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한 선택'동반성장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장의 피끓는 고백 그 고뇌
내가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은 후 사람들에게 전한 동반성장의 가치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동반성장을 통한 위기관리다. 현재 우리나라는 빈부 격차를 비롯해 여러 측면에서 양극화가 극에 달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것을 치유하지 않으면 한국사회 전체가 붕괴될 위험까지 내포하고 있다. 이 위험은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에 못지않은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두 번째는 성장이다. 단순히 양극화를 없애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성장이 필수다. 한국경제는 밝은 면도 있고 어두운 면도 있다. 그런데 밝은 면을 더 밝게 하고 어두운 면을 덜 어둡게 하려면 성장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 역사상 일곱 나라밖에 없다는 50-20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대단한 저력을 지닌 나라다. 이러한 저력을 지속해서 펼쳐가기 위해서는 성장이 멈추지 않아야 한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중기적으로는 연구개발의 방향을 전환하고 장기적으로는 교육의 변화를 통한 창의성 향상으로 첨단핵심기술 개발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모두 상당한 시간이 있어야 하기에 당장 발등의 불을 끌 수 있는 단기적 전략을 함께 실행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다.
지금 대기업은 돈은 있되 적당한 투자처를 찾기 못해 투자가 주춤한 상태다. 반면 중소기업은 투자 대상은 있지만 돈이 없어 투자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불균형을 단기간에 없애고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워 한국경제의 성장을 이끌 수 있는 것이 바로 동반성장이다.
세 번째로 동반성장은 우리의 정서와 맞는다. 제아무리 옳고 좋은 것이라도 우리의 정서와 맞지 않으면 거부감부터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동반성장은 더불어 살기를 바라던 우리 사회의 오랜 정서와도 잘 맞는다. 우리 조상은 오래전부터 향약과 두레 등을 통해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함께 성장해왔다. 과거 부자 중엔 경주 최부잣집처럼 자신의 부를 자신만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이웃과 나누던 존경받는 부자도 적지 않았다.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는 곳간을 활짝 열어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그렇게 퍼줬는데도 최 부자 가문이 망하기는커녕 400년을 존경받으며 지탱해왔다.
동반성장은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 인류의 정서와도 잘 맞는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와 같이 나눔을 실천하며 모범적인 삶을 사는 세계적인 갑부들도 있고, 심지어 나눌 것이 별로 없어 보이는 아프리카에서조차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이 전해질 만큼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동반성장위원회의 임무는 이러한 동반성장의 가치를 널리 알리며 동반성장 문화를 조성하고 확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동반성장을 현실에서 실행하는 실질적인 방안들에 대해서도 궁리했다. 그 결과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동반성장 방안으로 다음 세 가지를 내놓았다.
첫째, ‘협력이익배분제’다. 대기업이 거두고 있는 초과이익의 일정부분을 협력중소기업의 성장기반을 강화하는 데 활용하자는 것이다. 애초에 이 명칭은 ‘초과이익공유제’라고 했는데 우여곡절을 겪으며 협력이익배분제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둘째,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이다. 1979년 도입되어 2006년 없어진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와 유사한 것으로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들의 신규 참여 확대를 금지하는 업종을 선정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자생력과 경쟁력을 키워주자는 의도다. 예컨대 A라는 업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함으로써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돈을 벌게 되면 그 돈으로 중소기업은 제품 개발이나 품질 향상을 위해 더욱 노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관해서 시뮬레이션해보니 머지않아 10조 원에 가까운 큰돈이 종소기업의 매출로 확보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정부 발주의 중소기업 중심화’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조달청을 통해서 물자를 발주할 때 대기업에 발주하면 대기업이 다시 중소기업에 아래도급을 주는 시스템으로 정부발주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기업이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중간에서 중간이윤만 챙기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몇 퍼센트 이상, 예컨대 80퍼센트 이상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소기업이 현재 겪고 있는 ‘투자 대상은 있지만 돈이 없는 상황’이 많이 개선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나 계획도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영화 속 파라다이스에 불과하다. 현실을 개선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크고 거창한 계획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작은 실천이다. 단테가 ‘하나의 작은 불씨가 큰 불꽃을 만든다.’고 말한 것처럼 미래의 커다란 행복을 위해 지금 우리는 작은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불꽃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실천을 확장해나가고 이어갈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진정한 변화의 물꼬를 터보자는 차원에서 앞서 말한 세 가지 대표적인 실천 방안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러한 좋은 방안들이 현실에서 더 많이 실천되게 하려고 대기업의 동반성장 노력을 측정하는 수단, 즉 동반성장지수를 만들어 평가를 해보자고 나섰다. 비록 강제성은 없지만 이러한 대기업의 동반성장 노력을 측정하여 평가함으로써 적어도 소비자들에게 어떤 기업이 좋은 기업인지 나쁜 기업인지를 알리는 수단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은 소비자, 아니 국민의 힘을 보여주면 된다. 함께 더불어 나아가지 않고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기업은 설 자리가 없음을 온 국민이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21세기 북/함께 가야 멀리 간다, 동반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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