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럽고/풍요롭고/아름다운
홍명희 제 10집을 죽은 최무영 추도시 낭송회가 열리는 인천의 다락방서점에서 만났다.
근 10여년 만에 만나는 얼굴이다.
이날도 가장 뒷켠 비스듬히 앉아 계단을 올라와 내민 얼굴에 물결에 반사되는 한 줌 빛으로 나를 반긴다.
쓴웃음 같기도 하고 흥분을 못내 감추며 들킨 수줍은 소녀의 미소 같기도 하고 나이를 가름하기 어려울정도의 미백의 웃음으로 나를 반긴다.
그저 나도 별일 없다는 냥 웃을 수 밖에 없다.
감히 나는 지금도 그녀라고 말하고 싶다. 그녀를 만난지 40여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주 못쓰는 글씨로 –반갑습니다/김동환씨/홍명희 혜존/032-833-7780
전화번호도 적어 놓는다.
얼마나 무례할 정도로 연락한번 안 했으면 시집한쪽에 친절하게도 아니 경고문처럼 전화번호를 기입한다.
올해로 그녀는 83세.
아직도 남편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풋풋한 스므살 소녀인 그녀의 열 번째 시집을 읽는다.
지금가지 나 혼자 살기 위하여/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지혜를 주시옵소서- 일부)
이 밤을 지내면/오늘은 그만 옛일이 되는/바쁘고 바쁜 세상(젊음의 비상을 위하여- 일부)
일상 보는 얼굴들이지만/안 보이면 궁금하고/만나봐도 그 얘기가 그 얘기지만 /해질녁 아파트 쉼터에는/그런 그런 이야기가 꽃으로 핀다(황혼의 이야기- 일부)
사실 은고리 같은 새벽달을 꿈꾸며 살아왔다/내게 꿈을 주며 살개 했던 시 구절들,시인들/나뿐이랴/그 시절의 막막함을 씻고 씻어내며/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던 사람들(만나봤으면 만나 봤으면- 일부)
매일 보는 나무 나무지만/그 밑에 사람이 있으면/한결 나무도 사람도 다정해 보인다(왜일까는 아니다 -일부)
통유리로 둘러쳐진/아파트의 유리 방 베란다/비가 오나 눈이 오는 날/나가서 앉을 수 있고/계절의 바뀜들 눈으로 보며/하늘에 대고 얘기 하고 싶을 때/나가 앉는다(나의 방- 일부)
팔월 십오일 종전/ 난 전쟁 속에 태어나서/나 열다섯 살 때 해방/십 오년의 나의 전생역사다.(나의 세월 1 -일부)
잘 나고 잘 산다는 것이/무엇인지도 모르면서/이만큼 살아온 것도/ 참 잘 살도 살아왔구나 싶은/ 나의 세월이다(나의세월 2- 일부)
하루 한 번 전화 한 통화 없는/조용한 날이 가고/오늘 며칠이지 무슨 요일이지 싶어/혼자 확인해 보고 웃는다(일상- 일부)
그래도 나는/행복한 늙은이라 여기고 있다(늙은이- 일부)
심심치 않게 걸려 오는 내 전화/여자이거나 남자이거나/잘도 받아 주고/-중략-/나도/세상살이 살짝 피하고 싶을 때/내가 숨어 버릴곳은/우리 남편 이상 편할 곳은 없다(남편 -일부)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빛에는 그림자가 따르듯이/내게는 나를 주시하는 그림자가 있었다/늘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결국 혼자일 수는 없었다(나와의 동행 -일부)
차 한잔도 없는 짧은 만남이었지만/기차... 차창....여행...고독..../특히나 고독을 즐긴다는 말이/지금도 내 안에 살아/내 시심을 울린다(시심 –일부)
그냥 모두가 쑥스럽지 않고 그저 편안할 뿐이다.
평생 내내 수줍음이든 부끄러움이든 소녀경이든 그녀의 10번째 시집은 솔직하고 편안하고 그저 세상을 스스로 수놓는 모습이 아름답다. 나는 그녀에게 약속을 했다.
좋든 나쁘든 비평의 글을 반드시,꼭 보내야 한다는 약속이다.
확연히 구별되는 것은 인생의 달관,인생을 완전 해부하고 다시 봉합수술을 마친 의사의 미소라 할까.
평이하면서도 구김이 없는 삶속의 누애고치처럼 하얗게 돌돌말은 시들이다.
더구나 시평론 따위는 배제하고 익숙하게 지내오던 작곡가 송재철선생의 축하의 글-고령의 나이가 가져다 주는 결실-도 홍명희선생답다.
송재철님은 –이제는 고령이지만 자존심과 기력은 여전하고 선하고 밝은 웃음이 여전하여 나이를 잊게 하는 시인이다-라는 말이 생감있게 시집 전편에 흐르고 있다.(길샘 김동환/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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