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최장수 잡지 만해 한용운의 《불교》간행 백년
24년 창간, 46년 제호 《신생》 변경, 70년 《불교》재창간
일제에 대한 항거와 불교개혁운동의 무대가 된 《불교》지
시국선언을 암시하듯 12월26일에는 국회의원회관에 태고종 스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정치적 혼돈속에 월간 불교의 창간 100주년을 기념한 학술대회장으로 국내 모든 문학잡지, 시사지, 종교지등을 포함하여 가장 수명이 긴 잡지이다.
《불교》는 1924년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의 기관지로서 창간되어 태고종 기관지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불교》는 해방 후 1946년 3월 《新生》이라는 새로운 제호로 발행되었다.
《신생》은 해방 후 처음 발행된 교단기관지이면서 1944년 입적한 만해를 기억하고 추념하는 첫 번째 잡지로 《신생》 창간호의 창간사에는 광복의 환희, 그리고 새로운 나라와 교단 건설에 대한 희망과 특집으로 3·1운동 관련 내용이 수록되었다.
해방이후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의 종교편향 정책과 농지개혁, 6.25전쟁으로 인한 인명 손실과 사찰 파괴 등 교단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더욱이 전후 본격적으로 불교의 현대화를 추진할 시점에 정교분리의 원칙을 저버린 이승만대통령의 담화로 촉발된 불교분규는 16년간이나 불교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불교계 분규는 현대 한국불교 교단의 성격과 구조를 크게 변화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불교계에 씻지 못할 영향을 미쳤다. 불교계의 분규는 1970년 태고종이 성립되면서 종식되었으며 이후 교단은 다종단 시대를 열었으며 분열과 분쟁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현대화 진로모색에 돌입하였다.
태고종은 1970년 5월 문화공보부에 정식 종단으로서 등록을 마쳤고 곧이어 기관지로 월간 《불교》를 발간했다. 1970년 6월호로 발간된 《불교》는 종단 기관지로서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가지고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대적 상황을 되돌아보면 1910년대에서 30년대는 문학계에서는 근대문학이 형성되던 시기로 당시의 젊은 지식인들이 국민을 계몽하는 방향에서 다양한 사상지, 문학지들이 창간되었다.
문학지 《창조》는 1919년 김동인이 주요한과 함께 일본에서 창간되었으며 《개벽》(1920), 《신천지》(1921), 《신생활》(1922), 《동명》(1922), 《조선지광》(1922), 《금성》(1923), 《동광》(1926), 《현대평론》(1927)과, 카프(KAPF)라는 사회주의 경향의 《문예운동》(1926), 《예술운동》(1927), 《조선문예》(1929) 같은 잡지가 태어났다.
30년대에서는 《시문학》(1930), 《문예월간》(1931), 《조선문학》(1933), 《문학》 《삼사문학》(1934), 《시원》(1935), 《시인부락》(1936), 《풍림》(1936), 《자오선》(1937), 《단층》(1937), 《맥》(1938) 등의 문예지와 동인지가 줄줄이 창간되었다.
당시의 대표적인 사회계몽성 비평중심의 일반 잡지로는 《문장》과 《인문평론》이 가장 대표적 잡지였다.
그러나 이들 모두 시대적 전환과 정치적 변화속에 대부분 폐간되었으며 단명하였다.
시대적 격변속에 종교지 《불교》는 1931년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權相老(1879-1965)에 이어 만해 한용운이 불교사 사장으로 취임하여 편집자이자 발행인이 되면서 불교지의 질적 중흥기를 맞는다. 한용운은 1931년 7월 84·85합호부터 1933년 7월 108호까지 《불교》의 간행을 담당했다. 한용운은 《불교》의 전체 구성과 편집을 책임졌다.
권두언을 비롯하여 다양한 논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면서 일제에 대한 항거와 불교개혁운동 무대가 《불교》 지면으로 옮겨졌다
《불교》는 한용운이 가장 많은 글을 실은 잡지인데 만해는 《불교》 지면을 통해 식민지 조선불교에 내재한 식민체제 모순을 갈파하고 불교인의 각성과 혁신의 주장을 체계적으로 펼쳤다. 대표적인 글로는 「朝鮮佛敎의 改革案」이다.
1930년대 조선불교가 처한 현실을 날카롭게 인식한 만해의 글을 옮겨보자.
-조선불교는 어떠한 현상이 되어 있는가. 내적 조건과 외적 정세 모든 것을 종합 해보면 실로 위기일발 백척간두에 서 있다. … 아직도 사찰의 실권을 파지한 자는 시무를 모르는 구인물이 아니면 인순 고식의 평범한 인물이 많고 소위 본산 주지 중에는 관변에 아부하여 사악 비열한 행동으로 불교의 개신 운동을 저해하는 자류가 몰락 전에 있으면서 아직도 다 청산하지 못하였다. 외적 정세로는 특수 사정을 가진 조선에서 더욱 이중 특수의 사정 즉 사찰령의 간섭을 받게 되고, 적색 운동자의 반종교 행위는 이론으로 행동으로 일부일 농후하여 가고, 기타 유물주의·무정부주의·허무주의 등등의 모든 조류가 회산양릉, 종교와 종교를 압도하고도 남을 것 같이 보인다-
만해가 통찰한 것은 사찰령이라는 조선불교의 특수한 체제모순과 그로 인한 질곡이었다. 사찰령의 모순은 사찰령이 정교분리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조선 불교에만 적용된 특수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한 적폐들은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행정기관에서 주지를 임면하게 되면서 공정성 잃고 관권에 아부하는 자가 선발되어 불교의 발전을 가로막게 되었다. 또한 사찰재산의 운용에도 장애를 갖게 됨을 지적했는데 이는 조선불교가 관제불교라는 오명을 입게 하고 조선 대중에게 멀어지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일제의 불교지배 정책을 비판하면서 정교 분립의 실현과 사찰령 철폐가 대중불교를 실행할 수 있는 전제임을 간파했다.
