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는 문화 산책-쪽빛 화가 남정 박노수
담백, 단순, 선명, 명쾌한 선과 쪽빛의 화가 남정 박노수
동양화에서 한국화로 넘어서는 길목 ‘남정화풍’의 향연
충남 연기군 전의면 금사리에서 남정 박노수 태어나다
90년대 이후 카드, 달력, 연하장 등 다양한 곳에서 삽화처럼 만나게 되는 한국화의 거장 남정 박노수(1927~2013년).
박노수 화백은 1927년 2월 17일 충남 연기군(현 세종시) 전의면 금사리에서 태어났다.
공주군 정안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45년에 충청북도 청주상업학교를 졸업할 즈음 그림에 뜻을 두기 시작하였고, 상경하여 청전 이상범으로부터 사사(師事)하였다. 1946년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제1 회화과의 첫 입학생이 되었고 재학 중에 김용준(金瑢俊), 이상범, 노수현(盧壽鉉), 장우성(張遇聖)에게 미술교육을 받았다. 1952년에 부산 피난처에서 졸업 작품으로 출품했던 작품 「실내」는 최고상인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1949년에 해방 후 처음 열린 국전(國展)에 「청추(晴秋)」를 출품하여 입선한 이후 제30회(1981) 마지막 국전까지 매회 참여했다. 제2회 국전(1953)에 「청상부(淸想賦)」로 특선 국무총리상, 제 3회(1954)~5회(1956)까지 「아(雅)」, 「선소운(仙簫韻)」, 「월향(月響)」으로 연이어 특선, 제4회 국전에서 「선소운」으로 동양화부 최초로 대통령상을 받으며 주목받는 신예작가로 급부상했다.
1957년 제6회 국전 때에는 30세의 나이로 추천작가, 1961년에는 국전의 초대작가가 되었고 이후 심사위원, 동양화 분과 심사위원장,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1963년에는 김옥진, 김용원, 박세원, 이건걸, 이열모, 이영찬, 전영화, 조복순 등과 청토회(靑土會)를 창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박노수의 스승 청전 이상범도 충남 공주 출신으로 근대 동양화의 한 획을 그은 화가로 과거 동양화의 정통적 기법에서 탈피하고 ‘청전 화풍’을 개척한 인물이다.
남정 박노수의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스승 청전의 날렵한 선의 유연하면서도 경쾌한 터치가 겹치게 된다. 기존의 정통 동양화의 정통기법에서 탈피하고 먹의 번짐과 원색적 채색을 적절히 맞물리면서 개성적인 구도와 표현 방식으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다. 스승의 ‘청전 화풍’에서 ‘남정 화풍’으로 다시금 도약하는 순간이다.
해방 후 한국 화단이 일본 색을 배제하고 정체성을 되찾고자 노력하던 시기에,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비슷하게 절제된 색채와 간결한 운필과 강렬한 색감, 대담한 터치를 통한 자유분방하면서도 주제가 선명한 독자적인 화풍은 오늘날 한국 화단의 또 다른 화풍을 만들어가고 있다.
<홀로 서 있는 선비>, <소년>, <말>, <사슴> 등이 자주 등장하여 자연을 만끽하고 있는 여유로움 속에 산, 수목 괴석, 물 등이 화선지 한편에 자리 잡으면서 감상자들의 시선을 편안하게 한다.
작가 자신을 상징하는 듯한 <소년>은 자연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뒷짐을 지고, 그의 시선은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어 이상향을 꿈꾸는듯하다. 이 같은 소년의 모습이야말로 작가의 자화상인지 모른다.
남정의 그림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가까이 두고자 했는데 특히 날렵하면서 푸르른 산을 경쾌하게 품고 있다.
실제로 그의 그림은 강렬한 선명함과 단아하면서 청초함에 눈을 떼지 못한다.
한국화의 전통적인 요소가 숨겨져 있지만 푸르고 붉은빛을 흐트러짐 없이 적재적소에 채색하는 조화로움은 현대인들에게도 충분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따라서 그의 미술 세계는 한국적이면서도 강렬한 전통과 현대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제3, 제4의 메시지를 후세에게 던져주고 있다.
"쪽빛 화가" 박노수가 태어난 충남 연기군에 속한 전의면 금사리는 현재는 세종특별자치시라는 행정수도 영역 안에 속해있지만 지금도 농촌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고즈넉한 전형적인 산간벽지의 마을이다.
