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샘의 문화광장-가을에 만난 뮤지컬 ‘레베카’
숨가쁜 전환과 선과 명암의 세련된 무대디자인
소설로,영화로,다시 오페라로 전세계를 감동시켜
막이 내릴때면 레베카 한 소절을 따라 불러
가을을 머금은 9월의 마지막 날, 6호선을 타고 한강진역에 내렸다.
젊은시절 읽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속에 잔존하고 있는 영국의 여류 소설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를 뮤지컬로 다시 만나기 위해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로 가기 위해서다.
모리에의 작품중에 한국에 번역되어 읽은 책은 레베카를 비롯하여 단편집 새, 사과나무등이 있다. 다른 작품(나의 사촌 레이첼/바람아 오라,날씨야 오라)들도 있지만 기억에 잔존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 그닥지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 같다.
모리에는 예술가의 집안으로 아버지는 배우 제럴드 듀 모리에, 어머니도 여배우 뮤리엘 보몬트(성공한 배우인지 모르지만),언니는 작가 앤절라 듀 모리에, 조부는 당시 영국의 유명한 풍자 만화가이자 소설가 조지 듀 모리에로 문학과 배우집안이란 점이 특이하다.
공연에 빠져 들면서 점차 과거가 다시 환생하여 기억의 재발견을 하게 된다.
레베카는 순수한 사랑이 잊혀버리고 싶은 과거의 여인의 잔존물속에 허덕이는 공포스러운 삶의 일상에서 결국 새 삶을 살아간다는 지극히 빤한 소설이지만 아름다운 문체와 음습한 공포적 분위기,인간의 소시오패스적인 갈등적 요소들이 가미되어 긴장감을 던져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다시금 서스펜스의 대가인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혼에 의해 다시금 영화로 재탄생된다.
공포영화가 주류인 히치콕 감독의 작품들로 《현기증》, 《싸이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등 대다수 작품은 착하고 연약한 주인공들이 어쩔수 없는 운명적인 상황에 부짖치면서 공포적 현실에서 탈출하는 흐름으로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소설 「레베카」가 출간되자마자 판권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대프니 듀 모리에를 설득했다고 한다. 이 인연으로 그녀의 또 다른 소설 「새」를 영화로 옮겨 훗날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대표하는 영화 <새>(1963)를 연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영화 <레베카>(1940)는 영국 출신의 히치콕이 처음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제작한 영화이자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쥐는 영예를 안겨준 상징적인 작품이다.(히치콕의 작품들은 대부분 작품상을 받지 못했다.)
가난하지만 순수한 ‘나’가 생활비를 벌기위해 말벗을 해주고 시녀 역할을 하는 조건으로 미국에서 영국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
무식하지만 돈이 있는 주인의 알바식의 시녀역할을 하는 주인공 ‘나’는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막심 드 윈터를 영국의 고풍스런 호텔에서 만나게 된다. 주인공의 행동과 미모를 관찰했던 막심은 주인공 나와 사랑에 빠지고 그의 본가인 맨덜리 저택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아름다우면서 황홀한 미래를 꿈꾸며 저택으로 들어간 주인공을 기다리는 건 전 부인인 레베카의 흔적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음습한 공간이다. 새로운 안방 주인으로 등장한 주인공에 대한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집사 댄버스 부인의 간교한 행위와 협박등으로 숨을 죄여오는 공포는 무대에서는 어두운 조명과 밀려오는 암묵색의 파도, 그리고 자욱한 안개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강조한다. 가득한 저택에서 벌어지는 비밀스러운 사건을 다루는 이 소설의 백미는 긴장감과 무서운 침묵의 공간적 스릴러속에서도 바이올린의 선율처럼 이어져가는 아름다운 로맨스와 동화적 요소가 간간히 주인공의 순수한 연기로 보여준다.
선과 단순 색채,그리고 안개,파도,어두운 실내등, 실루엣으로 처리한 무대 장치,그리고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하는 장면 장면들은 영화에서 만나는 분위기와는 또다른 색깔을 진하게 던져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집사 댄버스가 저택에 불을 지르는 장면에서는 무대와 객석 모두가 불타버리는듯한 착각을 던져주는 아찔함이 무대예술의 최고 결미로 갈채를 받게한다.
또한 보기 드물게 소설 제목이며 오페라의 제목인 주인공 레베카가 단 한번도 무대위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오페라 레베카의 출연진은 막심 드 윈터 역에 민영기,정성화,엄기준,송창의가 교체 출연하고 집사 댄버스 부인역으로는 김선영,신영숙,옥주현, ‘나’의 역할로는 김금나,이지혜,루나가 교체 출연한다.
공연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오는 11월 12일까지 월요일만 공연이 없으며 주말에는 3시 7시, 평일에는 오후 8시에 막이 오른다.
VIP석 14만원,R 석 12만원,S석 8만원, A석 6만원이다.
삶에 있어서 가끔은 레베카정도의 무대예술에 젖어들면서 동참한 관객들과 함께 열광의 순간을,진하면서도 애잔한 숨결을 맞보는 시간도 가져볼만 하다. (환경국제전략연구소/시인 길샘 김동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