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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 교육/여행

<126호>[연재]한국의 다리(13)

[126호] 2011년 5월 27일 금요일

 

청원 미천리 석교

 

 

청원 미천리 석교(石橋)는 문의(文義)지방 최초의 석교(石橋)로 길이 5.4m, 폭 2.9m, 두께 18m이며 설립연대(設立年代)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로 추정되는데 교각 내에 을묘이월(乙卯二月)이라는 각자가 남아있다.

 

문의읍지(文義邑誌)에 『홍전외 석교이간(紅箭外 石橋二間)』이라고 기록돼 있으며 1979년 대청댐 준공으로 인한 수몰(水沒)로 1980년 2월에 문산관(文山館)내 연못에 이전하였다가 또다시 2003년 3월에 이전해 현재는 문의문화재 단지 내에 안치(安置)돼 있다.

문의 지역과 석교에는 내려오는 전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 지명과 관련된 전설을 하나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고려 초엽 일륜대사가 절을 세울만한 곳을 찾아다니던 중 양성산에 올라서 주변을 둘러보다 산 아래 마을에서 놀라운 기운을 느끼게 되었다.
이때 일륜대사가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사방의 정기가 이토록 영명하니 장차 문(文)과 의(義)가 크게 일어나 숭상될 것이다. 육로와 수로가 사통팔달 했으니 부락과 인물이 번성하리라. 그러나 어이하랴! 향후 천년 뒤에는 물 아래 잠길 것을. 그때 이르러 새 터전을 마련케 되리라”하고 예언하였다. 이때부터 이 지역을 문의 또는 문산(文山)으로 부르게 되었다.

 

석교에서는 다른 지방과 같이 정월 14일 저녁에 해가 지기 전 일찍 오곡밥을 먹은 후, 사람들은 내(川)에 놓은 다리 위를  자기 나이와 같은 회수를 내왕하며 한해의 안녕과 액막이를 기원하는 다리밟기를 하였다. 3.1운동 당시 미천 석교에 미천리 주민이 다수 모여 만세를 불렀던 장소이기도 하다.

 

문의지역 주민은 이 돌다리는 상장, 산덕, 구룡마을 주민들과 초등학생들의 통학로로 유용하게 이용되었으며 가을이면 볏단을 한가득 실은 달구지가 거뜬히 통과할 만큼 튼튼하게 축조된 석교라고 회상한다.

 

<천년 후, 다시 다리를 건너다> 글 | 손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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