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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샘 김동환의 환경칼럼-대한민국의 청렴도/낙방 거듭한 다산 정약용

대한민국의 청렴도

-낙방 거듭한 다산 정약용-

조선시대에 있어서 문화 르네상스시대로 15세기의 세종대왕(1397-1450) 시절과 18세기 정조의 시대(1776-1800)로 꼽는다.

300년 주기로 한국의 르네상스시대가 펼쳐지는데 다시 300년이 다가오는 현실정치에서는 정치, 언론, 문화, 과학계의 블랙리스트만 난무할 뿐이지 80여년을 더 흘려보내야 제 3의 르네상스시대가 오려나 보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로부터 죽임을 당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당시의 정치구도는 왕권보다는 노론, 소론, 남인, 북인 등 사색당파에서 벽파, 시파로 나뉘기까지 혼선의 시대였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당연하다는 노론계가 득세하고 벽파의 반발 등에 혼선을 빚었던 시기이다.

정조는 즉위 후 당당하게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밝히면서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을 설치하고 전국의 인재를 모은다. 문화정치를 표방하면서 파당을 배격하고 신진정치세력을 등용하는데 주력한다.

어머니와 외척까지 노론일색이던 정조는 세손시절부터 자신을 옹호하던 홍국영을 도승지로 임명하고 왕궁을 호위하는 군 숙위소의 숙위대장까지 맡기고 자신은 규장각정치에 심혈을 기울인다.

권력의 무리한 집중으로 파장이 일자 왕은 홍국영을 자리에서 내려앉게 한다. 홍국영의 무지막지한 권세에 대해 세상은 세도정치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게 했다.

규장각에 검사관을 두고 미천한 서얼출신의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를 등용하는 등 능력과 학식이 뛰어나면 집안과 당파에 상관없이 인제를 활용했다.

이 같은 인력활용은 새로운 활자인 임진자, 정유자, 한구자를 탄생시켰고 대표적 서적인 {속오례의},{증보동국문헌비고},{대전통편},{오륜행실},{이충무공전서}등이 출간된다.

조선시대 어떤 임금보다 개혁의지가 강한 정조는 백성을 살리는 학문인 실학을 중심으로 정치를 풀어간다.

조선후기 국가발전방향의 중심이 된 실학은 농업을 중히 여기고 농촌문제를 해결하면서 토지제도의 개혁과 소득분배론에 입각한 개혁안을 주창한 중농학파의 이익, 유형원, 정약용 같은 인물들을 탄생시킨다.

중상학파는 농업과 상공업의 발전을 통해 나라살림을 튼실하게 하자고 주장하는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이 대표적 인물이다.

다산은 그의 저서 {여유당전서}에서 힘센 자는 많이 차지하고 약한 자는 수탈을 당하여 땅에 쓰러져 죽게 하는 것은 임금노릇과 수령노릇을 잘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성균관 유생들 중에 가장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던 정약용이 번번이 대과에서 낙방하자 이를 답답하게 여긴 정조는 다산을 불러 대과에 낙방한 자를 어찌 장차 큰일에 쓸 수 있냐며 더 이상 과인을 실망시키지 말라라고 질책한다. 다만 정조는 남인의 영수인 채제공에게 시험 감독관을 통해 정약용이 남인이라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라는 배려만 한다. 차별되지 않는 공정한 시험을 치르게 한 것이다.

결국 정약용은 대과에 급제, 관료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이후 우리나라 정치가와 공직자들에게는 성경과 같은목민심서》《경세유표를 저술하는 등 대표적인 실학자며 철학자, 과학자며 위대한 공학자를 탄생시키게 한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 정조임금이다.

 

정부가 최근 심층적인 합동조사결과 275개 기관 중 257개 기관에서 채용비리가 적발됐다. 무려 90%이상이 비리의 온상이라는 점이다.

그야말로 금수저들의 잔치이고 대한민국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일들을 일상적, 상시적, 관례적으로 행하고 있음이 여실히 밝혀졌다.

