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전문 차장(부본부장)은 2004년으로 마감
수도 전문 부본부장은 30년간 6명 뿐
김진배, 김홍석, 임동국, 정득모, 정중곤, 구아미
상수도본부의 조직체계에서 본부장은 행정직, 부본부장은 기술직으로 못을 박고 설립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본은 본부장급을 행정과 기술직이 번갈아가며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며 임기가 보장되고 있다.
서울시뿐 아니라 우리나라 상수도본부는 임기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 상수도본부는 행정과 기술직의 직급의 한계점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으며 기술직이 본부장으로 활약한 것은 총 28명중 4대 이기창 본부장(′92.4.-′93.3.)이 유일하다.
본부 설립초기부터 15년간 수도 전문 차장(부본부장)이 상수도에서 기술경영을 주도해왔으나 결국 전문 수도인은 임동국 차장으로 마감되고, 10여년이 지난 후에야 정득모, 정중곤 등 2명이 수도 전문 부본부장을 역임했다.
부본부장은 임동국 차장을 시작으로 기술고시들이 담당했는데 비고시 부본부장으로는 이항구, 정중곤, 배광환, 고동옥 씨며 대부분 토목직이 담당했으나 전기직으로 김홍석 차장과 정득모 부본부장, 환경직으로 구아미 부본부장이 맡아 운영했다. 부본부장은 3급이 담당했으나 구아미 부본부장은 2급이다.
초대 김진배 차장(′93.7.-′94.3.)
초대차장은 본부설립 3년 만에 승진한 김진배 차장′(93.7.-′94.3.)이 맡았다.
설립과 동시에 차장급 인사를 내정하지 못했던 이유는 기술직 중 2급, 3급 고위직 경력자가 상수도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김 차장은 본부설립 시에는 초대 시설부장으로(′89.11.-′92.5.)근무하면서 임동국 급수부장과 호흡을 맞춰가며 상수도를 이끌었다.
2급 승진 후 상수도를 잠시 떠나 건설 본부장 재임 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발생하면서 사고현장대책반장으로 활약하고 사고수습을 끝낸 후 본부 차장으로 귀향했다.
소통력과 판단력이 빠르며 기술직 중에는 행동반경이 유연한 경향을 지니고 있다. 강북정수장 부지를 남양주에 마련하고 착공했다. 배수지건설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2대 김홍석 차장(′94.3.-′99.8.)
김홍석 차장(전기직)은 상수도가 낳은 전문수도기술인으로 수도업계에서는 존경과 신망을 받는 인물이다.
본부설립 시기애는 구의정수장 건물에 임시사무실을 마련하고 수도기술연구소(현 서울시물연구원) 초대 소장(′89,11.-′94.3.)으로 재임하면서 분석전문가들을 모집하고 연구소의 미래의 청사진을 펼친 인물이다.
초창기 수질연구부와 기술개발부, 총무팀 30여명으로 출범했는데 인물 중에는 물연구원 최초로 내부승진이 된 서울시 품질시험소에 근무하고 있던 박현 부장을 김홍석 소장이 직접 영입하기도 했다.
상수원인 한강의 극심한 오염으로 원수수질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자 원수 수질분석지점을 선정하기 위해 직접 남·북한강을 돌면서 핵심지점을 선정하기도 했다.
1991년부터는 수도꼭지 수질검사 업무를 시작했는데 이는 미량유해물질 수질검사를 통한 수질감시항목의 태동을 예고해줬다.
한강 원수에서 납 검출, 디클로로메탄 검출 등의 문제가 발생되면서 수질검사의 중요성을 인식, 실험실을 선진화하는 청사이전을 서둘러 계획하기도 했다.
초창기 직원 구성은 계약직, 기술직, 행정직, 기능직으로 구성하였으나 기존의 계약직 6명의 잦은 이직으로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자 화공, 화학, 분석화학, 기계, 전기, 전자 분야의 공업연구사 8명과 환경연구사 2명, 수질공중 보건연구사 1명을 채용하여 지금의 서울시의 아리수를 고품격화 하는 전문 인력 양성의 틀을 마련했다.
