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경 & 교육/환경경영

국립환경과학원 탄생 30년

특집- 국립환경과학원 탄생 30년(1)
국립환경과학원 탄생 30년 1978년 9월 1일
자체 원장 출신은 15명 중 3명으로 평균 임기 1년
최장수 원장은 3대 심응기 원장으로 7년 역임
 
 
서울의 뚝도 정수장에서 물을 통수한 1908년 9월 1일, 그리고 우리나라 환경연구소의 간판을 걸었던 1978년 9월 1일.
9월은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의미를 던지는 달이기도 하다.
환경과학원의 옛 명칭은 국립환경연구소,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8년 7월 28일 대통령령(제9117호)으로 1과 5담당관실의 국립환경연구소가 출발한다.
환경이란 명칭이 공식적으로 국가에 의해 설정되었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
따라서 국가적으로 환경이란 용어를 처음 이름표로 부착한 것은 환경단체도 아니고 환경부도 아니며 환경과학원이었다. 당시는 공해라는 이름이 사회적으로 통용되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현판식 날에는 신현확 당시보건사회부장관이 참석하여 역사적 의미를 담았으며 성유운씨가 초대 소장으로 임명되어 출발한다,
30년간 이름도 국립환경연구소에서 86년 국립환경연구원으로 2005년 국립환경과학원등으로 직제가 개정되었다.
살림집은 불광동시대에서 매립지 시대로 2번의 이사를 했으며 역대 원장은 초대 성유운씨를 시점으로 지달현, 심응기, 이창기, 서윤수, 조병환, 심영섭, 김종석, 주수영, 류재근, 최덕일, 이길철, 이덕길, 윤성규 그리고 현재의 고윤화 원장으로 모두 15명이 평균 2년간 근무를 했다.
15명중 자체적으로 연구관 출신이 원장을 역임한 인물은 류재근, 최덕일, 이길철 3명이었는데 이들의 평균 임기는 1년이었다.
최장수 원장은 3대 심응기 원장으로 82년 6월부터 89년 3월까지 7년을 역임했으며 4대 이창기원장이 89년부터 93녀까지 4년, 초대 성유운 원장이 81년 8월까지 3년, 14대 윤성규 원장이 2005년 1월부터 2008년 3월까지 3년, 서윤수 5대원장이 2년을 봉직했다.
1대에서 5대까지는 보사부시절의 인사들이었으며 6대부터 환경청 및 환경부 출신들로 이뤄졌으며 역대 원장 중 유일하게 환경부 차관까지 역임한 인물은 심영섭 7대원장이 유일하다.
직제개편은 1과 5담당관실에서 80년 3부2과 14연구, 90년 5부4과 15연구, 94년 4부 2과 17연구과4검사소, 96년 4부2과 16연구소 4검사소, 98년 5부4과 16연구과 1연구소 4검사소, 2002년 6부 4과 19연구과 5연구소, 2005년 6부 23과 6연구소, 그리고 오늘날의 6부 24과 6연구소로 발전해왔다.
연구원의 인력은 초창기 44명으로 출발 현재는 7배 증가한 290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예산 쪽은 초창기 2억 원의 예산으로 출발 지금은 250배가 많은 503억 원의 예산을 활용하는 기관이 되었다.
99년까지는 연구비와 인건비가 전체예산의 균형을 이뤄왔으나 99년부터는 인건비보다 연구비 지출이 증가되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돌입하면서 인건비보다 연구비가 2배 가까이 더 많이 소요되기 시작하다가 2007년 이후 인건비보다 연구비가 2배 이상 더 많은 예산을 사용하는 연구기관으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2003년 이전까지는 국내ㆍ외 학술논물발표 수에서 매우 빈약하여 연 21건에서 39건 정도가 고작이었으나 2004년 이후 62건, 05년 91건, 06년 110건, 07년 114건으로 학술발표가 활발히 이뤄졌으며 해외논문도 2001년 8건, 02년 10건등 극히 저조했으나 03년 13건, 04년20건, 19건, 22건, 25건 등으로 날로 활발해지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 환경수도신문 & enwnew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