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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 교육/여행

우리나라 속살보기-1부안편

기생 매향의 시가 숨 쉬는 부안
새가 그렸다는 내소사 탱화도 감상하며
채석강, 격포, 변산 8경도 휘돌아보고
 
태풍 갈매기가 대만주변을 서성인다는 기상예보를 듣고 서해안고속도로로 달렸다.
태풍 전야에는 황홀한 석양빛의 광란을 훔쳐 볼 수 있다는 기대치의 충분한 확보를 위한 발상이다.
전 동자부 진념 장관 의 고향인 줄포까지 달리는 고속도로는 주말인데도 한적하다.
행담도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으며 저녁 잔살에 가리 운 서해대교의 스산한 모습은 태풍전야의 고요한 평화가 있었다.
부안 태생 매향이란 기생이 자주 갔었고 백제시대 백제의 부흥운동이 전개되었던 개암사도 볼만하지만 이번에는 능가산 내소사로 향했다.
실학자며 반계수록을 집필하면서 이곳에서 20여 년 간 은둔한 반계 유형원(1622-1673)선생의 유적지와 순청자, 상감청자를 굽던 유천리 도요지등은 부안의 소중한 역사적 자취이다.
개혁과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결국 복귀도 못하고 비운의 천재로 살아간 허균이 전라도 세금을 거둬들이는 전운판관시절 부안을 찾았던 기록인 -조관기행-에는 기생 매향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 한편이 비문으로 각인되어 있다.
 
-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 하고 / 맑은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하네 /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세계로 내려오더니 /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 무리를 두고 떠났네 /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기만 하고 / 비취색 치마엔 향내가 아직 남아 있는데 /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 때쯤이면 / 그 누구가 설도의 무덤곁을 지나려나 /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허균이 쓴 시한편이다.
그렇다면 매향은 어떤 여인일까. 서화담과 황진이의 연정보다 더욱 관심을 모은다.
궁벽한 변산반도의 기생에 지나지 않은 매창의 묘지는 군청에서 문화예술회관으로 가다보면 매창뜸이란 곳에 있다. 한낮 기생이면서도 그의 죽음을 애도한 돌비석이 그를 추도하는 후세에 의해 두 번이나 세워져 매창의 기와 예, 그 품격을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매창이 ‘취중객’이란 제목으로 쓴 시 한편을 소개한다.
 
- 취한 손님이 / 명주 저고리 옷자락을 잡으니 / 손길을 따라 명주 저고리 / 소리를 내며 찢어지네 / 명주 저고리 하나쯤이야 / 아까울 게 없지만 / 임이 주신 은정까지도 / 찢어질까 그게 두려울 뿐이네 /-
 
또 한편의 매창의 대표 시 유희경과의 이별 속에서 태어난 시조 한편 담는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난 오락가락 하노라/
 
그래서 부안태생의 시인 신석정은 매창과 시인 촌은 유희경, 직소폭포를 일러 부안 삼절이라 규정하기도 했다.
매향과 유희경의 애틋한 짧은 사랑의 연정시를 되뇌며 내소사에 도착 할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2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에도 비가 오더니 오늘도 비가 온다.
내소사는 <여기에 들어오는 분은 모든 일이 다 소생되게 하소서> 라는 혜구두타스님이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창간한 고찰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인조 때 청민선사가 중창하였고 광무 6년 (1902년) 관해선사와 만허선사의 중축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은 낮은 지대인데도 깊은 심산으로 인도하는 듯 하다.

 
국가 지정문화재로 관음조(새)가 단청을 했다는 전설을 남긴 대웅보전, 천장 벽화에는 다른 사찰에서 보기 힘든 장고 등 각종 악기들과, 법당 안에 있는 후불벽화인 백의관음보살좌상을 침 삼키며 감상하는 맛은 시간이 헛되지 않다.
연꽃과 수련으로 장식된 화사한 꽃문살은 아름다움의 극치로 만져보고 보다듬고 싶은 충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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