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우 전 영상강유역환경청장 별세
엔지니어링 삼안 대표이사로 사회활동
육사 31기 동기 손희만,소준섭,임종현
환경부 수도정책과장과 영산강유역환경청장을 지낸 신원우(52년생) 전 청장이 6여년간 치매성 질환을 앓아 오다가 지난 2월11일 향년 69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상하수도 전문 공무원으로 환경공학박사와 상하수도기술사로 우리나라 수도산업 발전에 곽결호전사장과 함께 밑 그림을 그려 나갔던 인물로 상징된다.
신원우 전청장은 전남고흥 출신으로 광주고 20회, 육사 31기, 연세대에서 환경공학석사, 조선대에서 환경공학 박사를 받았으며 군 생활을 하다가 81년 건설부(현 국토부) 토목기좌시보를 시작으로 주로 상하수도국 상수도와 하수도의 사무관으로 재직했다.
94년 건설부의 상하수국이 환경처로 이관되면서 곽결호(전 환경부장관) 당시 상하수국장과 고 이길섭(전 환경정책평가연구원부원장), 손진식(국민대교수),김동진(대변인),신은우,김영호,윤유학(수질정책과장역임),조갑현씨등 30여명과 함께 새 보금자리를 꾸민다.
95년 환경처가 환경부로 승격되면서 서기관으로 승진한 신 청장은 금강환경관리청 기획평가국장으로 잠시 근무하다 미국 조지아기술연구소에서 3년간 파견생활을 한다.
귀국후 국제협력관실 지구환경담당관,산업폐기물과장,국토환경보전과장,자연정책과장을 거쳐 02년 시설부이사관으로 승진하여 수도정책과장으로 7년만에 귀환한다.
환경정책총괄과장을 거쳐 신행정수도건설추진지원단에서 지원 근무하다가 05년 고향 전남 고흥을 관장하는 영산강유역환경청장으로 부임한다.
06년 이사관 승진후 2년간의 영산강청장을 끝으로 공직을 마감하고 국립공원관리공단 자연보전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퇴임후 고향 친구인 프라임그룹(백종헌회장) 계열 엔지니어링 업체인 삼안의 부회장으로 취임하여 활동하다 결재권을 지닌 대표이사를 겸직하게 된다.
삼안 입성시인 2009년에는 삼안에서 잔뼈가 굵은 중앙대 출신 박용대사장, 현대엔지니어링 출신 김성광,서정원사장과 환경부 출신으로는 석금수 부회장, 서울시 출신의 김학재 전부시장, 수자원공사 부사장 출신의 이희승 고문이 활동했다.(환경부출신이 상하수도기술사가 아니면서 엔지니어링사로 진출한 첫 사례로 삼안의 석금수,도화에 정진성씨가 진출했으며 이를 추진한 인물은 이윤섭 전 환경부 기획관리실장이었다.)
잔잔한 미소와 온화한 말씨, 덩치에 비해 부드러움으로 포용력과 사교성이 좋으며 적극적인 사고로 업무 추진력도 높았다.
의리가 있고 선,후배를 챙기는 끈끈한 정감도 돋보이던 인물이다.
육사 31기 동기로는 환경부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인사로는 손희만(전 낙동강유역환경청장),소준섭(자원순환리사이클링협회부회장역임/현 한국자원유통지원센터),임종현(환경부부이사관)과 국방부 초대환경과장을 지낸 양임석박사등이 있다. 신 청장은 육사규칙에 따라 생도시절 결혼금지 원칙을 준수하다 육사 졸업식날 혼례를 올린 사례는 유명하다.
신 청장은 기존 고위공직자가 퇴임직전 훈장을 받았던 사례와 달리 2002년 재해대책유공자로 선정되어 홍조근정훈장을,건설부 시절 88고속도로 건설유공으로 근정포장을, 87년에는 상수도건설행정수행으로 장관표창을 받았다.
퇴임후 사회생활에 적응이 어려웠던 삼안근무시절 지배회사인 프라임이 흔들거리던 시기 삼안의 총괄 대표로 운영하면서 정신적 진통을 겪었다.
전라도를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전국적인 건설사로 급성장한 프라임그룹은 2008년 동아건설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생긴 채무액을 포함해 모두 2조8000억 원에 달하는 부채를 안게 된다.
프라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98년 4월 4일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 부근에 국내 최초의 복합쇼핑몰인 강변테크노마트를 오픈하면서이고 같은 해 국내 엔지니어링의 선두기업인 삼안을 인수하면서이다.
그러나 2011년 7월 5일 오전 10시 이상 진동 현상이 일어나 입주자 및 고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져 세계적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이후 조사단은 “테크노마트 진동, 태보 운동이 원인”이라고 잠정 결론 지었지만 명확한 진단은 아직도 의문으로 남고 있다.
고 신원우 청장은 테크노마트 개발 업체인 프라임개발 계열 삼안엔지니어링은 지난 1967년 설립된 설계ㆍ엔지니어링 업체로 프라임이 인수한 이후 2002년부터 7년 연속 국내 건설 엔지니어링 수주 1위를 차지하는등 절정기에 삼안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하는등 위기시대에 삼안의 책임 대표로 근무했던 고인으로서는 일생에 있어서 가장 고뇌스러운 시기로 조명된다.
동아건설 인수이후 격하게 흔들리던 삼안은 2010년경 롯데에 2천억원에 매각하려 했으나 실패했으며 워크아웃과정에서 수차례 매각협상을 하는등 위기시대에 고 신원우청장은 세파에 요동치는 외로운 선장으로 결국 삼안과 인연의 닻을 내린다.
퇴사이후 치매질환이 육체와 정신적 고통으로 번지면서 고향 고흥에서 요양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끝내 회생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환경경영신문/환경국제전략연구소 김동환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