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네트워크 김학용사장 별세
누수방지와 유수율 증대의 선도기업인
연구회,협의회 중점적으로 구축
관로탐사 및 누수방지전문기업인 (주)한일네트워크엔지니어링 김학용사장이 지난 7월 19일 향년 57세로 세상을 짧고 굵게 마감했다.
고인과의 관계설정도 결코 짧지많은 않은 25년간의 시간여행이 필요했다.
한일누수방지연구원이란 이색적인 간판을 내걸고 수도산업분야에 등장했고 그 인연은 질기게 이어져 왔다.
91년경 고인과의 술자리 대화는 땅속에 묻힌 수도관이 손상되고 파손되어 국민의 피같은 돈이 줄줄 세지만 정부,지자체등은 대응과 초기진압에 너무 인색하다 못해 무지하다는 나름의 소신과 철학있는 역설이었다.
물론 지자체중 일부 공무원들도 이같은 현실을 인정하기도 했지만 감히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시절이다.
종업원 10여명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조그만한 기업이 웃기지도 않게 연구와 분석등 체계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술병이 나뒹글때까지 논리를 펼치던 고김학용사장이었다.
나는 취중에도 아깝게 버려지는 수도관의 비밀을 조금씩 지면에 옮겨갔다.
세미나도 개최해 주면서 기업인으로서의 기술자적 집념과 아집에 점차 물들어갔다.
기반도 채 잡히지 않은 어려운 회사 여건속에서도 고인은 국내에서 최초로 관로연구회를 설립했다.
역삼동 주변 고인의 회사사무실에 회의실을 마련하고 관로의 미래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건설부(상하수국),보사부(음용수과),서울시,수자원공사를 출입하던 나는 관련기관에서 그나마 관로의 숨겨진 현상을 염려하는 사람들을 모았다.
고인이 사무실과 저녁상 그리고 소주값을 부담하고 몇차례 모이면서 모임을 정례화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고인을 비롯하여 환경국제전략연구소 김동환 소장(당시 전문지발행인겸 편집국장), 건설기술연구원 이현동 박사(건설부산하기관),그리고 서울시 상수도본부(89년 본부로 설립됨)누수방지과장 손창섭(급수부장 역임후 퇴임 현 서용엔지니어링 부회장)이 동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초대회장으로 손창섭씨를 추대했다.
대부분의 학술단체는 학계가 주도적으로 설립했었지만 수도산업분야에서 민간기업인을 중심으로 연구회를 조직한 것은 관로연구회가 처음이며 최근 정수기조합이 중심이 된 정수기학회가 두 번째가 된다.
설립당시 홍익대 김응호교수는 독자적으로 하수도연구회를 조직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어 상수도에서 관로연구회와 더불어 매우 전문적이면서 기업과 학술적 연계고리를 이어가게 하는 대표적 학술연구기관으로 정착하게 한 그 장본인이 바로 고 김학용사장이다.
고인은 충북대 토목과를 졸업 학사장교로 군 제대후 우리나라 최대 엔지니어링 도화의 상하수도부에서 8년간 근무한다.
그리고 한국빅택의 김장기사장,서창의 임수철사장과 3인이 도화를 탈출 독립하여 (주)한국누수방지기술개발이란 기업을 설립한다.
그러나 1년6개월만에 이들은 각기 독립하여 3개회사가 설립되게 된다,
김장기사장,임수철사장과는 도화에서 인연을 맺은 관계이지만 2년만에 독립을 선언하므로서 국내에서는 관로탐사 전문회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설립되는데 이같은 사업화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당시 서울시 급수부 누수방지를 담당하던 심재영씨로 퇴임후 한일의 부사장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김장기사장이 영업주도형 기업인이라면 고인은 학구적 열의와 연구 그리고 공동체적 협업정신이 앞선 인물이다.
이는 당시 얼마 안되는 관로전문기업인 한일,서창,한국빅택,서용엔지니어링등이 공동체적 운명을 가지고 공정하고 정직한 전문기업으로 발돋음하자는 취지로 누수방지협의회를 결성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서울시 급수부장 출신의 전기택씨를 초대협의회 회장으로 추대한다.
