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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이슈/칼럼

[147호] 억새풀과 청계천

[147호] 2012년 4월 17일 화요일 발행

 

억새풀과 청계천 

발행인 칼럼

 봄볕에 촉을 데워 이글을 쓰지만 10월이면 민둥산창녕의 화왕산전남 장흥의 천관산그리고 쓰레기더미위로 재탄생한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에서도 억새풀 축제가 열린다.

 이조 500년의 역사를 짊어지고 600년 수명을 질기게 이어온 억새풀을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서 만날 수 있다.

 굳은 손바닥은 인생의 나이테라 하지만 태조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조선을 건국하고 새 왕조의 기반을 다졌지만아들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태종이 되었고 가슴에 차지 않은 태조는 대왕자리도 버리고 고향 함흥에 칩거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달래려 신하를 함흥에 보내지만 출장 간 신하들은 후대에 함흥차사라는 속담을 남긴다.

 애증의 길목에 선 이성계는 묘지 터를 다녀와 자신의 무덤에는 고향의 억세를 심어달라고 유언한다.

금잔디가 아닌 억새가 꽃을 피우는 봉분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이 유일하다.

 

김동환
약력: 시인/수필가, 환경ISI소장, 한국작가회회원, 한국문인협회회원, 국제펜클럽회원, 환경부중앙환경자문위원, 소비자시민의모임 운영의원, (사)한국수도산업발전회 부회장, (사)한국환경계획 조성협회 자문위원
저서 : 시집 「날고있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다」 칼럼집「우째물꼬를 틀꼬」 논문 「황금시장 물산업의 경쟁력」


 동구릉에는 태조 왕릉뿐 아니라 현종의 숭릉영조의 원릉문종의 현릉헌종의 경릉선조의 목릉문조의 수릉 등 7명의 왕릉과 경종 왕비의 혜릉인조왕비의 휘릉 등이 있지만 억세가 나풀거리는 곳은 오직 태조의 건원릉뿐이다.

 

 600 세월을 바람결에 휘날리며 조선 건국의 왕 태조와 밤낮없이 속삭이는 모습에 감동되어 최근 문화재청은 건원릉 정자각을 보물로 지정하기도 했다.

억세풀이 바람결에 실려 던지는 소리는 후손들이 애잔하여 참을 수 없는 선조들의 한숨처럼 들리기도 하다.

 

얼마 전 서울시 박원순 시장과 함께 청계천을 걸었다.

동구릉에 9기의 릉이 있다면 청계천에는 송기교모전교광통교광제교장통교하랑교효경교마전교오간수문영도교수표교 등 11개의 다리가 놓여 있던 곳이다.

서울의 역사성과 문화성 회복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천복원은 고가를 철거하고 아스팔트 속에 숨어있던 조선의 역사를 들춰냈다는 점에서 인정받는다.

그러나 본래의 자리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만 청계천의 오늘은 빈집만 같다.

1420년 세워진 청계천의 대표적 다리인 수표교는 나무로 형태만 있고 정작 수표교의 본체는 동국대 입구 장충단 오르는 도로 옆에 뎅그러니 놓여있다.

물의 흐름이 빠른 청계천을 따라 걸으며 세월의 때가 묻지 않은 새 화강암과 세월의 흔적으로 누렇게 변한 돌이 얼기설기 청계의 담장을 형성한 모습은 역사적 정서를 느낄 수가 없다.

 

역사의 숨결과 함께 숨쉬어온 저 누렇게 변한 돌들이 과연 돌담의 주인공들이었을까.

다리 어느 부위에 놓여 있던 돌들을 깨고 부셔서 요즘의 돌과 함께 단순한 축대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살의 흐름이야 과거의 청계천답게 유유히 흐르게 하지 못하고 기계적 압력을 동원하여 빠른 물살을 만들었다지만돌들의 역사를 해치지 않고도 수정될 수 있는 여지는 있었을 것이며그 여지를 찾는 노력이 진중했어야 한다.

 

하지만 역사의 사실과 진실이 베여 있는 문화재격의 돌들을 함부로 망가지게 한 것이 진정 역사를 소중히 하고자 한 조선 6백년 도읍지의 후예들이 할 짓일까이미 망가지고 깨어진 돌들의 유구한 세월을 누가 어떻게 입혀 재생시킬 수 있을 것인가전통문화재도 모조품으로 끼워 넣으면 될까?

 

아직 손상되지 않은 돌들만이라도 고증을 통해 제자리에 옮겨진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수 백 년을 지속적으로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것은 전 세계인의 과제며과거위에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의 책임이며 의무이다.

인간은 동물 중 유일하게 손을 가지고 있다손을 보고 점을 보고 손을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죄를 짓고 용서를 빌 때에도 손을 비비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며 손가락을 절단하는 것은 목숨을 건 결의이기도 하다.

청계천의 첫 삽은 결단의 굳은 손짓이다.

그러나 비밀이 많은 사람은 손을 등 뒤로 감추고 있듯 청계천을 복원하는 손길은 자상하지 못했으며 어머니의 약손이 되지 못했다.

 

동구릉에 누워있는 태조 이성계의 능위에도 봄이 되면 다시 억새풀이 돋아난다.

600년의 뿌리가 겨울 한파 속에서도 살아나 왕과의 대화를 지속하고 있다.

무덤위에 억새는 보기 싫고 주변의 다른 능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잔디로 갈아엎었다면 어땠을까.

주변과의 형평성과 미관적인 면에서 좋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억세가 살아 숨 쉬는 그 역사적 진실은 영원히 묻혀버리고 말았을 것이 분명하다.

긴긴 세월 억새풀은 건원릉을 지키고 앉아 찾아오는 후손들을 반기고 있다.

수표교가 제 곳에 놓일 수 없는 것은 하천깊이를 깊게 파헤쳐 둑 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이라지만 진지한 사전연구가 있어야 했다.

수표교가 나홀로 떨어져 있고 많은 문화유적지가 중랑하수처리장에 방치되어 청계천에는 그저 물만 흐른다면 무엇이 역사와 문화성의 회복인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동구릉 억새풀이 오히려 역사를 잘 견뎌내고 보존이 더 잘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금 손등을 찍고 싶고 두 손을 모아 깊고 깊은 용서를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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