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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이슈/칼럼

천연기념물 지정으로 사라진 소똥구리

천연기념물 지정으로 사라진 소똥구리

생태현상과 정책의 융합을

 

 

어린 날 외가인 이천 백사면에서의 방학생활은 푸성귀 나는 기억으로 자연의 체취를 그대로 남겨 준 꿀맛 같은 경험이었다.

 

여름은 참외와 수박을 먹으며 병아리를 돌보는 닭들의 종종거림, 돼지 먹이주기와 소 풀 먹이기, 쌀알을 바구니 속에 감추고 참새 잡기, 집구렁이와의 만남, 반딧불이를 잡아 사랑채에서 펼친 반딧불이 불꽃놀이, 개구리 뒷다리 구워먹기, 외할머니와 장에 다녀오다 벌에 쏘여 된장을 발랐던 일이며 그렇게 나에게서 시골풍경은 어린 날로 마감했다.

 

시골에서 소똥 굴리는 소똥구리는 지천이었는데, 이제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그 소똥구리를 볼 수가 없단다. 지난해 순천시 월등면에서 멸종위기 2급 곤충인 애기뿔소똥구리(학명 Copris tripartitus Waterhouse)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그래서 반갑다.

 

소똥구리는 세계적으로 5천여 종이며 똥을 굴리는 종은 2백여 종에 불과하단다. 우리나라에서는 33여종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소똥을 굴리는 것은 소똥구리, 왕소똥구리, 긴다리소똥구리 등 3종만이 똥을 굴린다. 일본에도 42종이 있는데 소똥을 굴리는 것은 한 종도 없단다.

 

삼성운반선에서 충돌한 기름이 흘러나와 서해를 오염시켰던 신두리 해안에 바로 이 왕소똥구리가 살았었다.

사구자체가 보전할 가치가 있다고 하여 2001년 신두리해안을 천연기념물 제 431호로 지정했다. 그리고 민간인의 출입제한과 각종 상가 등 교통로 등을 차단하면서 보호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바로 이 같은 강력한 보호조치 속의 신두리에서 왕소똥구리가 사라져 버렸다.

 

소똥구리의 양식은 소똥이다. 그런데 이 신두리 지역의 소들이 사라지고 소똥도 사라져 결국 소똥구리는 먹이사슬의 고리가 끊겨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뒤늦게 이를 깨달은 환경부는 왕소똥구리 복원사업으로 소를 기르고 소똥을 다시 공급하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썩은 소똥을 무더기로 쌓아놔서는 소똥구리가 생존할 수 없는 일. 결국 먹이를 찾지 못한 소똥구리는 다시는 신두리해안을 찾지 않았다.

 

우리는 모든 정책에서 문제점을 알고 대책을 세운다지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관리정책과 기본적인 조사연구가 없이 건수위주로 정책을 펼쳐 실패한 사례가 종종 많다. 동강댐 백지화도 그 한 예다. 동강댐 건설을 반대한 환경론자들의 값진 승리였지만 결국 동강은 백지화이후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여 리프트 등 산발적이고 무계획적인 관광레저 인파로 동강을 오염시키고 말았다.

 

정수장의 수질관리를 위해 탁도계를 의무화 설치 시행했으나 법이 앞서가 국산 기업은 도산하고 외국산 탁도계가 도배를 한다거나 신기술허가가 워낙 높고 깊어 원천기술기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샘물정책은 유망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대기업화되어 하향평준화 된 것 등, 정책과 현실의 괴리에서 파생되는 것은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되고 있다.

 

신두리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면 소똥구리의 먹이사슬을 파악하고 그곳을 입구에서 순환하는 코스를 소달구지로 견학코스를 만들어서 즐거운 경험을 통해 환경교육이 되는 생태학습관으로 매우 훌륭했으리라.

그리고 왕소똥구리의 멸종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 감히 추정해본다.

 

목장의 소똥을 무더기로 실어다 퍼부어 놓으면 소똥구리가 이것을 굴릴 것 같은가. 소똥구리는 신선한 곤충이다. 소가 배변하자마자 그 냄새를 맡고 찾아와 먹이를 굴리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버무려 일상의 양식을 만드는 곤충인데.

 

인간의 한계와 경망된 짧은 생각, 그리고 자연을 살필 줄 모르는 몰상식이 결국 이 땅에서 소똥구리를 보고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책속의 사진에서야 볼 수 있게 했다는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 인간은 소유함으로써 고뇌가 쌓인다지만 자연은 자연그대로 존재의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위대한 생명을 잇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소똥구리에게 진정 죄스러움을 용서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