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이라는 것은 앞에 놓인 구덩이를 하나하나 모두 채우지 않고는 더 나아가지 않는다.
물이 이렇게 큰 바다까지 이르는 과정은 마치 군자가 도에 뜻을 두고서 덕을 하나씩 이뤄나가 결국 원대한 목표에 이르는 것과 같다.’
맹자의 말씀이다.
한해가 마무리 되어간다.
인생이 웅덩이를 하나하나 채워가며 한해를 마감했는지 스스로를 짚어본다.
올 한해 꼼꼼히 매듭을 지어 온 가계부도 마지막장이다.
요즘에는 가계부 구하기가 어려운가보다.
하긴 컴퓨터에 내장된 엑셀 가계부로 많이들 사용한다니 주부들에게서 일기장처럼 하루의 메모를 칸칸히 채워가던 가계부가 컴퓨터에 점령되고 말았다.
유리트, 알맹이 가계부, 좋은 가계부등 나의 정서상 헷갈리는 가계부 종목이 나열되어 있다. 인터넷에도 가계부를 구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담겨있다.
어떻게 구할 수 있냐는 주문도 무성하다.
가계부.
우리나라 현대산업사회에서 한 가정의 이정표처럼 미래의 설계도면처럼 잃어버린 편지처럼,행복과 슬픔, 아쉬움과 그리움, 그리고 집안의 평온과 미래를 꿈꿔오며 설계하던 그 가계부가 사라지는 길목 끝에서 숨박꼭질을 하고 있다. 생명보험회사마다 발행하고 농협, 은행, 여성잡지의 신년 부록으로 인기높던 가계부는 이제 골목길 옷 수선가게처럼 찾아 나서야 한다.
안방문화의 또 다른 기록문화로 2000년대의 전환점에서 사라진 인기 드라마 같은 일기장 가계부.
이 시대 1500년 이상 이어온 처가살이의 아픔과 고통은 이렇게 노래로 전해져 온다.
‘귀먹어 삼년, 눈 어두어 삼년, 말 못하여 삼년, 석삼년을 살고 보니 배꽃 같은 요 내 얼굴, 호박꽃이 다 되었네’ 시집살이 라는 노래 중의 일부다.
옛 왕실에서 왕비들은 가계부를 썼을까.
가계부는 근·현대사 각 가정의 훌륭한 집사였으며, 귀중한 자산이요 또 다른 기록문화지만 시대적 물결의 흐름을 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웅덩이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채워가며 바다로 물꼬를 틀던 물처럼 하루하루를 나는 빠짐없이 채워나가고 있었을까.
하루가 튼실하게 채워지고 한주가 탄탄히 엮어지고 한 달이 넉넉하게 채워져 그렇게 한해를 마무리하였을까.
기축년 2009년은 환경분야에서는 그 어느 해보다 통합의 해였다.
상품진흥원과 환경기술원이 10여 년 만에 통합되었고 환경공단과 자원공사가 통합되어 병인년부터 새로운 가계부를 써야 한다.
환경산업분야도 환경컨설팅분야가 새롭게 조명되어지고 있다.
G7으로 시작된 환경신기술 사업도 20여년을 맞이하고 있다.
본인이 제안하여 추진한 환경30년사도 신년 초에는 탄생한다.
상수도본부로 발족한지도 20년을 채웠다.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한강 등 5대강의 하천정비 사업도 본격화 된 해였다. 녹색성장이란 깃발을 올렸으며 상수원보호보다는 상생적 방향전환도 기축년의 가계부에는 적혀있다.
환경 가계부 올해의 마지막장에는 어떻게 한해를 마무리하는 글을 남기고 새 해를 기원하는 다짐을 담아낼까.
30년 전 공해 시대에 환경청을 발족시켰고, 20년 전 물문제로 상수도본부를 발족 시켰다.
새로운 조직이 탄생됨도 기뻐 할 일이지만 채워지지 않은 웅덩이는 결국 썩고 곪을 뿐이다.
빈자리가 유난히 많은 가계부를 들춰보며 맹자님 말씀이 새삼 각인되는 기축년의 12월이다.
어린 날 어머니는 가계부를 쓴다.
콩나물 100원, 두부 30원, 큰애 참고서 1500원, 아이들 버스 표 구입비 1200원
옛날 어머니의 가계부에는 그런 숫자가 나열되고, 아래 칸에는 어김없이 숨김없는 짧은 일기가 쓰여 있다.
‘둘째애가 아프단다. 코피를 많이 쏟았다. 어지럽다고 한다. 내일은 병원을 데리고 가야겠다. 아프지 말아야 하는데 걱정이다.’ 그렇게 차곡차곡 일년을 가둬둔다.
한해의 이야기, 한해의 속 쓰림이 한해의 기쁨이 모두 담겨있다.
한 시대의 소중한 가족 문화유산 가계부가 사라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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