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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경영신문/176호

국회의원은 갑인가, 을인가

 

 요즘 들어 많은 국회의원들이 대기업의 횡포와 만행에 대해 을의 현주소를 찾아보려는 행동과다양한 목소리를 뒤늦게 펼치고 있다. 경제민주화법안을 만들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민생우선 생활정치에 앞장서고 야당에서는 생활밀착형 정책정당을 선언하기도 한다. 구호성 선언들일지라도 국민이 두들기는 신문고의 울림만큼 파장이 크다. 그러나 이 울림이 얼마만큼 멀리, 청아하게 퍼져나갈지는 의문이다.
 이쯤에서 250년여 전 조선 정조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 선생이 유배지 강진에서 쓴 시조 '독소(獨笑)를 음미하자.
 
有粟無人食 (유속무인식), 양식 많은 집은 자식이 귀하고
多男必患飢 (다남필환기) ,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있으며,
達官必準愚 (달관필준우) ,높은 벼슬아치는 반드시 멍청하고
才者無所施 (재자무소시)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를 펼칠 길이 없다.
家室少完福 (가실소완복) ,완전한 복을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 (지도상릉지) ,지극한 도는 늘상 쇠퇴하기 마련이며,
翁嗇子每蕩 (옹색자매탕) ,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婦慧郞必癡 (부혜랑필치)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이다.
月滿頻値雲 (월만빈치운) ,보름달 뜨면 구름 자주 끼고
花開風誤之 (화개풍오지) .꽃이 만개하면 바람만 불어댄다.
物物盡如此 (물물진여차) .세상일이란 모두 이런 것
獨笑無人知 (독소무인지) ,나 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으리
 
 250년여 전의 풍자시가 현재에도 살아 숨 쉰다. 이를 다시금 현재의 국회나리들의 꼴로 풍미하면 정치는 홀로 다하듯 바쁘다고 서민들은 만나주지 않고, 도로 한복판에 죽음이 던져져야 설치는 꼴이며, 지혜롭지도 않은 것이 바보도 아닌 것이 헛물만 켜고, 재주 있는 인재는 적으로 묵살하고 마니……. 대충 이런 식으로 풀면 짝퉁일지언정 풍자시 한수가 너끈히 탄생한다.
 찾아가는 정부는 있어도 국회는 찾아오는 사람도 반기기는커녕, 자리를 피하고, 대기업이 부르면 기꺼이 약속을 변경해서라도 만나주지만 중소기업이나 노동자, 시민들의 목소리는 들을 생각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만나줘야 하는 지인들을 대동해서야 만나기는 하지만)
 여, 야 할 것 없이 이 틀은 좀체 깨지지 않는다. 그래서 진정성을 들고 하소연이라도 하고자 찾아가는 여의도는 천릿길보다 멀고도 멀다. 이리저리 지연, 학연, 별별 수단을 다 써 만나지만 이래서 어렵고 저래서 안 되고 기껏 던지는 말이 관련부처에 가서 상담해보라는 것이 고작이다. 이러니 전국의 넝마들이 여의도 한복판 도로를 깔고 앉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노래 부르고, 대리점주들이 자신이 목숨과도 같은 사무실을 폐쇄하고, 분신자살한 후 언론에 보도 되서야 마치 학도병이라도 된냥 슬쩍 끼어서 항거의 깃발을 든다.
 “현대판 노예문서에 옭아 매여 고혈을 빨리면서도 고통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던 대기업 편의점 가맹점주들과 대리점주들. 대형마트와 SSM 등의 생존권 침탈 행위에 막다른 골목까지 몰린 골목상권 상인들. 마음 편하게 장사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마저도 짓밟힌 채 거리로 쫓겨나야 했던 임차상인들이다. 대기업과의 계약관계에서 을이라는 이유만으로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착취당하고 인격적 무시와 반인간적 모멸을 당하고 있는 상인들이야 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경제민주화의 당사자들이다. 경제민주화는 갑을간의 경제정의가 지켜지는 상식적인 사회를 의미한다.” 경제민주화와 ‘을’ 살리기 선언문의 한 부문이다.
 모르면 차곡차곡 시간을 두고 근본부터 헤아릴 생각은 없이 쫓기듯 선언문도 아닌 보도 자료만 던져놓고 자신들의 집단 이기주의적 행태를 반복하는 이들이 과연 을의 진정성에 대하여 얼마나 해독할 수 있을까.
 정부를 탓하기 전에 정부요인들과 대기업과의 소통만 일삼던 그들에게서 골목의 목소리는 어디 저울로 달 수 있겠는가.
 한갓 티끌, 먼지와도 같은 미물인 것을.
 해외나들이에 외무부인력을 하인처럼 부리는 국회, 정부와 소통은 하되 대리점들의 이야기는 건성으로 던져버리는 국회, 필요예산과 불필요 예산도 분간 못하고 땡치기 하듯 자신의 지역 현안과 부처 예산을 흥정하는 국회, 여론몰이에는 강성 논객들을 동원하고 집단의 개혁에는 배제하는 국회, 한 이년만 흘러도 과거를 잊어버리는 국회,
단상에서 목 놓아 울분을 토하다가도 대기업과 절친한 우정의 잔을 나누는 국회,
3선, 4선 당선만 되면 자자손손  이어가지만 지방의원이나 시장군수는 3선 연임으로 재한하는 한국적 발상을 정당화하는 국회.
 오죽하면 250년여 전 다산 정약용 선생도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를 펼칠 길이 없고, 지극한 도는 늘상 쇠퇴하기 마련이라.”며 독침을 놓았겠는가.
 
국회의원 그대는 지금 갑의 그림자인가, 을의 본체인가.
 
(그나마 묵묵히 빈자리를 골라가며 골목을 누비던 의원들이 공천마저 받지 못하고 대거 탈락하는 비운이 또다시 재현될지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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