수질관리를 위한 기초적인 연구를 시작으로 ′92년부터 상수도에 관한 전문 연구결과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92년에는 음용수 수질관리를 위한 탁도 시험방법 및 기준단위의 개선에 관한연구, 수도수질과 공급방안에 관한 검토 보고서, ′93년에는 Jar test를 이용한 응집제 주입률 결정에 관한 연구, 혼화조건에 따른 흐름해석, 여층관리의 실험적 고찰 등 본격적인 정수처리 공정개선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간행물도 발간하여 각종 자료를 공유하였는데, ′91년 수도기술, 배수지별 운용실태조사, ′92년 수도수질과 공급방안에 관한 검토보고서 등 각종 보고서를 필두로 ′94년부터는 수도연구집을 발간했다.
선행 연구결과를 공유하기 위한 ′91년에 ′91 상수도기술세미나(구의정수사업소 강당)를 시작으로 ’93년에는 서울시 공무원 교육원에서 상수도기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차장으로 부임하면서는 상수도 전반에 대한 골격과 중·장기 전략을 수립한다. 김홍석 차장은 항시 일본 수도협회지를 탐독하면서 서울시 상수도방향을 탐색했다.
당시 김 차장은 환경국제전략연구소 김동환 박사와의 대화에서 ‘일본 수도협회지를 탐독하다보면 시간적 흐름이 우리나라와 꼭 10년 먼저 사업들이 진행되어온 것을 알 수 있어. 그래서 최신 일본수도지보다는 10년 전 수도지를 구해 읽어보는 것이 일상이 됐지.’라고 말한바 있다.
가정 내 수질위생문제가 제기되면서는 가정 내 저수조를 철폐하는 전략을 세우는 동시에 아파트나 공동주택, 다세대주택의 경우 5층 이내까지는 수돗물을 직수로 공급하는 직결급수사업을 기획했다.
수도정비기본계획을 중·장기적 안목으로 설계하는 동시에 수도산업의 현대화에 중심적 멘토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김 차장이 추진하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기술직 공무원들에게는 수차례에 걸쳐 학문적 자료 등을 제시하면서 지속적인 설득을 통해 당사자들이 납득한 상황에서 사업을 추진했다.
상위 계급보다는 수도에 관심도가 높고 젊은 수도인으로 이해력과 학구력이 높은 6,7급 인사들을 동원하여 중요한 사업의 기초설계를 맡기는 용병술도 뛰어났다.
당시 김홍석 차장과 호릅을 맞췄던 6.7급 대표 인사로는 강신재(시설부장 역임), 최태용(상하수도협회 처장 역임)씨가 있다.
관망관리, 노후관정비, 유수율전략, 정수장 운영관리, 고도정수처리, 분석기기의 현대화, 상수원보호관리, 가압시설의 현대화 등을 추진했다.
수돗물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배수지 건설계획, 시설물의 안전관리등도 김홍석 차장이 설계한 미래의 청사진이었으며, 이 같은 사업들은 현재의 상수도 운영의 핵심과제로 진행되고 있다.
신동우 15대 본부장은 환경경영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상수도를 발전시킨 위대한 상수도인으로 김홍석 차장을 꼽고 있는데, 김홍석 차장과 함께 상수도를 3년만이라도 이끌었다면 국내 최대의 수도전문기관으로 정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3대 임동국차장(′99.8.-′04.7.)
임동국 차장은 수도토목의 대부로 토목분야 수도인들의 맏형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고비 고비마다 본부장이나 시장단에(부시장 등)상황을 전달하고 때로는 뚝심을 가지고 상수도의 기본을 지키는데 앞장섰다.
달동네 등 고지대의 안정적 물 공급을 위해 가압시설을 확충하고 반포배수지와 화곡배수지 등을 건설 균등수압유지를 위한 노력을 펼쳤다.
′99년부터는 배수지의 친화공간을 위한 배수지 공간의 체육시설, 공원 등을 조성하여 배수지의 지하화를 통한 시민들이 찾는 공원화에 기술적 디자인을 지휘했다.
이명박 시장시절에는 결국 시장단과 대립각을 펼치다 차장 직을 버려야했다.
본부 설립초창기 급수부장을 역임하고 차장으로 근무하던 ′04년까지 총 16명의 본부장들과 호흡을 맞춘 인물로 때로는 본부장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상수도에 대한 애정은 그 어떤 인물보다 진했던 인물이다.
상수도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로 당시의 재정여건에 맞춘 사업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누수나 단수사고의 현장 지휘를 하면서도 지속적인 발전적 사업을 추진했다.
상수도에 전문성이 미약한 시절, 조직의 안정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을 정비하면서 개인보다는 시스템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김홍석 차장이 설계한 직결급수, 배수지확장, 유수율사업 등을 차질없이 추진한 임 차장은 우리나라 상수도의 대표적 기관인 서울시 상수도의 초석을 다지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된다.
