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해 을미년이다.
역사의 뒤를 돌아다보지만 양의 해인가 그리 요란스럽지 않다.
그나마 사건으로 나타나는 건 3268년(서기 935년, 고려 태조 18년)의 을미년으로 3월 後百濟(후백제) 神劍(신검)이 왕위에 오른다. 후백제를 건국한 甄萱(견훤)이 후처의 아들 金剛(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신검, 良劍(양검), 龍劍(용검) 등 正妃(정비) 소생의 삼형제가 아버지를 金山寺(금산사)에 유폐시키고 왕위를 찬탈한 사건이다.
그해 6월 견훤은 고려에 투항, 왕건이 후백제를 칠 때 향도가 되어 결과적으로 아들과 골육상쟁을 벌이게 된다.
12월에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 敬順王(경순왕)도 백성들을 肝腦塗地(간뇌도지 : 간과 뇌가 땅에 패대기쳐질 만큼 참혹하게 죽음)시킬 수 없다는 명분으로 천년 社稷(사직)을 신생국 고려에 투항한다. 이에 끝까지 항전하자던 麻衣太子(마의태자)는 눈물을 뿌리며 皆骨山(개골산 : 금강산의 겨울)에 들어가 중이 되고 草食(초식)으로 최후를 마친다.
단기 3628년(서기 1295년, 고려 충렬왕 21년) 을미년에는 삼국시대 이래 耽羅國 (탐라국)으로 존재하던 탐라가 濟州(제주)란 이름으로 바뀐다.
조선 憲宗(헌종) 1년(단기 4168년, 서기 1835년)에는 강화도에 해일이 덮쳐 370호가 침수되고 75명이 사망하는 자연재해가 발생한다.
高宗(고종) 32년(단기 4228년, 서기 1895년) 을미년이 복잡한 사건이 터진다. 3월에는 동학농민봉기의 영도자 녹두장군 全琫準(전봉준)이 日帝(일제)에 의해 처형된다. 이로써 東學(동학)도, 농민봉기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4월에는 한성사범학교가, 5월에는 한성외국어학교가 설치돼 우리나라 최초의 사범학교와 외국어학교가 설립되고 9월에는 太陽曆(태양력)이 채택되고, 11월에는 斷髮令(단발령)이 내려져 다음해 1월 1일(양력)부터 강제로 백성들의 머리를 깎게 했다. ‘몸과 머리카락과 피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니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라고 하는 유교의 가르침에 젖어있던 이 나라 백성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조처였다. 衛正斥邪派(위정척사파)의 거두 勉庵(면암) 崔益鉉(최익현)은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면서 격렬히 저항하기도 했다.
을미년을 대표하는 역사적 사건은 8월에 일어난 乙未事變(을미사변)으로 閔妃弑害事件(민비시해사건/ 明成皇后弑害事件(명성황후시해사건), 여우사냥(일본 작전명)이라고도 불러지는 이 사건은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삼포오루)가 주동이 되어 排日親露政策(배일친로정책)의 배후인물로 지목된 민비를 시해하고 일본세력 강화를 획책한 정변이었다.
이때 미우라는 낭인 자객들을 고용하여 왕비의 침실인 경복궁의 玉壺樓(옥호루)에 난입하여 국모인 민비를 시해하고 시체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민비시해사건으로 국모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인 11월에 단발령마저 내려지자 이에 격분한 유생들이 勤王倡義(근왕창의)의 깃발아래 친일내각의 타도와 일본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드디어 전국 각지에서 乙未義兵(을미의병)을 일으킨다. 제1차 항일의병이라고도 불리는 을미의병은 친일파 군수 등을 처단하고 일본군의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등, 전과도 올렸으나 대부분 유생들로 구성된 의병은 관군과 일본군과의 교전 끝에 패퇴하고 만다.
단기 4288년, 60년 전 李承晩(이승만) 대통령 시절의 을미년 2월에는 2대 부통령이요 전라도가 낳은 교육가, 기업인, 언론인이며 정치가인 仁村(인촌) 金性洙(김성수)가 사망했다. 3월에는 趙瓊奎(조경규)가 국회부의장에 당선되고 10월에는 충주비료공장이 기공되는 정도이다.
그리고 2015년 1월, 끽연가들에게는 단발령만큼이나 충격적인 사건으로 담배 값 인상이라면 조롱거리가 될까.
중국의 소설가며 문명비평가인 임어당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금연가는 인류 최대의 쾌락의 하나를 잃고 있다. 끽연가보다 그 습관은 대체로 규칙적이고 생활이 기계적이며, 언제나 이성이 감정을 지배하고 있다.
나는 이성적인 인간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완전한 이성인이라는 것은 딱 질색이다. 그러므로 재떨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집에 들어가면 언제나 마음이 조마조마하며 불안해 죽을 지경이다. 방은 대체로 지나칠 정도로 깨끗하게 정돈이 되어 있고, 쿠션은 일정한 장소에 놓여 있고, 집안사람들은 새색시 모양으로 단정하고, 인정미라곤 찾을 길도 없다’고 비판한다.
영국의 소설가 세커리는‘담배 파이프는 철학자의 입술로부터 예지를 끌어내며, 우매한 자의 입을 닫치게 한다. 파이프는 명상적이며 생각이 깊고 인자하며 허식 없는 청담(淸談)을 조성 한다’ 라면서 끽연가의 손톱은 더럽지만 마음은 따뜻하고 생각이 깊고 인자하다고 평하고 있다.
이 땅의 흡연자들은 하루 한 갑의 담배를 피우면 연간 120만원의 세금을 내는 충실한 납세자로 이는 9억 원짜리 부동산 세금을 내는 사람과 동일하다.
정부는 4천5백 원이란 담배 값이 가장 많은 세수를 거둘 수 있다는 시나리오 속에 서민들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한해 2조 8천억 원의 세수가 더 걷힌다는 논리다.
얼마 후에는 부호들에게 걷지 못하는 세수를 충당하기 위해 담배에 이어 술에게 세금을 물고
부가가치세도 인상하리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정부가 담배세를 거둬 무엇을 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21세기 단발령만큼이나 가혹한 담배 값 인상과 더불어 거리로만 내몰게 아니라 흡연자들을 위한 흡연실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길거리 휴지통을 치우면 거리에 휴지가 버려지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그 휴지들은 오수통에, 후미진 골목에 하수구 유입구에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흡연실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함으로써 공기청정기기의 개발을 통해 대기환경방지시설사업에서도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
어느 한쪽의 보호를 위해 어느 한쪽을 무참하게 내팽개쳐버리는 행위는 일제시대의 단발령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정부는 과연 이런저런 이유로 금연하게 된 사람들의 건강성과 정신적 안녕을 위한 임상실험을 어디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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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매긴은 이런 말을 남겼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치고 아직 자살한 사람이 없다. 담배파이프의 애용가는 절대로 마누라와 싸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말싸움보다는 이미 담배를 피워물며 어디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5년 을미년은 결국 담배와의 전쟁이란 역사적 기록을 남기게 된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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