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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9. 길샘 김동환 칼럼 - 물 산업 육성, 최대 시장인 지자체부터 개혁하자

물 산업 육성, 최대 시장인 지자체부터 개혁하자

 

물 산업을 육성한다며 지원금을 주고, 인증을 늘리고, 실증단지를 조성하면 세계적인 물 기업이 탄생할 수 있을까?

이제는 물 산업정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되물어야 한다. 물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를 기업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기업을 키우지 못하는 공공시장부터 해부해야 한다.

최근 공공하수도 민간 위탁 관리대행업 입찰에서 법 개정 8개월 만에 입찰가가 72%대로 떨어지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가격경쟁이 지속되면 기업은 인력과 기술개발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219개에 이르는 민간 관리대행업체 역시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시장에서 이탈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전문산업인 하수도 운영이 ‘누가 더 싸게 할 것인가’의 경쟁으로 전락한다면 물 산업의 미래는 없다.

 

10여 년 전 국내 대기업들은 프랑스 베올리아와 같은 세계적인 물 기업을 목표로 물관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코오롱을 비롯해 태영·SK·LG 등이 잇따라 하수도 운영사업에 참여했지만, 결국 관련 사업을 매각했다.

왜 세계적인 물 기업을 만들겠다며 뛰어들었던 대기업들이 철수했는가? 기술력이 없어서였을까? 기업가 정신이 부족해서였을까?

그보다 먼저 물 산업의 시장 구조를 물어야 한다.

정부는 물기술인증원과 물산업협의회, 물산업클러스터 등의 기능을 통합해 물산업진흥원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원체계 일원화는 필요하지만, 기관을 통합한다고 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물 산업정책은 창업→인증→실증→지원금이라는 지원의 사슬은 만들어왔지만, 기업이 중견기업과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는 시장의 사슬은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10년 전 작은 물 기업이 지금은 얼마나 성장했는가? 수십 년 역사를 가진 기업조차 2·3세 승계보다는 폐업을 선택하는 현실이라면 정책의 성과지표부터 바꿔야 한다.

기업 수와 인증기업 수가 늘어난 것이 물 산업의 발전은 아니다.

물 산업은 작은 기업을 많이 만드는 산업이 아니라, 작은 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는 산업​이어야 한다. 

 

문제는 시장이다.

물 산업의 최대 수요자는 정부와 지자체, 공기업이다. 기업은 공공시장에서 기술을 적용하고 실적을 확보해야 민간시장과 해외시장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국내 물 시장은 가격과 기존 실적, 관행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어렵게 기술을 실증해도 실제 구매와 사업화 단계에서 막히는 이유다.

특히 정부가 직접 추진하던 사업이 지방정부와 공공기관 중심으로 분산되면서 물 시장은 오히려 잘게 쪼개졌다. 전국적인 산업정책보다 지자체별 예산과 발주가 시장을 결정하는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결국 물 산업의 최대 시장인 지자체가 산업을 키우는 구매자가 아니라 단순한 비용 절감형 발주기관에 머무는 것이다.

자동차·반도체·배터리 산업에서는 대기업의 구매가 협력기업의 기술개발과 성장을 견인한다. 그러나 물 산업에서는 공공부문이 최대 시장이면서도 혁신 기술의 초기 고객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 물관리에서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기준도 여전히 ‘싸게 운영하는 것’이 ‘잘 운영하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물관리는 단순한 청소용역이 아니다.

정수장과 하수처리장은 기후 위기 시대의 핵심 인프라이며 토목·환경·화학·기계·전기·ICT·에너지가 결합한 종합산업이다. 단순히 당장 계약가격을 낮추는 것으로는 기술도 기업도 성장할 수 없다.

이제 지자체는 최저가격이 아니라 생애주기비용과 성과를 봐야 한다. 당장 싼 기술이 아니라 10년, 20년 동안 에너지와 약품비를 얼마나 줄이고, 사고 위험을 얼마나 낮추며, 물과 자원을 얼마나 회수할 수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도 달라져야 한다. 순환보직으로 물관리 전문성이 축적되지 않는 행정체계에서는 첨단 물 기술을 평가하고 구매하는 것조차 어렵다.

따라서 물 산업 육성의 출발점은 기업지원금이 아니라 공공시장의 구매혁신이어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원기관을 하나 더 만드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공공 물 시장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감사원 역시 단순한 비용 절감에서 벗어나 전문성·기술력·장기적인 안전성과 효율까지 평가하는 감사로 관점을 넓힐 필요가 있다. 국회는 지자체의 혁신구매를 뒷받침할 제도와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물산업진흥원도 마찬가지다. 또 하나의 인증·지원기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공공시장을 열고, 기술을 실증하고, 실제 구매로 연결하고, 국내 실적을 해외시장으로 이어주는 산업 성장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물 기업의 숫자를 늘리는 정책이 아니다.

기업이 살아남고 성장하며 세계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정책이다.

물 산업의 실패를 기업 탓으로 돌리는 것은 가장 쉽다. 그러나 물 기업을 만드는 것도 정부이고, 최대 고객도 정부와 지자체다.

지자체의 발주 한 건이 기업의 기술개발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좋은 기업을 키우고 싶다면 먼저 좋은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물 산업 개혁의 출발점은 기업이 아니라 공공시장이고, 그 첫 번째 개혁 대상은 물 산업 최대 시장인 지자체다.

지자체가 물 기업을 죽이고 살릴 수 있다.

당장 예산 절감은 미래에 더 많은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

물 산업에 관한 경영 측면의 기초연구조차 없는 현실도 부끄러운 일이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