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호] 2011년 5월 27일 금요일
■ 국회 G20 환경현장 |
난항 끝 타결, G20 공동선언문
핵물질유출 사고 대비 강제규정 삭제
환경문제 대응책 의견 충돌로 알맹이 없어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구호성 합의로 마무리
공동선언문 채택회의중인 각국 담당자들(왼쪽부터 IPU 앤더스 사무총장, 캐나다의 미첼, 러시아의 이고르, 일본의 타다시 히로노, 한국의 조윤선 의원)
의장 간 회의가 펼쳐지던 19일 오후, 국회의사당 한편에서는 「G20 서울 국회의장회의 공동선언문」을 확정짓기 위한 24개국 담당자 회의가 열렸다.
박진 의원이 의장을 맡은 가운데 조윤선 의원을 비롯한 25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각국 담당자들은 이번 ‘공동선언문’에 자국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번 공동선언문(G20 Seoul Speakers’ Consultation Joint Communique)은 ‘안전한 세계, 더 나은 미래 : 다음 세대와의 약속’이라는 구호 아래 총 12항으로 구성된 25개국의 합의문이다.
이 선언문에는 G20 국회의장회의의 정례화와 개발 격차 해소를 위한 각국의 공동체 의식 강화, 기후변화·재해·테러 등에 대한 공동대응책 마련(특히 핵물질 유출 사고에 대비한 안전기준 설정), 민주주의와 인권 보호, 분쟁해소를 위한 대책 강구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번 공동선언문이 확정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회원국들이 저마다 이해관계와 입장이 달라 의견 충돌은 불가피하였다.
각국의 의견이 엇갈린 근본 원인은 이번 공동선언문의 성격을 바라보는 시각차 때문. 공동선언문이 단순히 회원국 간의 공조를 다짐하는 차원의 것이냐, 아니면 공동의 법적 규제를 마련하는 차원의 것이냐를 놓고 입장이 갈렸다. 규제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제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환경문제에 대한 공동대응 시스템 마련을 촉구하는 조항들에서 이 시각차는 여실히 드러났다. 이것이 강제적 규제를 제정하자는 것인지, 단순히 자발적 노력의 촉구를 강조하는 것인지를 따지는 공방이 장시간 펼쳐졌다.
쟁점이 불거진 것은 일각에서 아직 ‘G20 국회의장회의’에서 구체적 사항들에 대해 명확히 합의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정치적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사항들에 대해 각국 국회의장들이 가진 권한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부터다. 규제사항의 제정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G20 국회의장회의’는 입법 기관의 수장들이 모이는 자리이므로 법률제정의 기반을 마련하여 자국 정부의 적극적 움직임을 촉구하는 것이 이 회의의 본연의 임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논의는 결국 위험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기울었다. 대표단장들에게도 권한의 한계가 있는데 더욱이 각 대표단 내의 선언문 담당자들끼리 하는 회의이기에 모든 결정에 있어 극도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선언문의 전체적인 성격은 회원국들에게 관련법률 제정을 통해 강제성을 요구하기보다는 인도적 차원에서 자발적 노력을 촉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결국 이번 국회의장회의 ‘G20 공동선언문’은 회원국 간의 굳건한 ‘약속’의 성격이 강하며,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합의’의 성격은 많이 희석되었다고 평가된다.
예를 들어 제3항의 ‘자연재해에 대응한 공동의 예방과 구호의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문장은 ‘노력(efforts)’이라는 단어를 넣어 ‘예방과 구호 노력의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로 수정하여 그 강제성을 희석시켰다.
제4항의 ‘원자력 안전규제에 관한 이슈에서도 최고수준의 공동기준을 만들자’는 문장에서 ‘공동기준을 만들자’는 부분은 삭제하고 ‘협력 강화를 위해 노력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부분을 넣어 국제기준을 설정하는 문제는 제외시켰다.
또한 제5항에서는 ‘교토의정서’를 계승하자는 내용은 빠지고 ‘칸쿤 기후변화회의’에서 합의된 원칙을 강화하자는 내용만을 넣었다. 이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으로 가자는 뜻도 있지만, ‘교토의정서’라는 구체적 협약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G20 국가들의 합의가 아직 명확히 확정된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이 너무 많이 삭제되면 자칫 선언문 자체가 공허한 외침이 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약속이 추상적일 수록 그 약속은 지키기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일본, 원전붕괴는 참사가 아닌 사고다
한편, 이번 공동선언문 채택 회의에서 제3항과 제4항의 구체적 당사자인 일본 측의 반응이 눈길을 끌었다.
일본 측은 자연재해를 정의하는 문구에 일본지역에서 발생한 ‘쓰나미와 지진’이라는 구체적인 예시를 넣어 자국에서 일어난 자연재해를 강조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특정 재해에 대한 언급은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반대하였다.
결국 제3항에는 ‘자연재해’라는 포괄적인 의미의 단어만 사용되었다. 그 대신 제4항에서는 일본 원자력발전소 참사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핵 시설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공동 노력을 다짐했다.
그런데 브라질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일본 원전사태를 재해(catastrophe)로 표현한 반면, 당사자인 일본 측은 사고(accident)로 표현하길 원했다. 참사, 대재앙 등의 뜻이 강한 ‘catastrophe’라는 표현을 회피하는 모습이었다.
일본은 지진과 쓰나미는 대표적 ‘자연재해’로 강조하면서, 원전붕괴에 의한 대참사는 재해가 아닌 단순히 ‘사고’로 표현하여 그 심각성을 축소시키려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뛰어난 영어실력과 의장으로서의 리더쉽을 발휘하여 좌중을 압도하며 회의를 진행한 박진 한나라당 의원
박진 의원, 영어실력과 카리스마 돋보여
의견이 평행선을 달릴 때마다 결정적으로 논의를 마무리 지은 것은 항상 의장을 맡은 박진 의원이었다. 그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들에 뒤지지 않는 빼어난 영어실력과 의장으로서의 카리스마를 발휘해 제한된 시간 내에 국가 간 의견조율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이번 회의의 가장 큰 목적은 공동선언문에 모든 참여국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면서도 간결하고 명확한 표현들로 강력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선언문을 만드는 것이었다. 박 의원은 구구절절 구체적 사항들을 열거하기보다는 포괄적 문장으로 간결한 선언문을 만드는 쪽을 택했다.
결국 선언문은 다소 추상적인 문구들로 이루어지게 되었지만, 결과를 떠나 각국의 의견을 기울어짐 없이 수용하고 핵심을 종합하여 강제성 없이도 제한된 시간 내에 얼마나 잘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 박 의원의 능력은 높이 살 만하다.
D.H.Kim
심화섭 기자(shs@e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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