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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영의 서울시 유수율이 흘러온 길-4/동관은 기술보다 정치적으로 서울시에 접근

심재영의 서울시 유수율이 흘러온 길-4

 

아연도강관, 동관, PE,PVC관 상수도관서 퇴출

동관은 기술보다 정치적으로 서울시에 접근

인트기술 개발되어 PVC관 반짝 호황누려

 

 

아연도강관과 동관,PVC관은 결국 품질문제로 단명했다.

서울시에서는 이제 동관과 아연도강관은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PVC관도 80년대 이후 40여년간 서울시에 출입을 못하고 있다.

아연도강관의 경우 부식성이 큰 단점을 알고도 노후관 개량사업에 그대로 계속 사용할 수는 없었다. 85년도 관종 교체대상 매설시험에서 아연도강관을 제외하고 내식성이 강한 관종을 선택하여 시험부설하고 검토하기 시작했다. 다만 개량사업이 시작된 초기부터 PE관이 개발되어 PVC의 단점을 개선했다고 하여 일단 시험부설에 포함하고 검토했지만 연결 조인트부에서 자주 누수가 발생했다. 일부 구경 이상에서는 경제적으로 거의 닥타일 주철관과 동일한 부설비가 소요되어 주된 관으로는 탈락되었다. 일부 소구경에서 배수지관 또는 급수용 본관으로 아연도 강관 대체용으로 사용은 허용되었다. 그리고 아연도 강관의 대체관으로 시험대상이 된 분체도장 강관은 시공시 조인트 부분에 나사를 만들기 위해 본체를 깍아 내는 작업으로 인해 조인트부분에서 분체 자체가 훼손되고, 나사 부분에서 시공 후 부식이 일어나 역시 탈락되었다,

 

시험 부설했던 동관과 스테인레스관은 시공 단가가 고가로 나타났으나 시공성과 내식성에서 뛰어난 점수를 득하였다. 다만 동관에서 청녹 발생으로 인체에 해롭다는 연구 논문 보고가 있었으나 이 당시에는 내식성 점수에만 치중하므로서 그 외의 별다른 단점을 찾지 못해 선택하게 되었다, (동관은 당시 삼미금속과 풍산금속등에서 동관을 생산하여 상수도관에 사용되기 시작했으나 아연도강관과 같이 동관도 인체에 유해하다는 문제는 동관 설치 시점부터 제기되었다. 하지만 윗선의 누군가에 의해 강제 집행되었고 결국 인체유해성이 사회공론화 되면서 동관은 1993년부터 금지되었다)

배수본관이나 지관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회주철관에 대한 대체관으로 관내부에 시멘트 라이닝이 되고 강성과 연성이 뛰어난 닥타일 주철관 (DCIP)을 검토 분석한 결과 내식성과 내구성 및 시공성이 월등히 양호해서 바로 선택하려 했으나 84년도부터 특정 업체에서만 생산되는 단일 업체 납품 품목으로 검토되어 선택 결정 후는 또 다른 주철관 생산 업체로부터 특혜 의혹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어 채택이 불가능 했었다.(그러나 단일회사 제품이라 해도 기술개발한 기업을 우선적으로 사용하되 타 기업들도 기술검증된 제품은 지속적으로 개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기술개발에 역점을 두는 기업을 장려하기 위해 기술경쟁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 후 시장 조사결과 타 업체에서도 생산 납품이 가능하다고 확인된 87년에 드디어 회주철관과 아연도 강관의 사용을 전면 중지시키고 개량사업의 주된 배수관으로는 시멘트 라이닝 닥타일주철관을 선택하였다,

또한 시험부설 결과에 의거 인입 급수관용으로는 스테인레스관과 동관을 지역별로 나누어 사용토록 결정하고 각각 개량사업의 주된 관으로 채택하여 87년 상반기부터 획기적으로 내식성 자재로 교체 부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관 역시 수질문제로 6년간 사용하다가 93년에 사용 중단되었고 대신 스테인레스관으로 전량 대체 사용하고 있다. 또한 개량사업 초기에 일부 급수용 본관과 배수관에 PE관을 사용토록 허용한바 있었으나 오래 못가서 역시 사용 중지하였고, 현재는 이때 부설된 PE관을 다시 개량대상으로 정하고 전면 교체하고 있는 실정이다.

 

1987년에 내식성관 전면 교체라는 혁명적 조치에 따라 아연도 강관 전면 사용금지로 인한 강관업계의 반발이 극심했ek. 급기야 특혜의혹으로 서울시 관련부서를 고발하고 다방면으로 압박과 뒷조사와 함께 검찰에서까지 압수수색 조사를 실시했다. 담당 부서에서는 많은 고초를 겪은 적은 있었으나 누구하나도 불미스런 결과는 없었으며 오히려 아연도 강관의 사용금지 및 내식성 자재로의 전면 교체 혁명은 시기를 앞당겨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아연도강관이 언제부터 수도관으로 사용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PVC관은 1973년부터 서울시가 사용했으나 누수와 동결과 해빙시 이탈,깨지고 갈라지는 품질저하로 1983년 전면 중지되었다. 이후 1983년부터 1992년까지는 PE관이 사용되었다.

서울시는 1987년부터 부식성에서 취약한 아연도강관대신에 내식성관인 스테인리스강관과 동관을 사용하였는데 스테인리스강관은 강북지역에 강남지역은 동관,송전탑 및 해수염기가 있는 지역은 PE관을 사용했으나 1993년 동관사용이 전면 중단되고 서울 전역에 스테인리스강관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급수관 통계에서는 스테인리스강관,동관등은 기타관으로 분류되어 통계화 되고 있는데 1988년 당시 스테인리스강관은 399,219m,동관은 22m로 급속도로 확산한바 있다.

1998년의 관종별 현황은 스테인리스 강관 452m,동관 98m였으며 관종별 구성비는 아연도강관 25.5%, PVC8.3%,스테인리스강관 53.65%,동관 11.6%였다.

 

역사속의 관종류의 흥망성쇄

 

1960년대 정부의 공업화 추진책으로 기간산업의 중심인 수도관도 19622월 한국기계주물제작()은 회사 명칭을 한국주철관공업()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부산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관의 접합은 납과 황마를 사용했다.

1965년부터 메커니털 죠인트주철관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며 U,S파이프사와 기술제휴로 타이튼 죠인트발명특허권을 체결하여 689월부터 닥타일 주철관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68년에는 동아금속산업()이 일본 구보전철공()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여 국내의 주철관산업도 한국주철 1개 기업체계에서 동아금속등 도림주물,영남주물등 4개 회사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PVC관의 상수도용 사용은 1972년부터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럭키화학을 중심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아연도강관의 품귀현상이 일면서 PVC관과 아연도강관을 병행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용 1년만에 부속품의 품귀현상과 시공기술상의 문제가 겹쳐졌고 동파사고로 옥외급수공사에서 수도용 PVC관을 전면 사용금지 시켰다.

1983년에는 고무링죠인트 접합방법을 개발하여 활력을 찾기도했다.(아세아죠인트가 급부상하여 주식 상장까지 했으나 창업주(민신웅)주는 상장후 기업을 양도하였다, PVC관은 1972년부터 1982년까지 272m가 보급되었다.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 심재영 전 서울상수도본부 누수방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