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산업 탐구 [1]
21세기 중심에 선 수처리전문기업 유천엔바이로
28년의 정통 과 환경산업의 선도적 역할
수중폭기,탈수기의 코리아 모델 개발
유천엔바이로는 우리나라 수처리 산업에 있어서 확실한 선과 맥을 이어가는 몇 안되는 기업이다. 수많은 수처리 기업들이 시대적 흐름과 함께 탄생되었지만 고달프기만 한 우리나라 환경산업만큼 흥망성쇄가 극명하다. 대체적으로 400여 기업이 존재하지만 환경산업의 표상처럼 대체적으로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 이유는 한국적 실상에 맞는 기술의 개발과 선진해외기술의 접목을 간과하고 단일품목에 의존 신규로 개발된 신제품에 밀려나기 때문이다. 영업방향도 기술우의의 전문성보다는 영업전략의 단계적 포석이 부족한 상태에서 인간관계에 의존한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처리 산업은 고소와 고발 그리고 법정 분쟁이 많은 분야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유천엔바이로의 문창용사장(56세)은 그런 시대적 부조화속에 새로운 전략과 항시 앞서가는 기술개발 및 도입등으로 환경산업의 그늘진 곳을 잘 더듬어 성장하고 있는 몇안되는 기업중 하나다. 문사장은 30년전인 1978년 환경보전법이 발효되기도 전에 선진국에서는 이미 제도화 활용화되고 있고 산업화의 근간이 마련된 환경종합기업인 미국의 엔바이로테크 및 일본 스미토모의 한국대리점에서 환경비지네스로 시작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의 출발점이 환경이라 유독 독특하다. 지금이야 많은 사람이 환경산업을 실행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선구자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공해시대의 산업전선에 선 당시로는 젊은 환경산업인으로 출범한다.
문사장은 외국계기업에서 활동하면서도 끊임없이 기업가적 정신을 살찌운다. 그리고 3년 후, 1981년 2월 유천엔지니어링을 설립하여 수입에만 의존하던 탈수기 및 수중포기기를 국산화하여 우리나라 환경산업에 있어서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중폭기기및 탈수기의 국산화를 실행시킨 장본인이 된다. 1980년대초 환경오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정부도 보사부 공해계에서 환경청을 설립하여 다가오는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대비하기위한 전략을 모색하고 있던 환경에서만큼은 황무지시대, 수질오염은 가속화되고 있어도 기존의 수처리 기자재는 수입에만 의존하고 있어 감히 비싼 고가의 장비로 우리나라 하천과 수처리장을 개선할 꿈도 꾸지 못햇던 시절이다. 국산화 및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고자 창업하게 되었던 뚝심이 오늘에 유천을 만들게 된 근간이다. 당시의 수처리현황은 국내기술이 전무하고 환경개선기술은 그야말로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이다. 모든것이 선진기술을 모방하고 도입하여 분해하여 한국적 모델을 개발하는 시대이다. 창업 후 문사장은 선진국의 기술의 모델로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한 결과 수처리 기자재(산업용탈수기) 국산화에 성공하여 국내 하수처리장 및 기업체의 폐수처리장에 공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외에도 유천이 수처리 분야에 각종 기기를 개발한것은 다양하다. 그리고 품질과 기술면에서 오히려 선진외국기술을 능가하고 있다.
오늘날의 유천을 확인시켜준 탈수기와 수중폭기기가 트레이드 마크라면 문사장은 영업하는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 필요한 기술, 아쉬운 기술을 개발하고 정보를 얻기위해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