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화박사의 연해주를 품안으로-연재 1
러시아 연해주 식량기지 구축하자
이병화 박사 연해주 비밀자료 공개
전두환 연해주 개발비 61억원 압류
-러시아 연해주 식량기지 구축과 북한 곡물지원 및 인력활용 사례집-이 최근 공개되어 화재다.
(재)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연구소장이 한,소 수교전인 89년 5월부터 연해주와 연계된 정치,정책,학술,국제협력등을 통한 숨겨진 뒷이야기가 보고서식으로 묶여져 재탄생했다.
이병화연구소장은 경제학 및 농경영학박사로 89년 9월 고르바쵸프대통령과 면담후 극동지역 농업경제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면서 연해주의 한국측 터줏대감으로 활약하는 인물이다.
연해주 치타등 15개 국영농장의 토마토 재배법과 오이의 유인법 한국의 배추와 오이종자 무상공급등 소박한 소통을 시작한다.
90년에는 민간기업인 로바나사 이성열상무,비닐하우수 건설회사 이상호사장,원예기술자 조석남지사장등을 대동하고 불라디보스톡을 방문하게 된다.
대륙연구소 장덕진소장(전농림수산부 장관)의 후원으로 핫산지역의 발해 유물탐사가 시작되었고 연해주 볼쇼이 블라디보스톡 프로잭트에 북한의 황장엽과 함께 망명한 김덕홍의 동생 김득수(주체과학 아카데미 부총장),김종수,문장주와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92년 10월에는 경북 상주산 사과 ,배추,오이등을 러시아 연해주에 본격적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노태우대통령 비서실장인 노재봉박사는 제 3국에서 고르바쵸프와 면담 14억 7천만달러의 차관과 고려인 자치구역을 위한 연해주 지역의 일부 토지와 교환하는 일명 광개토대왕 프로젝트를 추진하지만 김영삼대통령 당선자는 정권인수를 하면서 파기하게 된다.
홍농종묘 농장장인 임영춘 농자재협의회 국장은 크로모브 농장 책임자로 활동했으며 이성열 (주)칼슨 한국지사장과 문영길 스파스크 주재 고려인등이 항카 산 피트모스를 생산,수입하는 회사를 설립하기도 한다.
장덕진소장은 중국을 개발하고 장치혁 고합그룹회장은 러시아만 개발하는 쌍방 합의를 했으며(94년 3월) 김영삼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고 귀국길에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김병화농장을 둘러보게 된다.(94년 5월)
고합그룹은 해외농업개발고문으로 김한곤(전 농수산부차관)씨를 임명하고(94년 8월) 엘친의 딸 다치야나씨는 이병화원장에게 머지않아 연해주도 알타이와 같은 프리존이 될 것이므로 신속하게 농지를 확보하라고 권유한다.
장치혁회장은 5만달러를 농업진흥을 위해 헌금하고 러시아 연구회를 발족하여 회장 김한곤, 수석부회장에 박의근 국제농업개발원이사장등이 취임한다.(94년10월)
이후 농림수산부는 대책회의를 열고 안기부는 별도팀인 일명 –발해복권-을 가동한다.
고합그룹은 크레모브농장과 순야센농장등 국영농장 49,51핵타(2억 8천만평)를 반영구적으로 합작농장을 추진하는 조인식을 갖는다.(95년4월)
세모그룹은 20만달러를 지원하여 연구사업에 들어갔으며, 전두환 전대통령 측극으로부터 연해주 우수리스크 및 항카평원등 농경지 220만핵타를 장기 임차할 수 있는지 문의를 했으며(95년7월) 이후 전두환대통령은 이 사업을 홍개호 프로잭트로 명명한다.
북방농업연구소 박진환이사장,미국대두협회 이경원한국지부장,김중진KBS PD,세모그룹 박상복사장,이희선과장등은 연해주 항카호 주변 벼농사 지대를 조사하는데 배재대학 심재성교수가 안내를 맡는다(95년8월)
전두환 전대통령은 전경환새마을 중앙회장을 통해 26인승 헬기 2대 구입, 경호원 화기 23정 허가취득,농지 220만 핵타 25년 이상 사용,고려인 500명 유치, 전두환일행 멀티비자 취득등의 협약사업을 위한 용역비 60만달러를 결정한다.(95년 9월)
하지만 같은해 11월 전두환 일행이 출국 직전 한국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전씨일행에 대한 출국 금지조치를 통보받게 되고 12월 3일 합천 향리에서 구속되면서 쌍용빌딩에 보관중인 현찰 61억원은 대검중수부에 의해 압수당하고 홍개호 프로잭트는 무산된다.
