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길샘 김동환 칼럼-
대접받던 수돗물이 외면받는 이유는 무얼까
-만족도는 높은데 음용율은 여전히 낮아-
수돗물을 설치해달라며 뒷돈을 주면서까지 수도관을 설치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다수 시민은 여전히 물동이를 지고 우물이나 공동수도에서 몇 푼의 수도 요금을 내고 한 끼의 밥을 먹기 위한 수돗물을 담아야 했다.
그래서 공동수도를 관리하는 관리자나 수도관로를 매설하는 수도사업자, 수도사업자를 관리하거나 요금징수 수도공무원들은 서울시 전체 부서에서 위생과와 함께 인기 있는 부서로 주목받았다.
수시로 뒷돈을 받았던 수백 명의 관련 공무원들이 비리로 적발되어 공직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서울시정에서 가장 많은 공무원이 불명예제대를 한 사건이다.
당시의 수돗물은 상당한 기득권층의 전유물이었고 일반인들에게도 수돗물을 먹을 수 있었던 시기는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이다(급수율 90%).
그렇게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울 등 대도시의 수돗물 공급은 안정화되기 시작하면서 세간에는 “서울 사람이 되니 수돗물을 먹어서 얼굴이 하얘졌네”라는 말들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고작 40여 년 전의 수돗물 풍속이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대통령, 국무총리가 정수장, 취수장 개통식에 참석한것은 높은 수돗물의 관심도를 잘 대변하고 있다. 지금은 장관은커녕 시장도 제대로 참석하지 않는 현실이다.
수돗물 공급 안정기에 접어든 80년대 이후 수도 전문화를 위해 상·하수국 조직에서 독립부서인 본부로 일원화하여 오늘에 이른다(1989년).
80~90년대 환경경영신문(전 한국수도신문)은 공무원, 국회의원, 일반인을 대상으로 국내 최초로 수돗물 선호도 조사를 몇 차례 한 바 있다. 당시의 물 환경은 정수기와 먹는샘물(병물)이 유통되기 시작한 초기 시절이다.
정수기는 주로 등나무(자연여과 식) 정수기와 병물은 대형(18.9리터) 생수가 가정에 배달되던 시절로 생수는 해외거주민, 미8군 가족과 국내 고위층 관계자들만 먹을 수 있는 특권층의 식수였다
그런 상황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는 수돗물을 끓여서 마시거나 보리차, 강냉이 차로 마시는 등 70% 이상이 수돗물을 음용한다고 하였다.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상대로 한 설문에서는 95% 이상이 수돗물을 마신다고 답했다. 일부 고위공무원과 국회의원 가정에 생수가 여전히 배달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20% 정도는 지하수, 약수터 등으로 답했으며 정수기는 3%, 생수는 7% 정도였다.
먹는샘물(생수)의 판매현황을 들여다보면(김동환 저/황금시장 물 산업의 경쟁력) 1983년 판매금액이 3억 5천9백만 원이었는데 전년 대비 ′85년 110%, ′89년 298%, ′92년 42%, ′94년 67%, ′96년 89% 등으로 치솟았고 해마다 평균 15% 이상 성장했다.
정수기와 생수의 신장률이 유독 높았던 시기는 트리할로메탄, 1.4다이옥산, 바이러스 검출, 녹조, 적수 사고 등 사회적 충격을 주는 대형 수질사고가 어김없이 발생한 이후이다.
어떠한 광고나 홍보를 하지 않아도 수돗물 수질사고는 정수기와 생수 시장에 불을 지펴 정수기로만 1조 원 이상을 판매하는 기업을 탄생시켰다. 상하수도 관련해서는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은 없는 것도 상대적 비교가 된다.
귀공자 대접을 받았던 수돗물이 언제부터인가 수돗물 음용율 조사에서 1.4%만이 그대로 마신다는 주홍글씨가 10여 년 이상 흘렀지만, 여전히 선명하다.
좀처럼 오르지 않는 수돗물 음용율은 과연 누가 발목을 잡고 있을까.
