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화박사의 연해주를 한국의 식량기지로-연재 3
시험작물 쌀은 중국품종과 러시아품종이 우수
김수환추기경 연해주 고려인 돕자 적극지원
고합그룹 아무르농장에서 철수 시작
러시아연방정부는 고려인들을 위해 군대가 철수한 지역을 영구 무상 사용토록 포고령 제64호를 조치한다. 이는 엘친과 노재봉박사와의 협력에 의한 결과가 김영삼정부에 와서 실행된 것이다.(98년1월)
우수리스크등 5개 지역에서 철수한 군사직역에 2천 핵타의 토지와 아파트에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한 고려인들의 정착지로 조성되기 시작한다. 박의근이사장은 가모브 반도의 사슴농장을 구입하는 매매계약서를 체결하고 북방농업연구소는 시험재배포장 작물재배 성적을 발표한다. 쌀의 경우 중국품종(합강 19호)와 러시아품종은 좋아 1핵타당 1,8톤에서 2,3톤을 수확하게 됐다. 옥수수는 중국 길림성 품종이 수확량이 높았다.(1핵타당 9-10톤),
당시 담당책임자는 나훗카 북한 총영사관 김상진보위부 간부였다.(98년2월)
김수환추기경의 지시에 따라 반포성당 안경렬신부외 3명이 농업경영인연합회장 황창주와 함께 호롤군 관내의 쌀 농장을 방문하고 엘지가 영농을 포기한 루고보예와 노보제비찬스키에 각 4천불씩 8천달러를 영농자금에 충당하게 지원한다.
한농연은 정부지원이 있으면 연해주에 영농을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국제농업개발원은 채소종자 3억7천만원상당과 옷 154박스를 연해주 고려인 재생협회로 발송한다.
채소종자는 홍농,중앙,한농,서울,농우등 회원사가 기증했으며 헌옷은 반포성당 신도회가 기증했다.
벼 185톤을 국제농업개발원에서 매입하여 북한 적십자총재앞으로 발송했다.(98년3월)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박병국회장등은 농촌경제연구원과 러시아시장조사팀(임종수박사), 우리민족 서로돕기 위원장 이광규교수, 이종훈국회전문위원등 8명은 고려인 귀향지 현장조사와 호롤군관내 쌀농장을 방문한다. 박병국회장은 민간기업과 공동으로 연해주 진출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표명한다.(98년4월)
(주)가우디 배삼준사장은 연해주 호롤군을 방문하고 영농의사를 피력하고 러시아 당국자는 한국 방문하여 가우디와 협정서에 조인한다, 영농규모는 로고보에 3천핵타,노보재비찬스키 5400핵타중 1차 년도에 각 1백핵타씩 50년간 곡물을 공동 생산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6천불을 지원하고 러시아는 이에 상응하는 곡물을 북한에 무상 제공하는 공동약정을 한다.(98년5월)
가우디 배삼준사장은 연해주에 직영 재배한 쌀 1백톤을 무료로 북한에 보내고 한국에 콩 1백톤을 반입하는 계획을 할당관세를 적용하여 추진할 계획을 세우는데 통일부와 외교통상부는 원칙적으로 찬성했으나 농림부는 추진위원회를 설치 국민정부의 대북정책 일환으로 홍보하자는 의견을 제시한다.
새마을 2차년도에 대학생 러시아 농촌봉사가 시작되고 특히 의료진의 열의가 높아졌다.
고합그룹 아무르 농장책임자가 철수하고 연해주 순야센 농장은 법정소송에서 패소하고 수확한 벼는 팔지 못하고 창고에 보관하게 된다,(러시아 정부수매는 벼 1톤당 180달러며 정부보조는 50달러),
고합은 적자운영이 지속되고 98년 1월부터 8월까지 중앙아시아 거주 고려인 158가구가 귀향한다.(98년8월)
가우디의 연해주 진출은 배삼준 사장명의의 직접국세를 낸 사실이 없고 가우디의 경영인은 타인이라는 사실로 러시아가 거부한다.
