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판제 전 환경청장의 회고록-연재 13
-나는 새로움에 도전할 때 가장 즐거웠다-
나는 고등학교 때 학생회 활동을 한 경험과 YMCA 활동에서 배운 경
험, 닥치는 대로 읽었던 책들을 총망라해서 정견의 골자를 짰다.
그러나 불과 5분 동안이라 그만큼 힘이 들었다. 미국의 어느 대통령
이 말했듯이,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되레 그 준비시간은 오래 걸
리기 때문이었다. 불과 몇 마디로 청중을 휘어잡는 촌철살인의 개慨
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준비와 특이한 화술이 요구되는
법이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유유자적한 걸음으로 등단했다. 그
러고는 10초 정도 청중을 바라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
었다. 소란하던 장내가 일시에 조용해졌다. 내가 말을 안 하고 묵묵
히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미리 준비한 제1막이 그대로 적중이
된 셈이다. 청중을 온통 내게로 집중시키기 위해서 이 방법을 미리
고안해 두었던 것이다. 비로소 제1성을 터뜨렸다.
“친애하는 학우 여러분! 나는 유서 깊고 전통이 빛나는 우리 고대인이
된 것을 내 생애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고대인은 왜정 때
는 반일투쟁의 선봉을 섰고, 해방 후에는 반공투쟁의 선봉을 섰으며,
얼마 전엔 반독재 투쟁의 선봉을 섰습니다.“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폭죽 터지듯 일제히 터져 나왔다. 여기서 또
한 내 제2막도 그대로 적중되었던 것이다. 고대인의 시대별 공적을
찬양하려고 했던 것이다.
“여러분, 우리의 선배는 이처럼 조국과 민족과 우리 대학을 위해 벽돌
을 한 장 한 장 꾸준히 쌓아 올렸습니다. 우리 고대는 결코 우연의 소산
이 아닙니다. 뜨거운 피와 땀과 노력의 소산입니다. 나를 만약 대의원
으로 밀어주신다면, 난 우리 고대와 저 서울 상대를 잇는 도로의 포장
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명문교 사이가 비가 오면 흙탕길이 되고, 날
이 개면 뿌우옇게 먼지 기둥이 서서야 되겠습니까? 이 공사는 반독재
투쟁을 한 고대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민들이나 저 창백하고 몸이
약한 서울 상대의 수재들을 위해서 하자는 것입니다. 나는 이 계획을
총학생회에 건의하여 서울시가 이 공사를 하게끔 내 열과 성을 다하겠
습니다.”
나의 정견 발표가 끝났다. 그런데 내 제3막인 이 기상천외한 아이디
어도 청중을 사로잡았다. 아까보다도 더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
다. 아무튼 나는 이 정견 발표로 대학 4년간 ‘아스팔트’란 우스꽝스
러운 별명이 붙어버렸지만, 그때의 정견 발표는 대성공리에 끝났
다. 나는 청중들의 반응에 취해 타 후보를 압승할 자신이 있다고 생
각하며 투표 결과를 기다렸다. 마침내 투표도 끝나고 당락의 결과
가 발표되었다. 물론 나는 예상했던 대로 당선되었다. 나의 지혜를
총동원한 보람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나는 얼마 동안 기어코 해냈
다는 성취감에 취했다. 조그만 촌극이었지만 이런 촌극과 더불어
나의 대학생활은 지겨운 아르바이트로 점철되었다.
대학생활도 1, 2학년이 후딱 지나가고 어느덧 3학년이 되었다.
내 생활에 혁명을 가져와야 된다고 생각했다. 대학생활에 확충을
기해 자기성장을 꾀하고, 무언가 남다른 전공專攻을 이룩해야 대학
인의 사명을 완수한다고 결심을 굳혔다.
● 제1부 뼈를 깎는 배움의 뒤안길-중에서
펴낸곳-나녹/511면/3만원/문의-02-395-1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