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영향평가 업무 수행 초기
송영일 : 그 당시 연구원을 포함해 동기가 10명 조금 넘었습니다. 미국에서 박사 졸업을 한 후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미주 한국 중앙일보에 KEI 인력 채용 공고가 신문 반 페이지에 걸쳐 크게 났습니다. KETRI가 다시 한 번 도약한다는 문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997년 3~4월 봄이었습니다. 문과와 이과가 어우러진, 생각지 못했던 규모와 콘셉트의 연구소였고 수질,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질학, 행정학, 정치학 등 학교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모든 분야에 걸쳐 공고가 났습니다.
이상은 : 사전환경성검토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했을 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국회 수석전문위원이 사전환경검토보고서도 KEI가 전담해서 검토하도록 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이를 위해 인원 50명, 예산 50억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환경영향평가 검토 업무만으로도 박찰 지경이었는데 연간 수천 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전환경성검토까지 맡으면 본연의 연구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리고 사양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안을 사양했으나 수석전문위원과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어쨌든 그 분이 연구원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 유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주는 에피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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