이에 가우디가 확보한 농장을 남양알로에(사장 이병훈)로 이전하고 그동안 투자한 10만달러는 남양알로에가 부담한다.(98년9월)
농촌지도자중앙회는 바지모브카 농장 4천5백핵타의 경작권 및 가을추수물량 판매권을 확보한다.(98년10월)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산하 개선무역측과 러시아산 벼의 북한공급에 관한 협상이 시작되고 통일부에 러시아 산 벼를 북한에 보내주는 조건으로 북한 산 콩을 한국으로 반입하는 남북한 사업교류 승인요청서를 제출한다.(98년11월)
러시아 연방정부 식물검역관에 벼를 북한에 보낼 시 검역가능성과 세부사항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으며 러시아는 북한 수출을 승낙하고 북한측과의 계약서를 한국정부에 제출한다.
남양알로에의 경작권을 가진 농자에서 수확한 벼 186톤을 화차에 선적하고 곡물수출회사인 카라파쉬에 수출대행비용 1만2천달러를 지급한다.
북한 개선무역 총공사에게 한국의 허해철, 중국의 이동호등을 통해 러시아 핫산역에서 두만강역으로 벼 186톤을 3대의 차량으로 건너간다고 통보하고 북한측 개선무역총공사는 두만강에 도착했으나 우천으로 철수한다.(98년12월)
이듬해 한국정부의 허가가 지연되자 이병화박사는 국가보안법을 어기고 남양알로에 명의로 북한측 두만강으로 보낸다. 이후 20여일이 지나서야 한국정부가 승인되고 이후 벼를 보내겠다고 허위보고를 한다.(99년1월)
북한 개선무역총공사 총회장 장운업, 안복일사장측은 철도운임 3만달러를 요구하고 핫산역장은 보관료 5천불을 요구한다, 이는 정부의 허가지연으로 인한 순손실로 결국 3만5천달러를 손해보게 된다.
농촌지도자중앙회와 바지모브카 농장간의 협정서를 교환하기 위해 러시아 고위인사 3명이 한국에 초청된다.(99년2월)
북한에서 벼 교환조건으로 주겠다는 콩이 1파운드당 3,600립이 되지 않아 유통공사의 문제제기로 수입이 중단된다. 이에 남양알로에는 북한측에 콩대신 장뇌(산삼)을 받아 달라고 요구한다.(과거 플라스틱조합연합회(회장 이국노)는 북한의 먹는샘물을 수입하고 북한에게는 현금을 주고 북한측은 북한산 나물로 대체한바 있으나 고사리,송이버섯등의 품질이 매우 불량하여 시장가치가 떨어진바 있다.)(99년3월)
북한 개선무역총공사 안복일에게 장뇌삼을 요구하고 그 비용으로 1만달러를 지불한다.
그러나 남양은 장뇌삼은 소득이 없어 도토리가루나 기타 약초로 재계약을 부탁 다시 1만불을 북측에 지불한다.
소설가 이문열 형제는 북한에 생존해 있는 부친 이원철을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이 온다.
이병화원장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크라스키노 검문소를 통해 중국장령자 검문소로 국경을 통과하고 러시아 정부로부터 국제농업개발원의 관광을 목적으로 한 국경통과 독점허가를 받는다.
러시아연방정부는 한국의 남양알로에,새마을중앙회,농촌지도자중앙회의 현지 유한회사를 조속히 만들라고 재촉한다.
이병화박사는 러시아,중국 훈춘,백두산관광코스(5박6일)를 개발하고 관광객을 유치한다(16명 이상시 106만 5천원으로 책정)
코략자치구 관할 코만도스키섬의 연근해 어업권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나진,선봉개발이 미진하자 중국은 러시아 자루비노항을 이용하기로 합의한다.
고합농장이 철수하고 주택조합중앙회가 인수하여 영농을 시작한다,
중앙아시아로부터 이주한 고려인들은 자금문제로 김떼밀회장과 고려인협회간의 암투가 벌어진다.(99년5월)
*98년부터 2003년2월은 김대중대통령시절이다.
-자료정리/환경국제전략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