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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물환경학회 최초의 연구용역은 전국 오염하천 조사연구-하천별 수질보전 대책이 추진되는 계기 마련

한국물환경학회 최초의 연구용역은 오염하천 조사연구

40년사 편찬기록물에는 수정첨삭하여 신뢰성을 높여야

50여명의 학자 집결시킨 전국 주요 오염하천 조사연구

한강개발 이전 70년대의 한강

 

한국물환경학회 40년사에는 학회 창립이후 256건의 연구용역 수행중 최초로 수행한 연구용역사업이 비누공업협동조합이 발주하고 홍사욱(성균관대)교수가 책임연구를 한 합성세제에 의한 수질오염과 안정성에 관한 연구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학회 설립 당시부터 부회장겸 학술위원을 맡았던 김원만교수(27년생, 목포 조양해운의 장남, ,고등학교 일본서 수학, 서울대토목과, 미국 존슨홉킨스대 박사,건설부 용수과장, 한양대교수, 학회 3대회장, 제자 이현동박사, 서울시 상수도본부 김홍석차장, 서울시 수도국장 정귀영)가 책임연구를 한 [全國 汚染河川 淨化調査 硏究 報告書, 環境廳, 1987.09.28.]가 최초의 용역사업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당시 언론의 사회면은 서울 중랑천,안양천등의 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으며 환경청에서도 신경이 곤두섰던 시기로 하천정화는 전두환정권의 최대 숙제였다. 86 아시안게임을 치러야 했고 88 올림픽이 코 앞에 다가왔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권숙표박사(앞), 김원만교수(뒤좌측)

 

회비로 근근히 살림을 이어가던 한국물환경학회(당시 한국수질보전학회)는 창립 다음 해인 1986년 환경부로부터 큰 선물을 받는다.

용역 금액이 1억원으로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용역사업이었다.

환경청에는 수질보전국 이방흔 국장, 수질제도과 유지영 사무관이 용역사업을 총괄 감독했으며 김성수 주사가 담당했다.

1986년의 환경청은 청장, 차장, 감사담당관, 기획관리관, 환경정책국, 대기보전국, 수질보전국, 폐기물관리국으로 운영되었다.

수질보전국에는 해양보전담당관, 수질제도과, 수질관리과, 토양관리과로 운영되었다.

한강유역에 대해서는 ADB차관사업으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정밀조사사업을 1982년에서 1983년 실시했다. 전국의 주요하천의 수질오염 예방을 위한 폐수배출업소 지도 단속과 중랑천 환경정화사업을 시작으로 주요 하천별 수질보전 대책이 추진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면서는 환경기초시설의 확충, 폐수배출규제 강화, 공중위생시설의 관리가 강도 높게 추진되었다.

4대강 개발이후의 낙동강

 

1억이라는 엄청난 비용이 투자된 전국의 우심하천 정비방안 연구는 88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부산 수영만을 중심으로 전국 오염우심하천 하천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1986.7)

전국 40여개의 하천에 대해서 우심하천이라는 제목으로 오염된 하천을 정비하기 위해서 준설방안이나 오염을 삭감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연구는 전국의 토목분야와 환경관련 교수들을 총 집결시켰다.

전라도지역에는 전남대 위인선교수(서울대 생물학전공), 경북,대구지역은 엄원탁교수가 담당하는 등 전국의 40~50명의 교수들은 지역별로  강과 하천을 2개지역이나 4,5개 지역을 맡아서 오염조사, 수량조사, 준설조사, 중금속조사 등을 수행했다.

김원만 교수가 학술위원장을 맡아 총괄 책임을 맡았으며 김원만교수에게서 박사과정의 지도를 받았던 이현동박사와 경희대 이종남 교수가 연구분석한 자료들을 취합하여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컴퓨터시대가 아닌 종이시대에 고생고생하면서 어렵게 마련된 3백페이지 가량의 보고서를 들고 환경청을 방문했다.

이방흔 국장 방에서는 권숙표 2대 회장과 김원만 총괄책임교수가 차담을 나누는 시간에 수질제도과에는 이현동박사와 이종남 교수가 1년간의 연구보고서를 유지영 사무관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용역보고서는 공중으로 갈갈이 흩어져 낙엽처럼 떨어지고 말았다.

용역보고서가 엉터리라는 유지영사무관의 진노는 연구 수행자뿐 아니라 사무실에 있던 공무원들마저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다.

용어가 정리되지 않았고 단위가 제각각 표기되어 통일되지 않아 기초부터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힐책이었다.

사실 환경용어는 지금도 통일되지 않고 있으며 일부는 일본어를 그대로 답습한 용어들도 잔재처럼 남아 있는 실정이다.

40여년의 세월을 건너 지금은 용역발주자와 용역수행자로 만났던 유지영사무관(49년생)과 이현동박사는 동명엔지니어링에서 다시금 만나 옛일들을 회상하며 술 한잔 나누기도 한다. 유지영사무관은 국방부에서 환경부로 이적하여 폐기물국장, 영산강유역환경청장을 지낸 후 퇴임하여 동명엔지니어링에서 본부장과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지금은 동명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물환경학회 40년사 출간물(인쇄)에는 수정하기 어렵지만 온라인상에는 반드시 수정되어 사실적 흔적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 이현동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