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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경영신문/183호

백성을 향한 천막 나들이(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薯願度))

세종대왕과 박정희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새우잠을 자면서 정치적 돌파구를 찾기 위한 시청앞 천막생활이 큰 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5백여 년 전에도 임금의 천막(초가집)생활이 있었다. 물론 정치적 대립각을 위한 투쟁적 의미의 천막생활이라기보다 민생을 위한 체험현장이다.
역사의 한 장을 남긴 이들 통치자의 역량보다는 무소불위의 통치자로 자기자신을 어떻게 다듬어가며 백성 앞에 나섰는가를 엿보고자 한다.
세종대왕이 즉위한 이후 7년 동안이나 가뭄이 들어 백성들의 삶이 피폐했던 시절이다.
먹거리가 떨어지고 굶주림에 지쳐갔다.
보고만 있을 수 없던 세종은 도성 큰 길 가에 가마솥을 걸게 하고 죽을 쑤어 지나는 백성들에게 한 그릇씩 먹이게 했고, 세종은 자신의 처소에서 잠자기를 거부하고 궁궐 한쪽 작은 초가집 하나를 짓고 그곳에서 기거를 한다.
나라가 가난한데 애써 초가집을 짓는다는 것도 또 다른 사치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세종이 누추한 초가에서 비를 피하며 잠을 청하자 신하들은 옥체를 보전하라고 간하며 안절부절이었다.
급기야 소현왕후가 궁 안으로 들라고 재차 청하자 세종은 - 백성이 배고픔에 하루가 힘들어 하는데 임금 된 자가 혼자 호위호식 할 수 있겠소. 나는 이것이 편하니 그냥 내버려 두시오-라며 백성의 고통을 함께 체험한 세종은 훗날 백성들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수많은 정책들을 펼친다.
집현전의 확대개편,,조선시대 최초의 농업실용서 농사직설, 장영실과 함께한 다양한 천문과학기술연구(가뭄의 극치를 맛본 세종의 절박함의 실증)물시계, 조정과 백성이 서로 뜻이 통해야 한다며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한글창제, 황희정승과 같은 인재등용등 조선역사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즉위 4년 만에 어머니 원경왕후, 아버지 태종을 잃고 이어서 큰 딸 정소공주도 병으로 잃는 이별의 아픔을 겪는다.
다섯째 광평대군, 일곱째 평원대군도 연이어 사별하고 사랑하는 부인 소현왕후 마저 먼저 보내게 된다. 그리고 세종은 53세의 나이에 여덟째 아들 영웅대군의 별궁 처소에서 숨을 거두고 소현왕후가 안치된 경기도 여주 영릉에 합장하게 된다.
그리고 511년의 타임머신을 타고 요동치는 현대정치의 한 획을 그은 1961년에서 79년까지 18년간 재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넘어가자.
논란거리는 차치해두고 월남파병을 결단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하여 무기회사인 맥도널드 더글라스 사 중역간부인 데이빗 심슨은 이렇게 조명하고 있다.
심슨은 단발식 카빈소총뿐인 우리나라 무기를 현대화하기 위해 M-16으로 지원해 달라는 박 대통령의 요청을 수락한 미국이 무기 납품회사로 선정한 더글라스사의 중역이었다.
무기 수입국가에 대한 의례적인 인사인 리베이트형 뇌물을 주기위해 박대통령의 집무실을 방문하게 된다.
무더운 여름인데 선풍기도 틀지 않은 집무실에서 한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런닝셔츠차림으로 일하는 대통령과 첫 만남을 가지게 된다.
박정희대통령은 -결례했소, 이 넓은 방에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어콘은 낭비라서, 난 부채 하나면 바랄게 없소. 뜨거운 땡볕에서 살을 태우는 국민들에 비하면 신선놀음 아니오-라며 비서관을 통해 손님이 왔으니 에어콘을 잠시 틀라고 지시한다.
심슨은 한국방문 목적이 M-16 소총을 선택해준 고마움이라며 성의표시인 돈 봉투를 건네준다.
돈 봉투를 열어 100만 달러 수표를 확인한 박정희는 내 봉급으로는 3대를 일해도 만져보기 힘든 큰돈이라며 심슨에게 묻는다.
-이 돈 날 주는거요,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거죠. 그렇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소-라면서 돈 봉투를 다시 심슨에게 준다.
-자 이 돈은 이제 내 돈이오.나는 당신회사와 거래를 하고 싶소. 이 돈만큼 총을 가져 오시오, 난 돈보다는 총으로 받았으면 하오, 이 백만 달러는 내 돈도 아니고 당신 돈도 아니오. 월남에서 피를 흘리는 내 아들들의 땀과 피와 바꾼 것이오. 나는 총으로 대신 받겠소-라고 말한다.
심슨은 집무실을 벗어나며 반드시 100만 달러의 소총을 더 보내 드리겠다고 약속한다.-
에세이 식으로 적어내린 심슨의 글은 말미에 -나는 낯선 나라의 대통령에게서 왠지 모를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다-라며 글을 맺는다.
유신독제,새마을운동,친일군인,산업기지개발과 고속도로사업 등 시시비비가 실타래처럼 엉킨 박정희도 개인적으로는 치명적인 아픔을 겪는다.
청와대의 야당, 사랑하는 영부인 육영수여사를 74년 8,15 광복기념식장에서 총탄에 의해 잃게 되니 영부인의 나이 마흔 여덟.
자신도 5년 후인 79년 10월 26일 궁정동 술자리에서 믿었던 참모의 총에 세상과 결별하니 향년 61세이다.
이들 두 역사적 인물의 공통점은 가난의 현장을 스스로 참여하여 백성의 눈물을 함께 호흡했으며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정치적 역량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국가와 백성을 위해 육신을 던졌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분 모두 가까운 식구, 사랑하는 아내를 조기에 잃어버렸다.
세종은 53세의 나이로 백성과 헤어져 소현왕후와 여주 영릉에 합장하고 박정희는 61세에 육영수여사와 동작동 국립묘지에 합장 후세들을 지켜보고 있다.
-대통령이나 천한 백성이나 한번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지 못하면 굳어지는 것이 육신이거늘....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薯願度)
-끝없는 중생을 기어이 다 건지고 어려운 이웃들을 다 뒷바라지 하고 보살피겠습니다-
불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첫 번째 서원으로 이것이 발보리심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데 ....
나도 선시나 한 수 깔려 볼가
사람은 있으나 보이지 않고
풍김은 있어도 향기가 없고
어른들은 북적대나
고개 한번 조아릴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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