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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경영신문/172호

KEI 20년사 4

 

KEI의 출범과정
 
정희성 ?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발생에 따른 정부의 사후 대책 발표 시 환경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소를 만들어 향후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언급한 것이 연구원 설립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기관 명칭의 선정
정회성 ? KETRI 초창기 시절 환경정책과 기술개발연구 사이에서 갈등을 많이 했습니다. 환경부 내에서도 연구원 설립 당시 정책연구부를 만드느냐 마느냐에 대해 팽팽하게 의견이 갈렸었습니다. 그러나 청화대에서는 KETRI 자체가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대책으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환경기술 개발연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였고, 이에 기술개발원으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은 ?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환경기술 연구를 담당할 연구기관의 설립이 검토되기 시작하였으나 검토과정에서 국립환경연구원과의 업무 중복성이 대두되었고 기술연구를 위한 막대한 시설 투자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기술연구도 필요하지만 환경 분야 정책을 뒷받침할 정책연구 기관의 필요성도 제기되어 정책연구를 위주로 하는 연구기관의 설립이 더 타당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대통령 지시사항이 기술연구개발을 위한 연구기관 설립이었기 때문에 연구원 명칭에서 ‘기술’이란 단어를 뺄 수가 없었고 실험시설이 없이 정책을 뒷받침하는 차원에서 기술적인 연구를 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정리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회성 ? 연구원이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사후대책으로 출범했기 때문에 ‘한국환경기술개발원’이라는 명칭으로 명명되었습니다. 연구원의 설립목적은 환경기술을 개발 · 연구하는 것이었으나 KETRI가 워낙 적은 예산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기대에 부응할만한 결과물을 도출할 수 없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국회에서도 KETRI가 차라리 정책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적합하리라 판단하였고, 이에 연구원의 정책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로서 초대 원장이 중간에 물러나시고 연구원이 정책연구를 수행한다는 상징으로 정진승 원장께서 새로 취임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