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광일 시집-유형지로부터의 엽서
유형지로부터의 엽서-2
주광일
세상에 이럴 수가
자유도 정의도 모르는 자들이
미친 듯 날뛰며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구나
세상에 이럴 수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세상을 흔들면서
우리들을 부끄럽게 하는구나
세상에 이럴 수가
원칙도 모르는 자들이
입을 벌려 예외를
떠벌리고 있구나
말세로다 말세로다
하늘의 정의를 짓밟는
잡것들의 세상은
어서 가라 빨리 꺼져라
*벗꽃이 눈송이처럼 떨어지는 날 시집이 한 장 날아왔다.
유형지(流刑地)는 유형살이를 하는 곳으로 유형 당하여 살아가는 삶이다. 시인이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이 곧 유형지임을 시집을 읽으며 직감할 수 있었다. 마치 1970-80년대 김지하의 ‘오적’이나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를 읽는 듯 하다.
주광일시인은 92년 첫 시집 ‘저녁노을 속의 종소리’를 상재한 이후 29년 만에 시집을 출간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 80여편은 2020년 8월 중순부터 21년 1월 2일까지 140일동안 거침없이 쓴 시들의 모음이다.
-말 같지 않은 말이/세상에 차고 넘칠 때는/쓴소리 참말이/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생략, 유형지 9)
-풀벌레들/슬픈 소리로 운다/날이 갈수록 점점 시들어 가는/무궁화 꽃을 위하여 운다/어찌하여 이 땅에서는 꽃 중의 꽃이/예쁘게 피기가 이토록/어렵게 되어 버렸는가-(생략,유형지 17)라며 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한다.
- 그날 그들의 착한 마음은 끝내 광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포박당한 광장처럼 그들의 마음도 포박되어 버린 것이다.-(생략, 유형지 26)
시인은 요즘들어 더더욱 힘든 삶에 대하여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일은/오랜 세월 진리라고 믿어 왔던/신념들이 통째로 흔들리는 일이다/자유도/공정도/정의도/상식도/모두 상실한 채/그저 밥세끼 먹고/그저 들숨 날숨/숨만 쉬고 사는 일이다-(생략,유형지 30)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용서해 주게/착한 사람들이 망나니들로부터/조롱당하고 있는 세월 앞에서/할 말을 잃어버린 늙은 시인을/용서해 주게-(생략, 유형지 42)라며 망연자실하고 있는 늙은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울부 짖는다.
그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듯한 ‘착한 사람들이 비굴하게/눈치 보며 사는 세상은/너절하고 추할 뿐이네/그렇다네 이곳/세상은 추하고 이곳/사람들은 슬플 뿐이네/그러나 잔혹한 세월을 산다고/착한 사람들 가슴마저/차가워지는 것은 아니라네’(생략,유형지 51)라며 스스로 위로를 한다.
잃어버린 그 자유는 ‘패트릭 헨리가 말했었지/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자유는 목숨의 모든 것/어쩌면 목숨보다 귀한 것’(생략,유형지 54)
이같은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기 위해 시인은‘ 이제 나는 수면제가 아닌/해열제를 한 번 더 먹고/올해의 가장 긴 밤을/맞이해야겠네’(생략,유형지 58)라며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자괴적인 모습을 시로 담았다.
목포의 시인 허형만은 ‘유형지인 이 땅에서 지식인으로서 처절한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을 성찰하며 희망을 노래한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유형지인 이 땅에서 140일만에 80여편을 묶어 시집을 간행한 주광일 시인(1943년생)은 인천출생으로 경기고,서울대법대를 졸업하고 제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퇴임한다.
검사시절 동창이라 해도 사리에 어긋난 부탁은 일체 거절하여 독사(주독)라는 별칭도 얻었던 인물이다. 사회에서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아시아옴부즈만협회이사, 국제옴부즈만협회 부회장,경희대,한림국제대 초빙교수등으로 활동했다. 68세인 2011년 미국 워싱턴시 변호사자격을 취득하여 법조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검사로,변호사로 활동하던 주시인은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유형지의 부끄럽고 참담한 삶을 또다시 시집으로 간행했다.
주광일 시인은 지난 4월 초 중학(인천중),대학(서울대)동창인 신우산업 김홍기사장의 공장 준공식 축사에서 ‘정직,도덕,국가관,사회적 공헌이 넘치는 친우’라고 격찬한바 있다.
이어령 평론가는 ‘그는 칼과 법전을 시집과 붓으로 녹여 다시 고교 시절 품었던 시와 젊음을 재활했다. 한마디로 떠나온 모천으로 돌아온 것이다.’라며 서문을 열었다. (환경국제전략연구소 김동환박사,시인,수필가,환경경영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