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숭총림 수덕사 이야기…3
백제 시대 창건한 덕숭총림 수덕사
백제, 고려, 조선,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사찰
문헌에 나타난 백제 사찰로 흥륜사, 왕흥사, 칠악사, 사자사, 미륵사, 제석정사 등 12개 사찰이 있지만 대규모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사찰로는 수덕사가 유일하다. 수덕사 창건 시기는 백제 위덕왕(554-597)재위 시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덕사가 위치한 덕숭산은 북으로 가야산, 서로 오소산, 남동간에는 용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계곡에 물이 많은데 수덕사에서 15분만 달리면 서해와 만날 수 있다.
삼국유사와 속고승전에 백제의 고승 혜현스님이 수덕사에 주석하며 법화경을 지송하고 삼론을 강의한 기록이 있다.
수덕사가 위치한 덕숭산은 북으로 가야산, 서로 오소산, 남동간에는 용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계곡에 물이 많은데 수덕사에서 15분만 달리면 서해와 만날 수 있다.
삼국유사와 속고승전에 백제의 고승 혜현스님이 수덕사에 주석하며 법화경을 지송하고 삼론을 강의한 기록이 있다.
충렬왕 34년(1308)에 건축된 대웅전, 통일신라 말기 양식을 모방한 삼층석탑, 출토된 고려자기, 와당 등의 유물이 고려시대의 체취를 맛보게 한다. 1937~40년 동안 대웅전 해체, 보수 당시 대웅전 동측 내부전면에 기록된 단청개칠기에 의하면 중종 23년(1528)에 대웅전 색채보수, 영조 27년(1751), 영조 46년에 대웅전을 보수했고 순조 3년(1803년) 대웅전 후면의 부연보수와 풍판개수 등 4차례 보수를 한 기록이 있다. 1673년 조성된 괘불도 조선시대의 맛을 보여주고 있다.
근대시대에서는 경허, 만공 대선사의 선풍이 분 것도 이곳 수덕사이다. 경허성우(1846~1912)는 의왕시 청계사에서 출가,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라는 질문에 깨달음을 얻은 한국 선의 중흥조인 인물이다. 만공월면(1871-1946) 선사는 경허의 제자이며 선지식인으로 정혜사, 비구니가 참선하는 견성암을 중창했다.
1911년 조선총독부 사찰령에 의해 충남 마곡사의 말사였던 수덕사는 62년 비구, 대처통합으로 조계종 제 7교구 본사로 승격 50여개 말사를 거느린 덕숭총림으로 위상을 정립한다. 수덕사는 일주문 편액에 동방제일선원이란 문구가 각인되었는데 경허, 만공스님의 선자종찰로서의 총림으로 일어서게 된다.
덕숭산에는 정혜사, 능인선원이 있으며 우리나라 대표적 비구니 선원인 견성암에는 1백 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참선을 하고 있다. 96년에는 수덕사 승가대학을 개설했으며 우담바라합창단 등 신도회가 활발하다.
견성암 법당에 들렀을 때 우거지인지, 냉이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구수한 나물국 냄새가 난다. 견성암 법당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가야산은 눈이 쌓인 설경과 어울려 평화롭고 인자하기까지 하다.
법당을 나오는데 노 비구니 스님이 작은 그릇을 들고 어디론가 향한다. 노스님은 견성암 초입에 마련된 작은 돌 위에 밥알을 쏟아 놓고 가신다. 공양을 하고 난 몇 알의 밥알을 새들에게 보시하려는가보다. 공양시간을 모르는지 아직 새들은 보이지 않고 소나무 가지 위에 앉았던 눈뭉치가 날아와 돌 옆에 사뿐히 앉는다.
연구소 작업실에서 길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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