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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판제 전 환경청장의 회고록-연재 17

 

박판제 전 환경청장의 회고록-연재 17

 

-나는 새로움에 도전할 때 가장 즐거웠다-

 

한 집안 안의 내자와의 별거는 무척 힘이 들었지만 지엄한 아버지의 빈소는

내 나약한 의지를 굳게 해주는 산실이 되었다. 어쩌다가 졸리거나 잡념이 일면 빈소의 아버지 영정 앞에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내 해이된 마음에 스스로 채찍을 가했다.

그럴 때마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고사를 떠올렸다.

옛날 중국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비위飛衛라는 명궁名弓이 있었다. 어느 날 기창紀昌이란 한 젊은이가 찾아와서 명궁이 되는 비법을 가르쳐 달라고 애원했다. 비위는 젊은이의 결심을 가상히 여겨 그 비법을 말했다.

이보게 젊은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수행은 눈을 깜짝이지 말고 한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기야. 그 훈련이 다 되면 그때 다시 찾아오게나.이 말을 듣고 기창은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그의 내자는 베를 짜고 있었다. 기창은 방으로 들어서자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러고는 베 짜는 내자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내자는 이 실성한 듯한 남편의 행동이 몹시 의아스러워 물어봐도 기창은 신경 쓸 것 없다며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 바디가 찰그닥 하고 소리를 낼 때마다 자기의 눈도 깜빡거렸다. 아무리 주의를 해도 바디 소리와 함께 눈은 계속 깜빡거렸다.

기창은 이를 악물고 응시하는 훈련을 쌓아갔다. 기창은 이 훈련을 쌓아간 지 2년 만에 비로소 눈을 깜빡거리지 않고 사물을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기창은 뛸 듯이 기뻐하며 다시 비위를 찾아갔다. 훈련이 다 끝났으니 이제 활을 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다시 애원했다.

그 동안 수고했다. 기창아, 명궁이 되자면 그 훈련만으로는 아직도 멀었어. 이번엔 표적을 잘 조준하는 일이야. 아무리 작은 표적이라도 잘 보이고, 어슴푸레한 것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다. 알겠느냐. 그 훈련을 쌓은 다음에 다시 찾아오너라.

기창은 맥이 탁 풀렸지만 그렇다고 중도에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자 그 훈련을 무슨 방법으로 쌓아가느냐고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한참 동안 생각하던 끝에 묘안이 하나 떠올랐다. 기창은 헐레벌떡 마구간으로 가서 쇠꼬리 털 한 개를 뽑아왔다.

방으로 들어오자 방바닥에서 뛰고 있는 벼룩 한 마리를 잡았다. 기창은 뽑아온 쇠털로 그 벼룩을 창문 곁에다 매달았다. 그러나 멀리서 보니 벼룩이 너무 작아서 보일락 말락했다.

기창은 방바닥에 주저앉아 날이면 날마다 눈을 깜빡이지 않고 그 벼룩만 쏘아보았다. 그때마다 화살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 동안에도 세월이 지나 3년이 다 가는 어느 날이었다.

기창의 눈에는 그 작은 벼룩이 이상하게도 큰 수레바퀴만큼이나 크게, 그리고 똑똑히 보였다. 참으로 귀신조차 탄복할 노릇이었다. 일이 여기에 미치자 기창은 벅찬 기쁨을 안고 다시 비위를 찾아갔다.

, 기창군. 참으로 장하구나! 그 어려운 일들을 용케 참아냈구나! 자넨 이제 틀림없이 명궁이 될 수 있어. 아암, 되고말고! 이제야 세상 사람이 모두 자네의 이름을 알게 될 거야. 그 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비위는 그날부터 기창에게 활을 쏘는 비법을 가르쳐주었다. 다시 몇년이 지났다. 기창은 그 쇠꼬리 털로 매어 동인 벼룩을 겨누어 화살을 쏘았다. 이게 또 웬일인가? 신기하게도 화살은 벼룩의 몸뚱이를 꿰뚫었다. 그러나 그 쇠꼬리의 털은 끊어지지도 않았고 그대로였다.

그는 마침내 세상이 다 아는 명궁이 되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몇 년을 두고 끊임없이 쌓은 피나는 수행이 마침내 기창을 천하제일의 명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삼현육각 잡힌 고등고시 합격의 깃발-중에서

펴낸곳-나녹/511/3만원/문의-02-395-1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