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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이슈/칼럼

전 국토에 토종 민들레 심기 운동을

전 국토에 토종 민들레 심기 운동을

 
 
지난 봄 이리저리 구해온 씨앗이며 여린 새순들을 작업실 마당에 옮겨 심었다,
내 마음에 정원을 꾸며보고자 나리꽃, 옥잠화, 국화, 채송화, 봉숭화, 구절초, 민들레 근처 숲에서 훑어온 고사리과 식물에서부터 미나리, 고추, 방울토마토, 상추 등 식탁 위에 놓일 나물들까지.

어느 것은 묘판을, 어느 것은 씨를 사오기도 했는데 씨가 담겨진 봉투를 보니 종자 제조원이 하나같이 뉴질랜드, 미국, 호주 등에서 공수해온 씨앗들이다.
제조원이 한국산은 찾질 못했다. 참담했다. 내 식탁에 놓일 친숙하기만 한 우리네 식물들의 종자가 우리 품에서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니. 입양아로 이국땅에서 살다가 국적을 바꿔 다시 고국에 찾아오는 격이다. 

꽃이 핀들 내 친자식 같질 않고 왠지 소연해진다. 하긴 요즘 흔히 짓밟히는 민들레도 어디 우리네 민들레인가. 원목 곁에 묻어 온 민들레씨는 온통 외래종이다.
뿌리의 번짐으로 알 수 있다지만 속살을 알기 어려운 민들레가 이미 전 국토에 번져 토종 민들레는 산간 오지에서나 간간히 대면할 수 있다.

이해인 수녀의 아름다운 시집 민들레 영토는 토종민틀레를 말하는 것일까, 아님 외래종을 말하는 걸까. 시집에 민들레에 대한 원적을 밝히고 있지는 않다.
조경수로 많이 식제되는 목련도 일본목련으로 서울, 경기지역으로 퍼져가고 있다.

산림녹화를 위해서 국가적으로 도입된 아카시아는 우리나라 야산의 기둥서방으로 정착된 지 오래다. 화훼용으로 구입한 서양등골나무도 어느새 남산을 차지하고 청와대를 바라보고 있다.
곡물수입과 함께 동행한 단풍잎돼지풀은 북미에서 침투한 국화과의 식물로 양지바른 곳이면 주택가, 능선, 계곡, 휴경지 등 어느 곳이든 왕성히 자라 다른 식물들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할 정도의 큰 무리를 이룬다.
북미산 털물참새피는 제주도와 전라도에서 급속도로 번식하고 있는데 뿌리의 길이가 1미터 이상으로 제대로 뽑아내지도 못한다.
열대아시아산 물참새피는 늪, 저수지, 논가, 오염된 하천에서도 잘 자란다. 옥수수 밭에서 자라는 도깨비가지도 제주도와 경상도에서 왕성히 지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들 침입자들은 한결같이 번식력이 강하고 뿌리와 줄기가 크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집단서식을 하며 타 식물들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공통점이 있다.

화훼용 등 우리가 필요로 인해 수입하였다가 국토를 요지경으로 만들고 있는 식물과 곁살이로 넘어와 국토를 종횡무진 어지럽게 하는 무리들의 국적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붉은거북이는 종교의 방생의식으로 건너왔고 부르길과 베스, 황소개구리 등은 식용으로 건너온 무리들이다. 전국 낚시터엔 참붕어는 없고 모두 중국붕어들의 공간이 된지 오래다.
인간도 일제 30년간 허무하게 땅을 내 주었는데 이들 동,식물들의 침탈은 그나마 약과다.

어렵게 가까운 지인에게서 하얀민들레 한뿌리를 얻어 심었다. 제법 뿌리를 내려 새 잎이 돋아난다. 그저 풀잎이거니 관심도 없던 하얀민들레에 정성이 간다. 난을 키우듯 마음이 편중된다.
백두산 휴게소 주변에서 보았던 노란만병초며 잠자리 꽃나무, 곰참꽃 등 보이는 것이 모두 우리 토종들이다. 하긴 백두산 아랫마을 주변 우리 조선족 마을들은 과거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시골마을을 연상하게 한다.

토종닭도 우리 땅에서는 호랑이만큼이나 보기 어려운 것을. 진정한 삶은 순례자나 여행자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하얀민들레 만큼은 집착이 간다.
우리 땅에서 1미터나 긴긴 뿌리를 뻗는 털물참새피 처럼 하얀민들레도 마구마구 뿌리를 뻗었으면 한다.

그나마 우리나라 토종 가물치가 일본 비와호에서 활개를 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니 다행이다. 이것도 범부의 부질없는 대리만족인가. 민들레 하얀 꽃이 터져 나오길 내년 봄을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