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산업 육성, 최대 시장인 지자체부터 개혁하자
물 산업을 육성한다며 지원금을 주고, 인증을 늘리고, 실증단지를 조성하면 세계적인 물 기업이 탄생할 수 있을까?
이제는 물 산업정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되물어야 한다. 물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를 기업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기업을 키우지 못하는 공공시장부터 해부해야 한다.
최근 공공하수도 민간 위탁 관리대행업 입찰에서 법 개정 8개월 만에 입찰가가 72%대로 떨어지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가격경쟁이 지속되면 기업은 인력과 기술개발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219개에 이르는 민간 관리대행업체 역시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시장에서 이탈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전문산업인 하수도 운영이 ‘누가 더 싸게 할 것인가’의 경쟁으로 전락한다면 물 산업의 미래는 없다.
10여 년 전 국내 대기업들은 프랑스 베올리아와 같은 세계적인 물 기업을 목표로 물관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코오롱을 비롯해 태영·SK·LG 등이 잇따라 하수도 운영사업에 참여했지만, 결국 관련 사업을 매각했다.
왜 세계적인 물 기업을 만들겠다며 뛰어들었던 대기업들이 철수했는가? 기술력이 없어서였을까? 기업가 정신이 부족해서였을까?
그보다 먼저 물 산업의 시장 구조를 물어야 한다.
정부는 물기술인증원과 물산업협의회, 물산업클러스터 등의 기능을 통합해 물산업진흥원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원체계 일원화는 필요하지만, 기관을 통합한다고 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물 산업정책은 창업→인증→실증→지원금이라는 지원의 사슬은 만들어왔지만, 기업이 중견기업과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는 시장의 사슬은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10년 전 작은 물 기업이 지금은 얼마나 성장했는가? 수십 년 역사를 가진 기업조차 2·3세 승계보다는 폐업을 선택하는 현실이라면 정책의 성과지표부터 바꿔야 한다.
기업 수와 인증기업 수가 늘어난 것이 물 산업의 발전은 아니다.
물 산업은 작은 기업을 많이 만드는 산업이 아니라, 작은 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는 산업이어야 한다.
문제는 시장이다.
물 산업의 최대 수요자는 정부와 지자체, 공기업이다. 기업은 공공시장에서 기술을 적용하고 실적을 확보해야 민간시장과 해외시장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국내 물 시장은 가격과 기존 실적, 관행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어렵게 기술을 실증해도 실제 구매와 사업화 단계에서 막히는 이유다.
특히 정부가 직접 추진하던 사업이 지방정부와 공공기관 중심으로 분산되면서 물 시장은 오히려 잘게 쪼개졌다. 전국적인 산업정책보다 지자체별 예산과 발주가 시장을 결정하는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결국 물 산업의 최대 시장인 지자체가 산업을 키우는 구매자가 아니라 단순한 비용 절감형 발주기관에 머무는 것이다.
자동차·반도체·배터리 산업에서는 대기업의 구매가 협력기업의 기술개발과 성장을 견인한다. 그러나 물 산업에서는 공공부문이 최대 시장이면서도 혁신 기술의 초기 고객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 물관리에서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기준도 여전히 ‘싸게 운영하는 것’이 ‘잘 운영하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물관리는 단순한 청소용역이 아니다.
정수장과 하수처리장은 기후 위기 시대의 핵심 인프라이며 토목·환경·화학·기계·전기·ICT·에너지가 결합한 종합산업이다. 단순히 당장 계약가격을 낮추는 것으로는 기술도 기업도 성장할 수 없다.
이제 지자체는 최저가격이 아니라 생애주기비용과 성과를 봐야 한다. 당장 싼 기술이 아니라 10년, 20년 동안 에너지와 약품비를 얼마나 줄이고, 사고 위험을 얼마나 낮추며, 물과 자원을 얼마나 회수할 수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도 달라져야 한다. 순환보직으로 물관리 전문성이 축적되지 않는 행정체계에서는 첨단 물 기술을 평가하고 구매하는 것조차 어렵다.
따라서 물 산업 육성의 출발점은 기업지원금이 아니라 공공시장의 구매혁신이어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원기관을 하나 더 만드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공공 물 시장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감사원 역시 단순한 비용 절감에서 벗어나 전문성·기술력·장기적인 안전성과 효율까지 평가하는 감사로 관점을 넓힐 필요가 있다. 국회는 지자체의 혁신구매를 뒷받침할 제도와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물산업진흥원도 마찬가지다. 또 하나의 인증·지원기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공공시장을 열고, 기술을 실증하고, 실제 구매로 연결하고, 국내 실적을 해외시장으로 이어주는 산업 성장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물 기업의 숫자를 늘리는 정책이 아니다.
기업이 살아남고 성장하며 세계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정책이다.
물 산업의 실패를 기업 탓으로 돌리는 것은 가장 쉽다. 그러나 물 기업을 만드는 것도 정부이고, 최대 고객도 정부와 지자체다.
지자체의 발주 한 건이 기업의 기술개발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좋은 기업을 키우고 싶다면 먼저 좋은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물 산업 개혁의 출발점은 기업이 아니라 공공시장이고, 그 첫 번째 개혁 대상은 물 산업 최대 시장인 지자체다.
지자체가 물 기업을 죽이고 살릴 수 있다.
당장 예산 절감은 미래에 더 많은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
물 산업에 관한 경영 측면의 기초연구조차 없는 현실도 부끄러운 일이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