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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문가가 보는 세월호 참사

경제전문가가 보는 세월호 참사-(연재?)

 

세월호 참사에서 본 위기의 한국경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성공신화는 위험 초래

안전산업도 금융 분야 유망한 미래 산업

대한민국 국가기구의 전면수정 필요

이승무(순환경제연구소장)

 

인간에게 위험을 초래하는 기술을 기초로 하는 사회구조에 대하여는 크게 공학적 분석, 사회학적인 분석과 사회 윤리적 법리학적 분석을 할 수가 있다.

첫째 공학적 분석에서는 어떠한 기술이나 시설에서든지 리스크 자체를 불가피한 혹은 통제 가능한 부산물로 인식하며,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기 위하여 리스크가 사고로 이어지는 과정에서의 인적 요인과 기계적 요인 등의 작동 메카니즘을 분석한다.

둘째, 사회학적 분석에서는 위험 발생의 역사적 양태를 분석하고, 이 위험이 사회계층 간에 어떻게 불공평하게 분배가 되는가 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분석한다.

셋째, 법리학적 사회 윤리적 분석은 인권적 측면에서의 규범적인 분석이다. 위험에 대한 공리주의적 경제학적 접근이 과연 인간사회가 지금까지 쌓아온 도덕체계, 인권개념에 맞는가 하는 질문이 그 핵심에 있다. 이에 대하여 윤리학계와 법학계에서 찬반양론을 벌이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이를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관점에서 볼 수 있고,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중심이 되는 주제는 이러한 배경적 분석을 기초로 생명의 권리와 가치의 문제를 조명해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 사고, 항공기 사고, 선박사고, 그리고 산업재해에서는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보험이 사후처리문제를 해결해 주며, 여기에는 사고통계에 기초를 둔 위험률과 이에 따른 보험료의 책정이 전제가 된다. 보험은 이론적으로 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에 의존하여 보험가입자들이 수학적으로 책정된 보험료를 내게 되면, 보험기금에 파탄이 나지 않고 안정적으로 사고의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역사적 발명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의해 사고의 위험은 경제적 비용의 일부로 치환된다. , 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으로 경제적으로는 사고위험에 대한 대처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를 당한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손상이나 파괴를 당한 신체나 귀중한 물건을 책정된 경제적 보상만으로 사고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도의적인 문제가 항시 수반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민형사상의 책임을 다루는 법률이 분쟁을 해결해 주도록 되어 있다.

세월호 참사로 이 신뢰가 무너졌다. 감독관청의 국가 관료와 리스크관리 엔지니어 그리고 기업주 간의 담합으로 고객 또는 소비자, 그리고 일반 사회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위험을 초래하면서 모험적으로 사업을 운영한 것은 단순한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구조화된 조직적 범죄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초래된 위험 자체가 안전에 최선을 다한 후에도 발생하는 불가피한 무작위적 위험이라는 보험의 이론적 전제가 깨어지고, 고객의 신뢰를 배반하는 조직적 의도적 모험행위가 국가 감독당국의 비호 하에 발생한 것이다.

예를 들어서 생선을 가득 실은 배는 침몰사고가 발생해도 선원들이 위험해질 뿐 경제적 손실 외에 다른 손실은 크지 않다. 이런 배와 승객을 가득 실은 여객선과 안전에 대한 주의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같은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똑같은 여객선에서 승객 집단의 구성에 따라 안전 행동에 차이가 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된다.

이에 대해서는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모든 소비자가 보험회사의 고객이 되거나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면 잠재적인 가해자가 되는 기업은 그런 행동을 할 수 없게 되어 이론적으로 대처가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사적 법률 서비스 시장이 발달되어 있지 않고 국가의 안전규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체제이다. 이런 사회에서 규제완화의 바람마저 불어 다수의 승객이 사고위험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국가는 산업은 보호하지만 국민은 보호 못해

 

경제학은 같은 비용을 가지고 최대의 효과를 얻거나 같은 효과를 얻는 데 최소의 비용을 들이는 방법을 찾는 학문의 역할을 맡는다. 안전문제도 비용이 들어간다. 그런데 안전율을 높이는 데는 한계비용이 체증하는 것이 증가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100%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은 막대한 금액의 지출을 필요로 하게 되어 비현실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기본적으로 위험은 일정한 목적시간의 단축에서 비롯된다. 투자를 한 자금에 대한 회수기간이 있다. 지금 투자를 한 후에 이익이 발생하여 원금을 다 건지고 앞으로는 순이익이 되는 쪽으로 전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이처럼 자금의 사용에 대해서는 시간당 요금이 매겨지기 때문에 차입자들은 자금의 차입기간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면, 짧은 기간에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운수업에서 그 방법은 과적운항이거나 과속, 인건비 절감 같은 것이다. 생산현장에서는 근로시간을 연장하거나 위험한 작업환경에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다. 이는 맑스가 자본론에서 상대적 잉여가치생산과 절대적 잉여가치생산의 방법으로 고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이윤을 위한 착취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원인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는 시간을 무리하게 절약하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름은 희소한 자본이 돈을 벌 기회의 상실, 곧 기회비용이기 때문이다.

자본재도 일정한 사용수명이 있다. 이 수명을 넘겨서까지 운송수단이나 발전소를 운용하는 것이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위험이 발생하는 것은 운동에너지나 열에너지와 같은 에너지의 생산이나 사용과 관련이 깊다. 사람을 혹사시키는 대신에 이처럼 에너지를 사용하여 이윤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맑스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라고 했다.

