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이야기
정부가 바뀌면서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즈음, KEI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위촉직이 많다는 것, 둘째는 사전환경성평가 검토 업무를 위한 인력 23명을 뽑았는데 사업비에서 고용했던 인원이라 정규직 TO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가 바뀌어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면 23명은 퇴직을 해야 하는 TO였던 것입니다. 정부가 바뀌기 전 이를 정규직 TO로 전환시키는 것이 당시 KEI의 제일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당시 정규직 TO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이를 위해 노력한 연구기관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노력을 한 우리는 23명 모두 정규직 TO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이사회에 퍼지면서 결국 KEI의 정규직 TO는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대신 정권 말년에 나머지 TO를 정규직 TO로 전환시켜 주겠다는 보장을 받았습니다.
정회성
정은화 선생이 연구원 깃발을 들고 무대를 올라가 흔든 후 (고)김대중 (전)대통령께서 수상 메달을 걸어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송영일
원장 재임 시절 해외출장을 딱 두 번 갔습니다. 첫 해외출장 시 여행사에서 제가 자주 해외로 나갈 것으로 알았는지 비행기표를 1등석으로 업그레이드해 줬습니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원장이 꼭 출장을 나가야 할 일은 많지 않은 것 같았고 원장이 한 사람의 해외출장 비용이면 연구원 10명은 갔다 올 수 있으며 그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따라서 원장의 해외 출장을 최소화하였습니다. 연구원을 떠난 후 해외 출장을 갈 기회가 있어 연구원 담당 여행사에 연락을 했더니 담당 직원이 원장 재직 시 어쩌면 해외 출장을 두 번밖에 안 갈수 있었냐고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상은
2001년 당시 WEF에서 한국의 ESI 순위를 95등으로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발표가 금요일에 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다음 월요일이 환경부의 대통령업무보고가 있는 날이라 그 전에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여 장관께 보고해야만 했기에 매우 난감했었습니다. 이 때문에 KEI 직원들이 엄청나게 고생했습니다. 순위에 대한 원인분석 결과 한국의 경우 1995년 이전 자료를 입력 자료로 사용해 ESI 순위가 낮게 평가된 것으로 환경부에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환경부 업무보고를 받으신 대통령께서 그러면 현재 자료를 사용하면 ESI 순위가 몇 등이냐 되냐고 되물으셔서 다시 그 답변 자료를 만드느라 연구원 박사들이 다시 고생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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