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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경영신문/184호

이두호 전 환경청 차장 별세

BBK의 김경준씨 장인, 역사속으로
공직자들에게 위민봉사 정신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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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안녕과 질서가 흔들리고 있을 때 공직자들은 너무나 소극적이고 무책임하다. 공직자들은 망국의 한(恨)을 겪어봐야 애국자가 된다. 일제하에 젊은이는 징용으로 끌려가고 중년은 보국대로, 여인은 정신대로 끌려갔으며 후방의 국민들은 놋그릇까지 공출로 뺏긴 나라 잃은 세월의 서러움을 생각해 보라, 우리말과 우리들도 뺏기고 창씨개명으로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성씨 마저 잃었던 망국의 한을 어찌 잊을 수 있는가.-

그리고 반문한다.

-오늘날의 공직자들이 경제발전과 민생안정을 위해 70년대 정신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를.
공직자의 공복정신이란 위민봉사(爲民奉仕)정신이며 멸사봉공(滅私奉公)정신이다. 행여 관존민비 자세의 잔재가 남아 국민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각종 민원사항에 관해 태만하지는 않는가.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이며 대죄(#大罪)가 아닐 수 없다.-라고 단언한다.
지난 10월16일 초창기 환경청 차장과 보사부 차관을 지낸 불명 이 축범(竺梵)인 이두호 환경동우회고문이 77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고 이두호 선생은 재경예천군민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보사부와 환경청에서 오늘날의 환경정책의 뼈대를 세운 보건과 환경의 1세대 인물.
반평생 동안 공직생활 중 틈틈이 기록해뒀던 ‘공직비망록’을 자비로 두 차례나 출간하여 선거후 새로 정치일선에 나서는 초선 국회의원과 지자체 의원들에게 무료로 선사하고 공무원들에게도 나눠준 인물이다.
환경청이 발족된지 3년 후인 83년부터 88년까지 환경청 4대 차장을 지낸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보건학 박사를 받았으며 제 1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몸을 담은 참어른이다.
초창기 후배인 고 김형철 차관 등 서울대 출신들이 지혜를 모아 환경정책의 틀을 다진 이두호박사는 02년과 06년 자신이 평생 살아온 공직생활 속에서 얻은 지식과 견해를 농축한 공직비망록이기도 한 「공직윤리-십대 덕목-을 두 차례나 출간 환경인과 공무원, 정치인들에게 돌려 국가의 나아 갈 방향과 자신의 현실을 새롭게 자아 정립하게 끔 하기도 했다.
05년에는 고향인 경북 예천의 용궁 회룡포 마을에 불명인 축범 회룡정사를 짓고 귀향하기도 했다.
95년에는 콩팥이식 수술을 받기도 했으며 지병인 당뇨병 합병증으로 신부전증을 앓아 투병생활도 했다.
이박사가 더 관심을 모으는 것은 향후 다시금 정치 쟁점화 될 조짐이 큰 이명박 전 대통령과 연계된 BBK사건의 주역인 김경준의 장인이란 점이다.
BBK는 99년 김경준이 설립한 옵셔널 베처스 기업으로 이박사의 2남 3녀 중 셋째인 이보라씨와 결혼하여 인연을 맺게 된다.
이보라씨는 이화여대 정외과를 나와 신라호텔에 근무하다 스미스바니 투자회사로 자리를 옮긴다. 미국 코넬대를 졸업하고 당시 모건스텐리 한국지사에 근무하던 김경준씨와는 외환위기 직후 한국에 들어와 모건스텐리 한국지사에 근무하다가 환은살로먼스미스바니 증권사에서 인연을 맺는다.
주가조작과 수백억원대의 횡령사건의 원산지인 BBK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계가 과연 언제 다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할지 모르는 가운데 고 이두호 박사는 당시 사건 현장 속에서 구속된 사위인 김경준씨를 면회하면서 07년 시사주간지 뉴스메이커와의 인터뷰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자랑도 아니고 숨길 일도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대로 해라. 진실을 말해라"며 "설령 하느님이 대통령으로 입후보하더라도 남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천벌을 받는다"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딸과 사위에 대해 "내가 보기엔 걔들(김 씨 부부)이 너무 순진했어요. 경준이 동생이 암으로 죽었는데 놀고 있는 여권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여권 위조가 어쩌고 하는데 그랬다 하더라도 단 한 번입니다-라고 두둔하기도 했다.
*지난해 환경부 차관을 지낸바 있는 김형철, 윤서성 차관이 별세한 이후 올해에는 조병환전 국립환경과학원장과 이두호 전 차장이 유명을 달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