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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샘의 차 한잔의 추억–환경과 보건 과학자들의 사랑방 불광동 미도다방

길샘의 차 한잔의 추억환경과 보건 과학자들의 사랑방 불광동 미도다방

 

불광동 45년 역사의 마지막 미도다방도 문을 닫아

국립환경과학원, 국립보건원의 사랑방이던 미도다방

세시봉에는 통기타가수들이, 미도다방은 환경과학자가

 

엣 풍광이 전설처럼 살아있는 추억의 다방을 이제는 시골스러운 동네에서나 만날 수 있다. 전주에는 완산구 동문길에 위치한 1952년생 삼양다방이 몸치장(리모델링)을 하면서 역사속에 숨을 내쉬고 있다. 그 자리에 그 이름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이 아마도 우리나라 최고령 다방일 듯 싶다.

대전역 중앙시장 입구에 위치한 중앙다방도 50년을 넘었고 실내에도 유행이 지난 테이불과 고풍스러운 탁자로 손님을 맞는다.

무교동에는 통기타 가수들의 사랑방이며 작업실이던 60년대 개업한 세시봉이 있다.

그리고 서울 은평구 불광동 역 주변에는 커피숍, 벨라지오호텔 카페등이 수미터 사이로 있지만 그 중앙에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며 당당히 자리를 지켰던 미도다방이 결국 문을 닫았다.(을사년 겨울날이다)

불광역 3번 출구는 주말이 아닌 평일에도 북한산을 향한 발길들이 끊이지 않는 길목이다. 근처에는 서울의 미래유산인 천주교 불광동 성당(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축물)있으며 북한산으로 오르는 구기터널 못 미쳐서는 닭백숙에 고스톱으로 밤길을 숨죽이며 내려왔던 숲속에 숨겨진 음식점도 있다.

 

미도다방은 불광동의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잡았던 보사부 산하 국립보건원과 함께 한 다방이다.(5년전 미도커피숍으로 간판을 리모델링 했지만 불광동 과학원 식구들에게는 미도다방이 더 친숙하다.) 1978년 개원한 국립환경연구소 직원들의 쉼터이고 사랑방으로 국립환경연구원(1986)과 함께 커피향으로 익혀진 곳이다. 20007월 국립환경연구원이 수도권매립지로 이전하기 전까지 미도다방은 환경과학원 박사들의 쉼터였다. 이후 국립환경과학원과 마주하던 보사부 산하 국립보건원(식품의약품안전청)마저 2010년 오송으로 이전하면서 낯익은 손님들은 모두 떠났다.

종종 산을 내려와 차를 마시던 손님들도 주변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고 미도다방은 과거를 짊어진 고령의 어른들이 커피향에 턱을 괴고 자리를 지킬 뿐이다. 미도다방 뒤편 골목 식당가 목포식당 주인도 요양원에 갔고 묵은김치의 그 맛도 사라져 갔다.

국립환경과학원 자리는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사용하다가 이제는 환경산업기술원이 리모델링을 하고 자리잡고 있다. 식약청이 있던 자리에는 서울혁신파크가 박원순시장 시절에 입주해 있지만 뜨내기가 입주한 듯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6,70년대 한국 최초의 음악감상실로 <아주 멋지다>라는 뜻을 지닌 무교동의 세시봉에는 <사랑밖엔 난 몰라요> 조영남, <웨딩케익> 윤형주, <왜 불러> 송창식,<한 잔의 추억> 이장희, <사랑하는 마음> 김세환등 통기타 가수들의 고향이며 사랑방이며 작업실이었다.

반면 불광동 미도다방은 환경과학원 연구관들이 한달간 외상 거래를 했던 술집이며 식당 주인들과 이곳에서 만나 외상값을 정리하기도 한 곳이다. 하얀색 바탕에 꽃무늬와 미도라는 글씨가 새겨진 테이불보 마다 과학원의 낯익은 얼굴들이 서려있는 곳이다.

특히 보사부 국립보건원 출신들로 환경과학원의 자리를 만들어 갔던 유재근, 이길철, ()최덕일 원장부터  자동차공해연구소 조강래소장, (故)신상철, 신찬기박사등이 자주 들락이던 애증의 사랑방이었다.

비밀스러운 고백은 조강래박사가 미도다방의 주인장(마담)의 안내로 집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살아있는 넝쿨식물로 방 벽과 창문을 장식하여 싱그러움이 한껏 베여난다고 마담집의 풍경을 그윽하게 회상한다.

참 안스러우면서도 다정하고, 정감있으면서도 싱그러운 멋과 맛을 주는 카페분위기를 안방에서도 연출하며 살았다는 미도다방 마담. 북한산 오르는 길가에 핀 은행나무 노랑잎이 떨어지듯 이제 국립환경과학원 식구들에게도 엷은 잔상으로만 남게 되었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