이렇게 1백년 세월이 지난 현실에서도 한국 정치사와 종교계를 대입하면 만해의 질곡의 소리가 백여년이 지난 지금도 자연스럽게 전율로 전달된다.
1924년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의 기관지였던 《불교》는 1933년 7월호 이후 명맥이 끊겼다가 1937년 복간되었고 해방 후인 1946년 잠시 《신생》이란 제호로 간행되다가(4호발간) 1947년 다시 《불교》로 회귀했다. 이후 1959년에는 《현대불교》, 1962년 8월부터는 《불교사상》이란 제호의 잡지로 발행되었으며 1967년부터는 《불교계》로 이어졌다.
1967년부터 1970년 3월까지 29호가 발간된 《불교계》를 이어 통권 30호로 새출발하여 오늘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현대사에 있어 불교계 잡지들을 보면 1946년 3월 1일 장도환을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4회 발간한 『신생』, 1946년 5월 1일 김정묵을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창간된 『불교신보』, 1947년 1월 1일 조선불교혁신총동맹에서 박봉석을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한 월간 『대중불교』, 1947년 장상봉을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한 『대중불교』, 1947년 11월 11일 창간한 『불교공론』, 1949년 5월 4일 조선불교 중앙총무원 박원찬을 발행인, 장용서를 편집인으로 한 월간 『불교공보』 창간, 1956년 6월 전국신도회가 발간한 『법륜』, 1957년 2월 5일 편집 겸 발행인 정태혁의 격월간 『녹원』(5호로 종간), 1957년 4월 20일 김소령을 발행인으로 한 월간 『불교세계』, 1958년 6월 1일 편집 겸 발행인 이법홍의 『정토문화』, 1959년 4월 교화승 종단 기관지로 발행 및 편집인 권상로의 월간 『현대불교』, 1962년 7월 30일 발행인 권상로, 편집인 황성기의 『불교사상』(1964년 종간), 1960년 5월 법시사가 발간한 월간 『심원』(1963년 종간), 1960년 12월 5일 불교사상연구회가 창간한 편집 겸 발행인 황성기의 월간 『불교생활』(10호 발간), 1964년 4월 20일 편집 겸 발행인 최종화의 『불교시보』창간((67년 폐간), 1963년 창간된 『법시』, 1966년 3월 8일 대한불교법화종 종무원에서 예혜교를 편집 겸 발행인으로 한 월간 『백련』, 1968년 1월 1일 편집 겸 발행인 김판석의 월간 『법륜』등이 있다.
1967년 6월 30일 박대륜이 편집 겸 발행인이 창간한 월간 『불교계』가 제30호부터 『불교』로 제호를 변경하고 1970년 6월 1일 월간 『불교』가 발간되면서 1924년 발간한 불교와 맥을 이어가고 있다.
《불교》 100년 동안 만해는 지면을 통해 발자취를 새기며 만해 계승의 중요한 무대로 가치를 이어왔다. 만해가 주장한 대중불교의 이상은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미완성 교향곡으로 흘러가고 있다. 불교인과 일반 대중들에게도 만해는 현재성을 지닌 개혁의 이정표며 아직 당도하지 않은 미래이다.
월간 『佛敎』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는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개회와 총무원장 상진스님이 치사를 했다. 축하 메세지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국민의힘 이헌승 정각회장, 국회부의장 주호영, 곽상언, 이수진, 김영배, 서범수, 김병주, 송언석, 전재수, 정성호 국회의원이 축하했다.
개식에는 철오스님, 삼귀의/반야심경 신덕스님, 봉행사 지허스님이 주제발표로는 ‘한용운의 발자취’를 이경순(역사박물관), ‘불교 100년의 전개사’ 김종진(동국대), ‘교단개혁론’ 김지연(동국대 HK연구소), ‘불교의 발간 추이’ 김경집(동국대 불교학술원)이 발표했다. 현재 『불교』의 발행인은 태고종 총무원장인 상진스님이다.
불교는 완벽한 친자연주의면서 공생과 상생의 행동철학의 본성을 세상에 전파하는 친환경의 대표적 종교이다.
기후변화에 실천적 대응으로 탄소중립과 피폐해진 생태환경의 질서를 바로 잡는 정신적 매개체이기도 한다,
만해 한하운시인은 지금 이 순간 어느 암자에서 병들어 가는 자연과 인간사를 주시하며 범부들에게 어떤 시를 자장가처럼 들려줄까. 저물어가는 갑진년 만해의 시 한편 읊조려 본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 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오시면 나는 바람을 쐐고 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 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 오든지 오실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만해 한하운 ‘나룻배와 행인’>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 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