4급 이상의 수도인으로 급수부장을 역임한 조성현, 이상율, 유재룡, 이상홍, 이규상 부장 등은 수도의 맥을 이어오며 임차장과 호흡을 맞춰온 인물들이다.
정득모 부본부장(′14.1.-′15.1.)
김홍석(공업, 전기직), 임동국 차장(토목직)이후 10년 만에 수도전문가가 부본부장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지금은 폐쇄된 노량진정수소장, 본부생산부장(′09.2.-′12.8.), 물연구원장(′15.1.-′18.4.)을 끝으로 퇴임한 수도인으로 전문지식과 현장경험을 두루 섭렵한 인물로 평가된다. 기술고시로 서울시 치수과에서 첫 근무를 하기 시작하여 본부 설립 시 상수도로 지원하여 상수도로 마감한 대표적 인물이다
상하수도기술사, 뉴욕 주립대 환경학박사(미 시러큐스대 환경공학석사, 서울대 행정학석사, 행정사, 정수시설관리사1급, 전기기사 1급)로 매우 학구적이면서 깊이 있는 사고로 상수도 전반에 근본적인 개선에 심혈을 기울여 상수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인물이다.
특히, 상수도 하수도는 one-system이라는 신념으로 서울시상수도연구원을 서울물연구원으로 개명하기도 하였다. 아리수를 ‘건강하고 맛있는 물’ (healthy & tasty water)이라는 신조어를 창조하면서 서울수돗물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해 ‘아리수홈런 프로젝트’를 만들기도 하였다. 아리수 우수성을 전 방위적으로 전파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인물이다. 노후 옥내급수관의 녹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유재산인 옥내관 개량 시 공사비의 80%까지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정책을 우여곡절 끝에 채택하기도 하였다.
서울물연구원장으로 재직하면서는 서울시 상수도4.0프로젝트, 하수도4.0프로젝트를 수립하여 미래 상하수도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길잡이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또한 국민들이 수돗물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이 많다는 것에 착안하여 Naver 포털과 협약을 맺어 ‘척척물박사’ T/F 팀을 만들어 물에 대한 모든 해답을 제시하는 물정보은행을 구축하기도 하였다.
한편, 2015년에는 직원 투표에서 서울시베스트 간부로 뽑히는 영예를 얻기도 하였다.
′15년 서울시 8,800명 전 직원들의 투표에 의해 5급 이상 간부 중 ‘베스트간부’로 선정되기도 했다.(김홍길 기술심사담당관, 심상원 서울대공원관리부장, 이집호 보건환경연구원 안전성검사팀장, 고광림 교통지도혁심팀장/′13년에는 상수도에 김준기 부본부장(부시장 역임), 윤석우시설관리부장, 푸른도시국 오해영 국장, 교육협력국 유길준 지원과장, 도시안전실 채희정 중랑물재생센터소장)
당시 간부평가는 개인윤리, 직업윤리, 업무능력, 소통능력 등 9개 문항을 평가했다. 이는 서울시가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소통과 존중의 공직문화 정착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아이디어가 시행되고 있으나 구태에 젖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간부가 많다는 직원들의 의견이 반영되어 평가하게 되었다
서울시 조직의 한계로 추진하고자하는 사업에 대한 성공적 결실은 거두지 못했다.
김홍석 차장이 전문적인 수도 기술의 체계적 미래를 설계 했다면, 정득모 부본부장이 오랫동안 부본이나 본부장으로 활동했다면, 흔들리고 부서지는 상수도의 위상과 골격을 뒤늦게나마 재정립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중곤 부본부장(′15.7.-′16.12.)
상수도본부 생산부 생산과장 재임 시 상수도 원수대금에 대한 수자원공사와의 법정다툼에서 1심에서 승소한 공으로 특별 승진하여 상수도를 떠났다.(원수요금 분쟁은 항소심에서 서울시가 패소했다.)
10여년이 지난 이후 부본부장으로 돌아와 수도 기술행정을 펼치다가 서남물재생센터사장을 지냈다.
정 부본부장은 4급 생활은 상수도에서 근무하지 않았지만 상수도를 떠나야 고위직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증표를 만든 장본인으로 사실상 상수도에 애정이 있기보다 개인의 승진과 연계된 삶을 살아갔다는 평을 받고 있다.
(환경경영신문/환경국제전략연구소 전략연구팀/김동환 경영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