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배우는 일은 시기가 중요하다
▲ 만시지탄晩時之歎이란 말이 있다. 정해진 시간이나 시기가 너무 늦어 돌이킬 수 없게 되고, 기회를 놓친 후의 때늦은 탄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의미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과도 비슷한 의미이다.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누구나 열심히 배우려고 한다.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것을 배워도 누구에게 어떻게 배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어느 조직에나 업무에 정통한 직원이 있게 마련이므로 가급적이면 그에게서 듣고 보고 배울 수 있다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상황일 터이니 특별한 사람을 선택하여 배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그 누가 되었든 자신보다 나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두루 묻고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
‘누구한테 배울 것인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운 결과를 ‘어떻게 소화하느냐’ 하는 문제인데, 배우는 자세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냥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배우면서 생각을 해야 한다.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고쳐야 할 부분은 없는지를 고민하는 전향적 사고를 가져야만 가르친 사람보다 배운 사람이 더 나아질 수 있다. 그래야만 부하직원보다 한 수 위인 상급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
배우는 일은 시기도 중요하다. 시기를 특정 하는 것은 어렵지만 가급적 부서배치를 받은 후 1년 이내에 웬만한 것은 다 배워두어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공직을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모르는 것이 많고 그래서 반복해서 물어야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물론 담당업무와 관련된 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부하 직원에게 보고를 받는 것은 배우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형식이다. 또 기억력의 한계 때문에 배운 것을 잊고 다시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업무와 조직 전반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우는 일은 처음 1년 안에 끝내는 것이 좋다. 2~3년이 지났는데도 남들에겐 상식이 되어 있는 것을 묻고 배워야 한다면 그 사람은 그 조직에서 바보 취급당하기 십상이다.
배우는 장소를 사무실과 같은 공식적인 자리로 국한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식사를 하면서, 때로는 가볍게 술을 한 잔 하면서 편안한 자리를 만들어 편한 대화를 통해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사안에 따라서는 사무실에서 하기 힘든 이야기도 보다 편안한 자리라면 적나라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꼭 자기 부서의 동료나 직원들로부터만 배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동호회와 같은 비공식informal 조직에 참여하여 활동하면서 인간관계의 폭도 넓히고 조직문화에 동화할 수 있다면 그 또한 권장할 만한 일이다.
제2장
정책기획에 대하여
2.1. 현황 및 문제점 파악은 누구나 할 수 있다 2.2. 문제의 실체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라 2.3. 문제해결을 위한 가능한 모든 대안을 도출하라 2.4. 객관적, 과학적으로 대안의 타당성을 분석하라 2.5 ‘무엇을’만이 아니라 ‘어떻게’까지 고민하라 2.6. 대안 추진 시 예상되는 문제점을 간과하지 마라 2.7.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2.8. 이해당사자를 설득할 때는 진심으로 다가가라 2.9. Timing이 중요하다 2.10.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준비하라 |
2.1. 현황 및 문제점 파악은 누구나 할 수 있다
▲ 정책결정 과정은 정책의제의 채택, 정책목표의 설정, 대안의 탐색과 검토 등의 단계를 거치는 동태적動態的 과정이다. 즉 정책과 관련된 각종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고, 그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탐색하고, 몇 개의 대안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것인가를 비교·평가하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비로소 대안을 선택하여 정책으로 내어놓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과거의 선례를 많이 참조하는데, 선례가 없는 경우, 즉 비정형적 결정을 해야 할 때 합리合理모형, 만족滿足모형, 점증漸增모형, 혼합混合모형, 최적最適모형 등과 같은 방법들이 활용된다.