적발내용에는 모집공고가 편파적이거나 심의위원들의 구성이 부적절하며 평가도 부당하게 하는 등 부당한 사례는 그야말로 과욕의 극한점을 보여주고 있다.

임금의 깊은 관심을 가진 정약용이지만 임금은 대과에 합격시키기 위해 문제유출을 하거나 예문조차 제시하지 않았고 다만 심각한 사색당파에 눌려 부당한 고시가 되지 않게 공정한 시험을 보게끔 관리감독만 철저하게 하라고 지시한 것이 전부이다.

작금의 시대에서 한나라의 대통령이 자신이 아끼는 인물을 등용하는데 과연 이 같은 공평한 절차에 의해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고 있는지 살펴 볼만한 일이다.

’70~’80년대만 해도 공공기관에 이 같은 부정한 방법으로 채용되는 비율보다는 자신의 실력에 따라 공정한 시험을 통해 하고 싶은 분야에 종사할 수 있었다.

지난 ’876.29선언이 발표되자 6월 항쟁은 이한열의 장례식으로 끝을 맺었다. 이 장례식에는 100만 명의 서울시민들이 참석했다. 6월 항쟁이 끝나고 6.29선언에 따른 헌법 개정작업이 착수되었고, 19871027일 국민투표를 통해 새 헌법이 확정, 6월 항쟁과 6.29선언으로 이어진다.

6월 항쟁이 이런 엄청난 규모의 시위로 번지고 성공한 이유는 당시 대학을 졸업한 도시 봉급자(화이트 칼라)를 중심으로 한 신흥 중산층들인 이른바 넥타이 부대가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공정한 게임은 어디든지 찾을 수 없고 권력과 자본의 그늘아래 편법이 판을 치고 있어 청년들에게 올바른 사고를 지니라고 말하기가 어렵게 됐다.

그같이 고귀한 민주주의의 참 행위를 한 넥타이 부대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가면서 사회에 되돌려준 행위는 청렴은 사라지고 그 자식들에게는 우월적 지위를 통한 부정한 방법의 취업알선 등으로 이 사회를 병들어가게 한 주요 구성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하듯 우리나라의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들의 청렴도 조사에서 종합청렴도,내부청렴도,외부청렴도,정책고객평가등 4개 전 분야에서 1등급을 받은 기관은 단 한곳도 없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취업한 청년층에게 도덕적이고 공정하게 국민을 위해 사심 없이 일하라고 지시할 수 없으며 강요할 수도 이를 실행하는 실천력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220년 전 당쟁이 활개치고 왕권이 신하들에게 휘둘리던 그 시대에도 규장각 학자들은 공평하게 뽑혔으며 국가발전에 총력적인 지혜를 담아냈다.

다산 정약용은간리론에서 땀을 적게 흘리고도 효과가 빠르면 간사하고, 나를 감독하는 사람의 행동이 도()에서 나온 게 아니면 간사한 것이며, 한 자리를 오래 꿰차고 있어도 간사한 것이고, 죄를 범했는데도 서로 눈감아주면 간사한 것이다라고 통렬히 비판한바 있다.

성추행이 일어나도 직장동료들은 눈을 감고, 암암리 뒷구멍으로 자녀들을 취직시켰음에도 모르는 척 하는 자신을 간사한자로 몰아 부치기에는 오늘날은 병신 취급이나 왕따 되는 것을 더 두렵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돌아가신 스테파노 김수환 추기경은 [바보가 바보에게]라는 글에서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를 낮춤이 선행된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칠십년 걸렸다는 말씀이 떠오른다.

 

자식을 부정하게 취직시킨다는 것이 진정한 사랑은 아니다. 이 부정한 사회에 참 사랑이 가슴으로 내려오려면 다시 한 80년 세월을 보내야 진정한 사랑의 르네상스가 펼쳐질 것인지......(환경국제전략연구소/김동환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