한국은 세계 랭킹 3위 이내의 교통사고 사망률과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무리한 속도의 이윤추구가 극심한 스트레스, 탈진,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고, 다른 한편으로 실직자, 퇴직자들의 공허감, 우울증이 심각하다. 세상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속도에 맞추어 허덕이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나 그 톱니바퀴에서 축출되어 군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모두가 불행한 상태에 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전반부는 이러한 사고 위험의 문제에 관한 것으로서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유관한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는 사고발생후의 긴급대응의 문제로서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안전을 담당하는 국가기구의 무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는가? 국가안보에 적지 않은 국력을 투입하는 국가에서 생명을 구조하는 긴급구조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담당하는 조직과 장비는 갖추어져 있었지만 긴박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우왕좌왕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의 첫 번째 임무는 취임선서에도 나와 있듯이 국가를 보위하는 것인데, 지켜야 할 국가의 구성요소인 영토, 국민, 주권 중에 위험에 처한 국민이 빠져 있다. 위험에 처해 있지 않은 국민은 국가의 구성요소로 들어가지만, 곧 죽을 위기에 처해 있는 국민은 그냥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 국가를 지키는 데 저해요인이 되지 않는다는 철학이 담겨져 있다고 보인다. 국가는 산업의 무분별한 이윤추구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도 않고, 생명이 상실될 위기상황에서도 구조해 주지 않는다. 영토와 주권은 수호의 대상이지만 국민은 자생적으로 자라나는 풀과 같은 존재, 재생가능 자원으로 보는 것이다. 국가는 산업에 편의를 제공하고 산업을 보호해 주지만, 국민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 국가가 위협을 받을 정도가 아니면, 일부 국민을 구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보는 철학이다. 이는 국가의 구성요소로서의 국민과 인간을 구분하고 국적과는 독립된 인간의 생명 자체에 대한 배려가 담겨져 있지 않은 철학이다. 매우 낯설지만 지금 한반도 이남에 들어서 있는 국가와 국가권력의 실체는 이런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자유권을 국가에 반납하고 국가의 포로가 되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으며, 주민이나 자연인으로서는 헌법상으로도 아무런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해방 이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해방 후에도 국가에 순응하지 않는 세력은 가차 없이 제거되는 군국주의가 계속되어 온 역사가 오늘 한국의 안전한 생존에 대한 권리가 어떻게 취급받고 있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땅에 사는 자연인들이 서로 힘을 합쳐 질서를 유지하고 삶을 위협하는 위험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만든 그런 국가가 아니다.

결국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극도로 위험한 사회를 초래한 투기적 금융의 폐해를 국가는 직접 규제하지 못하고 경제성장을 통해 입막음을 하여 해결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금융의 이해관계에도 부합한다. 산업과 사회의 위험도는 감소시키지 못한 채로 살림살이의 확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불경기를 벗어나게끔 경제를 살리는 것이 흉흉한 민심을 가라

앉히는 길이 되겠지만, 잠복한 안전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산업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경제가 성장하면, 환경과 안전에 대한 투자의 여력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금융자본이 그런 여력이 생기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IMF 구조조정과 2008년 말 경제위기로 기업들의 환경, 안전에 대한 투자의욕이 상실되었는데, 이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조건에서 금융자본이 어떻게 경제위기를 통해 마땅히 지불해야 할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거나 최소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국가안보는 외침에 대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연간 민관군을 동원하여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군사훈련을 통해 국민의 규율을 잡고, 병영생활을 통해 물리적 고위험 상태와 정신적 스트레스에 견디는 산업전사를 훈련시키는 메카니즘이 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기회는 점차 멀어지고 휴전선에 긴장이 조성되어 국민의 불안감과 피로도는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하는 일에 의해 오히려 더 높아진다.

사람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인류 보편적 가치는 종교, 신앙과 신념의 차이를 초월하여 사회의 근간으로서 관철되어야 하지만 특히 한국에서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가의 철학 자체가 국민을 동원하기 위한 국가안보 체제와 경제성장 지상주의를 양대 축으로 하고 있고, 아무런 규제 없이 투기적 금융자본의 단기적 이익추구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경제, 안보, 과학기술이라는 국가적 힘의 세 축을 다시 정립하지 않으면 참사(慘事)는 반복될 수밖에 없고 이는 실질적인 국가 붕괴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경제성장 지상주의에서 사람이 중심인 경제로, 국민 동원을 위한 안보에서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안보, 결국 평화를 위한 안보로, 그리고 생산능률과 시장확대, 안정적 자원에너지 확보를 위한 기술혁신에서 인간과 생태계의 안전을 위한 기술혁신으로 국가의 철학이 전환되어야 한다. 또 이는 국가예산 편성에서 반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업생산성을 높여주는 기술혁신은 민간에 맡기고 국가는 안전과 환경, 보건 수준을 높여주는 과학기술 투자를 우선시하는 쪽으로 가야만 한다.

산업계의 안전규제와 환경규제,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는 같은 맥락에서 정교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성공신화는 위험을 조장하는 이데올로기이고, 많은 사람들과 생태계의 희생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허구적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른바 창조경제는 성장지상주의 경제의 맥락 안에 있으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어감과 같이 기초공사가 없는 모래 위의 성()을 쌓을 수 있다는 착각을 유발해서 부실과 위험과 위기상황의 산파가 될 수 있다.

잘못된 철학에서 비롯된 국가 관료의 무능함과 위기대응능력의 부재는 행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며, 개개인이 스스로 대비를 해야 한다는 관념을 심어주어 안전산업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만 안전산업 역시 보험과 함께 금융자본의 유망한 사업 아이템이며, 이를 통해 안전한 생활환경이 마련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안전의 민영화는 답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데 익숙하지 않게 역사적 제도적으로 진화해 온 대한민국의 국가기구를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방향에서 해결책이 찾아져야 하며, 이는 실질적인 민주공화국을 세우는 과제와 직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