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던 추억은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길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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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이 개통되었단다. 어릴 적 낭만을 쫓아 상봉역으로 갔다.
3호선을 타다가 옥수에서 7호선을 갈아타고 상봉까지 가는 시간은 50여분.
7호선 열차 내 안내판에는 아직 상봉역에 정차한다는 표시가 나와 있지 않아 초행자는 혹 잘못 탔는지 확인될 때까지 근심을 해야 했다.
개통전에 이미 안내표지판 교체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시민의 근심은 언제나 뒷전이다.
상봉역에서는 매 정시에 급행이, 20분과 40분에는 완행이 달린다.
춘천까지 가는 역마다 젊은 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 도저히 그냥 앉아 있기가 서운하여 아예 창밖을 보며 옛 그림자를 떠 올린다.
퇴계원,금곡,마석,대성리,청평,가평,강촌,춘천
곳곳이 추억의 앨범을 들치듯 젊은 날의 초상들이 선명하게 펼쳐진다.
다만 과거에는 느린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기타를 치거나 기타소리에 함께 부르던 노래 속에 달려갔다면 지금은 침묵과 회상으로 담담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속으로 달려간다는 차이다.
급행이 정차하는 역은 상봉을 출발하여 퇴계원, 평내·호평,마석,청평,가평,강촌,남춘천,춘천등 10개역, 완행은 신내,갈매,별내사릉,금곡,굴봉산,백양리,김유정,등을 포함하여 모두 18개 역이다.
퇴계원 배밭에서의 추억, 장마비에 온몸이 젖어서도 춥지 않았던 소녀들과의 하루.
청평 모래사장에 꿈을 쌓고 또 쌓으며 떨어지는 유성을 보고 울어야 했던 별들과의 대화.
청평, 강촌, 어디하나 버리고 싶지 않은 추억의 사진들이 살갑게 다가온다.
나이가 먹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는데 추억을 맛있게 먹으려면 아름다운 추억을 가득가득 만들어야 하는데 나에게서 군밤 같은 추억은 얼마나 될까.
도광스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아이 때는 예의를 잘 지켜야 하며 ,청년 때는 정렬을 가다듬어야 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차별을 하지 말고 ,늙어서는 체험에 판단을 흐리지 말아야 죽을 때 후회 없이 마감한다고 하는데.
그 아름다운 추억들은 기차가 떠나고 얼마 안 있어 어둠속으로 숨어 버리고 말았다.
상봉에서 퇴계원까지 굴이 둘, 마석, 청평간은 7개, 청평, 가평 구간은 5개, 가평 강촌간은 4개, 강촌과 남춘천 간은 3개 등으로 모두 23개의 굴을 통과해야 했다.
급행 1시간 10분 동안 한 역에 1개 이상의 굴을 통과해야 하므로 굴을 통과하는 시간을 1분씩만 잡아도 모두 23분을 어둠속에 묻어야 했다.
잠시 청평댐인가 하니 굴로 들어가야 하고. 강물에 투영되던 추억은 캄캄하게 멈춰버린다.
열차에는 제법 새해 첫 일요일이고 개통됨을 축하하는 마음과 회상에 젖어보기 위해 그런데로 붐비지만 실망감이 역력하다.
경춘선 개통 후 막국수와 닭갈비가 10에서 20%씩 인상되었다며 벌써부터 투정이다.
철도건설에 소요되는 경제성과 출퇴근 등 업무를 위한 설계인지 몰라도 지역적 특성과 경관을 조절하여 강변으로 철로가 달리는 그런 설계는 과연 낭비성이고 순전히 개인적 욕심일까 반문을 한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야스나리의 소설 설국. 시미즈 행 기차를 타고 굴을 통과하면 눈이 내리는 그런 풍경은 볼수 없어도 눈 쌓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달려가는 그런 정감있는 열차는 우리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인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춘천 가는 길, 갈 때 마다 정체 속에 길 위에 서 있어도, 해마다 그리워 또 가는 길, 그 황홀한 길이 터널 속에 갇혀 속도굉음만 울리고 있었다. 나의 신년 초 나들이 6시간은 매우 캄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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