수질사고 전, 후에 대한 음용율 조사를 했다면 과학적인 분석이 되었을 텐데 현재 환경부 음용율 조사는 3년마다 하고 있어 직접적인 반응, 민감도 등을 알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최근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외국의 음용율이 미국 68%, 프랑스 80%, 독일 95%, 일본 78.9%이며 서울은 그대로 마시는 비율이 4.7%이지만 해외 조사 방식대로 끓어서와 조리나 음식에 사용하는 것을 수돗물로 포함하면 49%로 나오고 있다. 다만 정수기도 포함해야 하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
수도와 연계된 직업과 학문, 사회적 인식을 투영해 보면, 몰락하여 방랑해야 했던 중국의 푸이 황제나 무덤조차 찾기 어려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가련한 여인 덕혜옹주와 대한민국의 신여성인 나혜석이 그려진다.
수돗물 안전성에 대해서는 정수기와 먹는샘물과 비슷하게 64%가 안전하다고는 하고 있으나 물맛(28%)이나 건강(28%) 등에서는 매우 낮은 비율을 보인다. 부유함 속에서도 가시지 않는 고독과 외로움이 서려 있는 것과 같다.
다행스러운 것은 정수장이나 취수장에 대한 불만과 의혹은 보이지 않고 낡은 수도관이 가장 높았다.
그러나 환경부가 조사한 부산시의 경우에는 낡은 수도관(39%)과 함께 상수원(29.8%)도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그러나 누수 사고 시, 관로공사 시 혈관 속에 고인 누렇고 검은 물은 입맛을 가시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직접 음용율(그대로 마신다)이 가장 높은 지역은 제주도(28%)였으며 만족도에서도 제주도만 66%였다.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관로의 누수율은 전국적으로 꼴찌다.
그래서 관로교체공사와 세척,갱생사업은 지속되어야 하지만 언제나 예산부족으로 위급한 지역만 하게된다.
소블록으로 지역을 설정하여 관로교체나 세척공사를 지속가능하게 실행한다면 그 지역 시민들의 음용수율에 대한 사업 전,후를 비교하여 인식변화를 알 수 있을터인데 못내 아쉽다.
서울시는 수조원이 투자되면서도 여전히 음용율이 낮아 시장이나 예산 담당들에게는 상수도 운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실 아리수 병물로 다른 생수들과 비교조사에서는 아리수 병물도 맛있다는 평가가 매우 높다.(명동에서 2010년 2회에 걸쳐 물맛 시음대회 개최) 그러함에도 서울시는 아리수 본부를 비롯한 서울시 전체에서 행사, 세미나, 간담회, 전문가 회의 등에서 아리수 병물보다 일반 생수로 회의를 시작한다.
한때 서울시는 아리수 홍보를 위해 청와대에 공급하기도 했고 국제회의에서도 아리수 병물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국제회의는커녕 일반 행사에서도 아리수 병물을 찾을 수 없다.
당장 11월 개최되는 한·중·일 플라스틱 국제협약 행사장에 어떤 생수가 놓일지 궁금하다. 과연 부산시 정수장에서 고도 처리된 ‘순수 365’가 회의장에 등장할지는 미지수이다.
그래서 해외여행을 가면 외국인들은 수돗물을 잘 마시고 있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한국인은 왜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지 모른다고 한다.
아리수라는 뜻이 한강의 옛 이름이기도 하지만 속임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어 젊은 층에 다가가기엔 장벽이 너무 크다.
음수대도 예쁘고 이야기가 있게 디자인하여 서울 전역에 잘 배치되어야 한다. 명동을 걸어도 음수대가 보이지 않고 국제행사 등 대규모 행사장에도 수돗물 음수대가 아닌 정수기나 먹는샘물 냉온수기가 설치되어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올여름 시원한 수돗물을 마시고 싶어도 음수대가 없어 병물을 구매해야 했다.
프랑스 뽕삐드 광장에서 석회질로 조금은 의심스럽지만, 음수대 수돗물을 마시고 다시 여행길에 나선다.
(환경국제전략연구소 대표 김동환 박사 / 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