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초상화
-봄은 여전히 설레게 한다,친구의 미소처럼-
창문을 열고 참깨를 털 듯 겨울을 털어낸다.
미세먼지와 황사에 엉기듯 겨우내 잠들었던 먼지들도 전우를 만난 듯 봄 피리를 분다.
봄은 언제나 그렇듯 온통 축복이다.산과 들이 깨어나고 도심의 여인들에게도 봄향기가 절로 피어난다.
사내는 그 곁에서 꿈틀대는 가슴을 옥조이며 아침을 맞는다.
내일 모레면 어느듯 육순을 맞는 세월의 무게.
왠지 오늘은 낡은 일기장을 들여다보듯 우리 친구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
평생 라면 국물만을 먹고서도 그저 젊음 그대로 엉겨 붙을듯한 젊은 날.
우리의 친구들은 종교라는 테두리 속에 하나 둘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태생들도 요란하거나 현란함이 없다. 그저 평온하게 살아간 부모들을 만나 태어나 지극히 평범하고도 가난의 이빨들만 유독 하얗게 빛나던 그런 아이들이다.
비록 그 어르신들이 가난의 굴레에서 힘은 버거워도 이 시대 우리의 어른들이 모두 그러하듯
자식들을 위한 헌신의 도마위에서 태어날 미래의 든든한 밑반찬으로 거듭나길 기원하던 그런 친구들이다.
시골 들판의 외딴 오두막을 찾아가기보다 더 험난했던 도심의 불꺼진 고갯길을 누비며
겨울도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는 헐거운 다락방에 모여 허기를 달래던 우리들.
배고픔이 헐거운 다락방을 무너뜨릴 듯 했지만 누구하나 원망하거나 분노하거나 몸부림 섞인 절박함을 호소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어루 달래듯 그저 침묵하거나 돌아서거나 또 어디인가를 향해 걷고 또 걸었을 뿐이다.
식구라는 공동체속에서,떼거리가 빈약한 허기진 배고픔 속에서도 흙장난을 하면서도 행복을 찾듯 미소를 잃지 않던 우리의 친구들이다.
어쩜 우리들은 그렇게 운명의 화신처럼 종교라는 그리고 가난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그렇게 성장했다.
친구들에게서 부족함은 그저 오늘을 헤쳐갈 몇 개의 동전과 떼떼로 필요한 몇 장의 지폐였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용감하게도 미래를 버리지 않았다.
주어진 순례길을 산보하듯 아침안개를 거쳐가고 헤쳐가는, 무식할 정도로 정교한 인내와 뚝심을 지녔다.
학교로 직장으로 소중한 젊음을 옯겨가기 시작했다.
꿈 한조각 실밥처럼 던져가면서 스스로 주어진 환경에서 옹골차게 살아갔다.
헤어지면 만나고 만나면 헤어지면서 끝내 울지 않은 친구들이었다.
변한 것은 세월의 무게만큼 헐거워진 살결과 흰머리뿐이다.
그래도 버리지 못하는 애증과 같은 미련.
때로는 먼 이국 땅 어느 공항 대합실에서 만나기도 하고 치기있게 거둔 돈으로 제법 비싼 양주집도 가보며 끊임없는 갈곤증을 털어버리려 했던 친우들.
문득 스치듯 지나가버린 30여년의 시간을 지나 친구들은 또다시 왁자지껄 만나곤 한다.
간혹 그 누군가를 떠나 보낸적도 있지만 친구들은 아픔을 눈물너머의 깊은 사랑의 깊이로
또 다른 싹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준다.
그리고 누구도 생의 한가운데 줄기차게 달려온 지난날을 묻지 않는다.
어둠을 끔직이도 싫어했지만 그렇다고 창밖의 빛을 놓치지도 않았다.
다들 고만고만한 옹기를 만들어 나름의 찌개거리를 장만해 놓았다.
살다보면 자연스레 얻는 육감과 삶의 무게로 상대의 비중을 점쳐보지만 쉽게 그 가슴을 갈기갈기 헤쳐놓지도 못하는 친구들이다.
억지를 쓰지도 않고 남을 팽 시키지도 않으면서 어루고 달래며 그저 세상의 고약한 것들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저울질 하면서 스치듯 만나고 만나면서 헤어졌다, 우리는.
분명한 것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반짝이고 있지만 절대 요란하거나 소란스럽지 않은 세월인것많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육순을 바라본다.
호수가에서 꿈을 빚는 그런 나이는 아니더라도 비록 큰 물질적 가치를 내 놓지 않는다 해도
어제가 그러하듯 내일을 향해 오늘을 꾸벅꾸벅 걸어갈 뿐이다.
카톡에서 과거보다는 종종 만나는 사연들 속에서 변질되거나 상한 역겨운 내음은 찾아보기 어렵다.
털어내고 털어내 빈 가슴이 되어야 울림이 있고 울림이 있어야 가치가 더 충족되는것도 알만큼 안다.
친구들아 참 너희들은 지혜롭게 둔덕길을 넘었다.
남은 숙제는 담백한 백김치 한 쪽 친구의 입에 넣어주는 그런 시간 뿐이다.
마당 한 켠에서는 벌써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런 아기 미소와 같은 새싹을 보면서도 아직 두터운 겨울 잠바를 내려 놓고 있지 못하고 있는 나다.
진달래,개나리는 어느새 잔액을 땅에 떨구고 땅 곁에는 제비꽃이며 우리들의 야생화들이 간질간질 피어난다.
그 꽃들 속에 친우들의 얼굴이,미소가 웃음이 함께 솟아 오르는 봄이다.
창가대 벚꽃도 흐드러지고 산 정상에서 품에 안아보는 대자연의 슬기도 친구들에게는 좋은 에너지다.
이제야 나는 지금 비우는 연습을 한다. 더 많이 비울수록 더 많은 것을 듣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현 듯 미친 듯이 이 글을 내려 갈긴다.
못내 감춘 속살마저 버리기 위해 이 글을 친구들에게 꽃가루처럼 날린다.
-2015년 4월 5일 – 길샘 김동환의 단상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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