이 협의회는 오늘날 환경부가 정책적 방향을 선도하고 한국환경공단이 주도하여 한국의 지하 매설물인 수도관에 대한 대대적인 누수방지사업을 전개하면서 관로개선사업의 새로운 시장을 형성한 이즈음에는 매우 안타까운 공동체로 조명된다.
2년간 지속하던 협의회가 해체되고 결국 이들 기업들은 오늘의 관로개선사업을 이끄는 중심 기업임에도 한국환경공단의 잘못된 사업방향으로 도화,건화등 대형 엔지니어링사에 주도권을 넘겨주고 하청업체로 전락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물론 기업간의 이질적 대립을 줄이기 위해 서울시 손창섭,건기원 이현동,그리고 필자가 연계 고리를 형성 이들의 단합과 조화를 유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이처럼 기업인으로서는 공정한 경쟁속에서 기술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정신으로 연구회와 협의회의 설립,관련 학술세미나에 중요한 발표자료로 정립시킨 것은 고 김학용 사장의 뜨거운 열정과 관로에 대한 명증한 거울이었다.
또한 일본의 기술과 운영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관여하던 한수지중정보를 인수합병하여 기술과 운영면을 확보하기도 했다.
관로연구회를 2기 회장인 단국대 현인환 교수에게 넘겨줄 당시에는 현교수 제자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나 결국 박사과정은 온전하게 마치지 못하고 고인이 되고 말았던 점은 학구적 욕망의 한을 풀어주지 못한 남은자들의 아픔이기도 하다.
또한 관로 전문 기업을 전문기업으로 형성시키기 위해 당시 환경부 수도정책과장인 이성환씨와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여 결국 우리나라 관로산업의 중대한 실책으로 남게 된 점도 고인에게는 이슬과 같은 한이되고 말았다.
기업인중에는 관로 관련한 학문적 발표를 가장 왕성하게 주도하는등 90년대와 2000년대 중반까지 고 김학용 사장의 족적은 우리나라 유수율 향상과 함께 존재한 것은 분명하다.
외부활동으로는 수자원공사,국립환경인력개발원 외래교수,환경부 상하수도자문위원,상하수도협회이사,환경부 유수율제고 기술자문위원,환경부 중앙환경자문위원등을 역임하면서 영업적 측면보다 국내 관로기술의 향상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가정적으로는 보살펴준 부모님들에게도 자식의 도리를 충실히 한 고인은 카토릭 신자로 사회봉사도 펼치면서 회사직원과의 단합대회도 가평꽃동네를 방문하여 단체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본인도 함께 동행하기도 했다..
가족으로는 조만간 대표이사로 취임할 예정인 김상기(31세)부사장은 연대토목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준비를 하다 아버지 가업을 승계한 인물이다.
유지관리를 강화하면서 종합전문회사로 발돋음하기위해 공격적이면서 유연성을 지닌 성품으로 연구분야에도 관심이 높다.
큰딸 혜미씨는 환경산업기술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둘째 연옥씨는 한일의 계열사인 미래네트워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제 고인은 환경부 한강유역청장을 지낸 정진성회장을 중심점으로 관로사업의 비젼을 읽어 내린 큰아들에게 가업을 연계해 관로전문회사로는 최초로 가업승계 기업이 되었다.
그동안 한일을 거쳐간 공직자들로는 서울시 출신으로 우리나라 누수방지사업을 탄생시킨 심재영부사장, 환경부 1급출신의 박종건회장,그리고 정진성회장이 4년간 연임하고 있다.
못다한 꿈과 정렬을 다시금 불사르게 불씨를 남기고 이승을 하직했지만 우리나라 누수탐사 전문기업으로 발돋음하게 한 한일은 기업과 함께 존재하는 신춘수전무,노순열이사,이승재이사등 3인방의 튼실한 관리능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60억원의 매출에 65명의 종업원이 활약하고 있다.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 가운데 노르웨이 속담에 –처음 시작은 용기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라는 말이 다시금 되뇌여지는 고 김학용 사장이다.
(길샘 김동환/시인,수필가,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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