과 홍수의 난무에서도 유실됨이 없이 원상을 유지하고 있는 석교의 구상에 감탄을 아니 할 수 없다.

 

오랜 세월 풍화로 깎이고 패었지만 지금도 이 다리는 마을에서 들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원종 14년(1273년)에 무안 승달산에 있는 법천사의 도승 고막대사가 제세의 사업으로 도술을 써서 이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2002년도 보수공사 시 바닥 기초나무 말뚝 탄소연대 측정결과, 최소한 고려 말로 추정되어 축조연대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돌다리임을 증명하였다.
다리의 언덕에는 고막대사비를 비롯하여 아직도 4개의 빗돌이 남아있어 그때의 영화를 짐작케 한다.

 

<천년 후,  다시 다리를 건너다> 글 | 손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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