연해주와 중국 동북 3성에 한국 농업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3억원의 용역비가 지원되어 북방농업연구소가 개설되는데 박진환이사장,박래경소장,박영선총무,박근용,이윤규감사 연구위원으로는 고영곤,김정호,남철우,박근식,박근용,박병호,박영선,이병화,이영열,이정일,홍은희,남병원,남정욱씨가 참여한다.(96년1월)
치안감과 전 전북도지사를 지낸 이강년씨 일행은 연해주 축산국영농장을 구해달라고 제의했으나 무산되었으며(96년2월),농업진흥청은 세모그룹으로부터 연해주 농업경제 타당성 조사를 의뢰받았다.(96년 3월)
농림부는 해외농업개발지원센터를 농진청 내에 사무실을 설치하게 된다.
러시아연구회는 모스크바 국립대 부총장이며 러시아연방 농지법 개혁위원장인 말렌첸코 박사를 초빙했으며 이후 곡물의 수출관세 73%를 1% 이내로 하향시키게 된다. 친한파인 말렌체코박사는 이후 외국기업의 단독출자를 허용하는 법령을 제정하기도 한다.
이인제 경기도지사는 연해주 농업타당성 조사를 실시했으나 러시아 정부는 제 3국의 중앙이나 지방자치제가 직접 투자하는 것은 간접 침략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제적 결레를 초래한다.(96년4월)
농진청은 세모그룹이 추진중인 영농사업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국제상사(한일그룹)는 연해주에서 한우를 사육하여 축산농가에 공급하는 사업계획서를 청와대에 제출한다. 청와대는 청결지역 구제를 공인받기 어렵다는 사유를 붙여 국제상사는 사업을 포기하게 이르지만 이 사업은 오늘까지도 사업이 가능하다는 것이 러시아 대사관측의 의견이다.(96년5월)
옥중에 있던 노태우대통령은 연해주 개발의 꿈은 버리지 않았다고 아들 노재현을 통해 이병화박사에게 전달했으며 권영해 안기부장과 단독 면담이 이뤄진다.
소비자보호원 허신행원장과 청와대 보고서를 요약하여 권영해부장에게 전달했으며 권영해,허신행,이병화원장등 3인은 극비회동을 통해 안기부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연해주 농업개발을 지원하고 경비 33만달러는 안기부의 기밀비로 갚아주기로 합의했는데 이 사업의 명칭을 발해복권에서 광개토대왕으로 변경된다.
이병화원장은-러시아 연해지방농업과 한국농업의 교류에 관한 연구- 부재 –러시아의 자원과 북한의 노동력과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결합한 삼위일체식 공생농업-이라는 논문으로 국동러시아 농업아카데미에서 농업경영학 박사학위를 받는다.(96년 9월)-(자료정리 환경경영신문/서정원기자)
-이병화박사는 1945년생으로 건국대 농과대를 3년간 수학하고 러시아 프리모리스키 농업아카데미에서 농업경영학 박사를 하바롭스크기술대에서 경제학박사를 취득했다. 대통령특별보좌관실 농업담당관(새마을 담당관)으로 활동하고 러시아연방정부 극동지역 대통령 농업자문위원을 역임했다.
25년전부터 연해주와 인연을 맺고 150차례 이상 연해주를 드나든 연해주 전문가이다. 고르바쵸프,엘친의 극동러시아 지역 대통령 농업경제 자문위원을 지냈고 박정희 시절에는 청와대 농업생산담당관으로 근무했으며 박정희대통령 서거후 연해주 진출을 위한 농업경제 자문위원과 컨설팅을 주도하는 국제농업개발원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병화박사는 연해주의 농업경쟁력에 대해-토질도 좋고 구획정리와 관개정리도 세계최고수준으로 임차료도 ha당 연 30-70달러면 되고 한번 계약하면 49년간 임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연해주에 대해서는 환경생태분야에서도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박사의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