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호] 2011년 6월 24일 금요일 발행
태안사(泰安寺) 능파각(凌波閣)
동리산 자락에 위치한 태안사는 통일신라 말기 9산선문의 하나로 신라 경덕왕 원년(742)에 세 스님에 의해 개창되었다. 조선시대에 불교를 억누르는 정책 바람을 탈 수밖에 없었으나, 효령대군이 머물며 왕가의 원당으로 삼기도 하였다.
이곳 계곡의 물과 주위경관이 아름다워 건물을 능파(凌波)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신라 문성왕 12년(850) 혜철선사가 창건하고 고려태조 24년(941) 광자대사가 중수하였으며 그 후 파손되었던 것을 조선영조 43년(1767)에 복원하였다. 또한, 이 건물의 특이한 점은 교량과 금강문과 누각을 겸했다는 점이다. 사찰의 문들은 대부분 평지에 위치하지만 본 능파각은 다리이면서 문루(門樓)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부터 나무다리를 많이 놓았으나 그 수명이 길지 못해 지금은 거의 남은 것이 없다. 이러한 나무다리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져버린 형태이다. 능파각이 세워진 것은 영조 13년인 1737년이지만 그 뒤로 여러 차례에 걸쳐서 고쳐지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이 건물은 일주문보다도 앞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이는 주변의 충혼탑과 연못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일주문을 능파각보다 위로 옮겨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 능파각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계곡의 물길을 건너는 다리형식을 빌린 건물이다.
“태안사사적(泰安寺事蹟)”에 의하면 이 건물은 건륭(乾隆)2년(1737년), 건륭(乾隆)31년(1766년), 건륭(乾隆)38년(1773년), 가경(嘉慶)14년(1809년), 성풍(成豊)11년(1861년), 대정(大正)12년(1923년)등의 중수(重修)혹은 중건(重建)의 기록이 나온다. 그중에 현재와 같은 공포의 모습을 하게 된 것은 18세기의 중수에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천년 후, 다시 다리를 건너다>글 | 손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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