대다수의 공직자들은 주어진 업무에 관하여 잘 파악하고 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이 잘 집행되지 않고 의도한 성과가 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도 대부분 잘 알고 있다. 물론 가끔은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문제아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필자가 경험한 공무원들은 대부분 발생한 문제의 원인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많은 공직자들이 현황과 문제점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직원들로부터 관련된 보고를 받거나 기획안을 만들어 결재를 받으러 온 직원들에게 질문을 해보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현황은 어떻고 문제점은 이러 저러하다고 장황하게, 그리고 소상하게 잘 설명하지만 그쯤에서 말을 끝내고는 상관의 눈치를 살피는 경우가 태반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즉 결론부분이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소신을 가지고 일을 좀 한다고 하는 직원들은 다행히도(?)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또 거기서 끝이다. 제시한 해결책들이 과연 실행 가능한지, 효과가 있을 것인지, 또 다른 대안은 없는지, 또는 제시한 해결책대로 실행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다른 문제점은 없을 것인지, 제시한 해결책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며 그 준비사항은 어떠한지 등등, 정책 하나를 만들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고민하고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무수히 많건만 문제의 해결은 오리무중으로 부유한다. 그 문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고, 그 문제의 해답을 찾아야 하는 책임도 일차적으로 담당자 본인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관의 처분만 바라고 있는 듯한 태도로는 훌륭한 공무원, 유능한 공무원이 될 수 없다. 해결책은 방치한 채 문제점을 분석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상관이 나를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아서는 매우 곤란하다.
현황과 문제점까지 만으로 보고를 끝내는 것은 고민하지 않는 평소의 모습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 모습은 그들이 덜 훈련되어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다뤘지만, 특정 분야의 업무에 관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고 따라서 그 업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가장 많이 고민해온 사람은 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 바로 본인이기 때문이다. 상관이 실무자들보다 폭넓게 알 수는 있지만 특정업무에 대해 더 깊이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관으로부터 답을 얻으려고 하는 부하직원은 무능하거나, 무소신이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문제에 대한 의식 자체가 없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 대학에서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이론적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배운 지식을 실무과정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분들을 위해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들, 습관적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적용해야 할 과정과 요소들에 대해 필자 나름대로 체득한 것들을 아래에 서술하고자 한다.
2.2. 문제의 실체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라
▲ 실체實體, substance는 전통적인 유럽 철학의 기본개념으로,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화할 수 있는 성질·상황·작용·관계 등의 근저根底에서 그것들을 받들고 있는 기본 존재를 의미한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실체는 하나이거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데,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달리 보일 수 있는 현상을 경고하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공직자들은 담당한 업무 중에 문제가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제도나 정책을 추진하다보면 여러 가지 민원이 발생하거나 이해관계자들의 반대 내지는 반발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공직자들은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된다. 때로는 사건 사고 등을 통해, 때로는 감사원 감사나 국정감사 과정에서 문제를 지적받기도 하고,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문제를 인지하기도 한다.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건 공직자들은 상시로 담당하고 있는 업무 중 문제가 있는 부분을 인식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포인트는 앞에서 말한 경로를 통해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피상적인 수준에 그칠 위험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필자가 현직에 근무할 당시의 어떤 경험들은 반추할 만한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담당자의 보고를 받는 중에 문제의 본질을 보다 깊이 알아보기 위한 몇 가지 추가적인 질문을 던져보기도 하는데, 많은 경우에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던 기억이 필자에게 있다. 짐작컨대 그 원인은 문제를 인식하게 되는 경로가 어느 일방의 주장만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된 내용을 그대로 전달받는 방식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기에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경로에만 의존하는 안이한 정보 수집으로는 역부족인 것이다.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을 직접 부딪혀 만나보고, 현장을 확인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는 등 정보 수집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주장이 충돌할 때에는 객관적,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여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또한 단순히 문제 그 자체뿐만 아니라 문제의 발생원인과 과정, 문제와 관련된 이해관계자 및 그들의 입장,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제도 및 정책, 행태 등 다양한 요소들까지도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제를 세밀히 살피는 과정은 문제해결의 해법을 찾는 과정을 포함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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