박노수는 수필 <화필 인생>에서 이 마을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산간벽지인 필자의 출생지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마을이어서 한국의 어느 시골이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지금이니까 이런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아주 어렸을 때는 그 좁은 마을이 그렇게도 넓어 보였고, 앞산의 높이 외 뒷산의 험한 정도가 태산준령과도 같이 느껴졌다. 병풍처럼 남쪽을 가리고 뻗어있는 것이 우리 집에서는 뒷면이기에 뒷산이요, 북방으로 개천을 가로질러 나간 산은 앞산이다. 그러니까 이는 북향집에 사는 우리가 붙인 호칭이라 하겠다.“
남정의 고향 전의 향교에서는 문화유산 활용사업의 하나로 천연 염색 체험을 통하여 쪽빛 화가 남정 박노수의 색을 입히고 있다.(사진위)
박노수 화백은 고향에서 여덟 살까지만 살았기 때문에 많은 추억을 간직할 수가 없다. 하지만 순수한 소년의 시점에서 전형적인 한국농촌의 사사로운 변화 과정을 내밀히 관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의 화폭 속에 사뿐히 놓여 있는 산수, 꽃, 동물, 바위 등은 어렸을 때 익히 보아 왔던 고향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서울에 가면 경복궁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촌'이라고 불리는 동네가 있다.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이기도 하며 조선시대에는 중인들이 많이 거주했다. 서촌에서 인왕산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종로 구립 박노수 미술관을 만나게 된다. 필자도 박노수 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전 관람을 위해 찾았던 곳이다.
이 건물은 남정 박노수 화백이 별세하기 전까지 40년간 거주하던 집으로, 2011년에는 가옥, 정원 그리고 소장해온 다양한 고미술품과 골동품 등 1천여 점을 종로구에 기증하면서 미술관으로 재탄생한다. 일제강점기에 화신 백화점을 설계한 건축가 박길룡의 건축물(1937년)로 구한말 관료이자 친일파 윤덕영이 그의 딸을 위해 마련했던 집이다. 윤덕영은 순종 황제의 비 순정효황후의 백부이기도 하다. 붉은 벽돌에 한옥 기와지붕, 서양식 창 등으로 한옥과 서양식이 절충된 건축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윤덕영이 딸의 행복을 기원하며 지은 집이, 남정 화백의 집이 되고 지금은 모든 사람이 즐겨 찾는 미술관이 되었다.
작가의 이름을 딴 미술관은 많지만, 작가가 주거 공간과 작업을 겸하던 곳을 지자체에 온존하게 기증해 건립된 곳은 '종로 구립 박노수 미술관'이 유일하다. 서울 종로구는 옥인동 168-2 박노수 가옥에서 ‘종로 구립 박노수 미술관’ 개관식을 했다(2013.9.11). 박 화백은 와병 중이었던 2012년에 종로구청 측에 작품 500여 점과 소장 고미술품·골동품·수석 등을 합쳐 모두 994점을 기증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유족들은 서울시 문화재 1호인 소유 가옥을 미술관으로 사용토록 허용했다. 박 화백의 작품들과 가옥은 금전적 가치가 엄청나지만 기증하게 된 이유는 ‘사회 환원’이라는 유지를 받들어 아무런 대가 없이 기증키로 해서 가능했다.(1937년 건축한 박노수 자택은 지붕은 일본식 형태의 기와, 굴뚝은 유럽풍, 창문은 일본식과 유럽의 무늬로 디자인 했다. 박노수미술관의 작은 산책길 위에서 바라본 박노수 가옥(아래사진)
세종시는 2024년 12월 26일 문화관광체육부로부터 대한민국 "문화도시"로 최종 지정받았다.이번 문화도시 지정에 따라 최대 200억을 투입해 지역 문화 창조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그동안 시는 가장 창의적인 문화 콘텐츠인 한글을 지역민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매개체이자 지역 문화 관광산업의 핵심 소재로 활용해 왔다. 이러한 계기로 세종시에도 행정 도시, 문화도시에 걸맞게 세종시가 배출한 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박물관, 또는 미술관을 하루속히 건립해서 세종 시민들이 양질의 문화 체험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이병헌과 결혼한 배우 이민정이 남정 박노수 화백의 외손녀이다.(박노수 수필집:화필인생(컬처북스)/세종인물여행(대전세종 지역학연구소)/네이버지식백과 )
(환경경영신문 http://ionestop.kr/ 박금옥 문화기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