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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판제 전 환경청장의 회고록-연재

박판제 전 환경청장의 회고록-연재

-나는 새로움에 도전할 때 가장 즐거웠다-




펴낸곳-나녹/511/3만원/문의-02-395-1598

 

-일제치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광복과 전쟁을 경험하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에서도 가장 가난했던 고학생이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을 이끌던 경제 관료로서,환경과 디자인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과제로 인식시키는 전도사로,그리고 시민운동가로 쉴 틈 없이 달려온 80년의 내 이야기가 한편으로는 부끄럽지만,그래도 오늘을 살며 내일의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가야 할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박판제의 존경하는 바우형에게 중에서

 

-나는 새로움에 도전할 때 가장 즐거웠다-를 연재한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미래를 염려하는 이 시대의 삶들 속에 박판제전환경청장의 솔직 담백한 80평생 인생 고백을 지면으로 함께 걷고자 한다.-편집자 주-

 

-나는 새로움에 도전할 때 가장 즐거웠다-1

 

옛 삼산초등학교의 운동장을 머릿속에 떠올리곤 했다. 이럴때마다 아버지는 언제나 이런 말로 나를 위로해 주셨다.

판제야, 큰 고기는 큰 고기와 놀아야 하고, 작은 고기는 작은 고기와 노는 법이다. 웅덩이에서 자란 올챙이는 망망대해를 모른다. 차차 세월이 가면 친한 친구도 생기고 너도 이 고장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러했다. 아버지의 말씀은 한 치도 어김이 없었다. 갓 전학을 하며 가졌던 나의 광장廣場 공포증도 얼마 안 가서 사라졌다. 풋낯이 차차 익어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도 생겼다.

그런데 기죽은 이 즈음의 나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준 분이 있었다.

담임인 조광석趙光碩 선생님이었다. 얼굴에 유난히 주근깨가 많고 언제나 웃음이 만면滿面한 선생님은 전학 온 나의 고적감孤寂感을 아시는 듯 자별하게 나를

귀여워해 주셨다. 수업시간에도 내가 손만 들면 나를 지명해 대답하게 하셨다. 그러고 그 대답을 극구 칭찬하셨다.

우리 반에 좋은 학생이 들어왔어요. 학습 진도가 저쪽 학교와 우리반이 다른데도, 전학 온 학생이 참 잘도 하네요!

갓 전학 와 돌에도 나무에도 마음 붙일 곳 없던 나를 바로잡아 주시니 한없이 고마웠다. 마치 지옥에서 보살菩薩을 만난 듯, 황소가 등을 비빌 언덕을 만난 듯, 용기가 불끈 치솟았다. 그럴수록 더더욱 칭찬을 받으려 공부에 열중했다.

 

그 뒤 여러 해가 흐른 뒷이야기지만, 내가 청와대에서 부실기업 정리 총괄반장의 일을 할 때였다. 어느 날 뜻밖에도 조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가까워서 거기가 어딥니까, 하고 물으니 서울이라고 하셨다. 너무 반가워서 만사를 제피除避하고 팔랑개비처럼 달려갔다. 정겨운 은사의 목소리는 내게 한 자락의 가벼운 흥분마저 가져오게 했다. 기다리시는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선생님

90도로 꾸뻑 절을 했다. 접어두었던 옛 사제간의 정의情誼가 일시에 폭발하여 콧등이 시큰해졌다. 선생님께선 어줍잖은 일로 학교를그만두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약간 상기된 어조로 빵을 구해 서울로 왔다고 하셨다.

내가 그때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었기에, 나를 찾아오신 것이 분명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은사님께 은혜를 갚을 좋은 기회가왔다고 생각했다. 그날부터 열과 성을 다하여 선생님의 직장을 백방으로 구해보았다. 그러나 수양산首陽山 그늘이 강동江東 80리라지만, 목에 힘을 빼고 한 소박한 야인野人의 처지로 돌아가 가는 곳마다 허리를 꺾었다.

그러던중 부산 조선공사造船公社 남궁련南宮鍊 사장의 응낙을 받았다. 옛 은사님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내 작은 정성이 그분을 감동케 했다고 칭찬까지 들었다. 이리하여 선생님은 그 회사의 근로자 훈련원의 교학과장으로 취직이 되셨다. 그러나 1년 남짓 다니시다가 회사 동료들의 거센 반발을 받아 그만두셨다. 다시 상경하여 나를 찾아오셨다.

나는 다시 그 회사의 중역 한 분을 만나 복직을 애원했다. 그 길만이 은사님을 돕는, 내가 입었던 은혜의 한 조각을 갚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평생을 두고 이렇게 코가 땅에 닿도록 남에게 머리를 숙여 간절히 청탁을 한 일은 다시 없었다. 아무튼 내 정성이 주효하였던지, 조 선생님은 한 직급 올려 다시 그 회사에 복직이 되셨다. 나는 앓던 이가 빠진 듯, 아니 내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옛말인 군사부

일체君師父一體를 들먹일 것도 없이, 제자가 옛 스승을 위하고 공경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요, 벗지 못할 숙연宿緣이 아닌가! 더욱이 조 선생님은 그 옛날 내게 용기를 주고, 향학에의 자양분을 듬뿍 쏟아준 은사가 아니신가!

그러나 조 선생님은 복직이 된 후로 2년 여에 다시 그곳을 떠나셨는데

소식 듣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어느 하늘 아래이든 선생님이 옥돌보다 귀한 건강과, 맑은 행복 누리기를 두 손 모아 빌 따름이다.

                                                                   ● 1부 뼈를 깎는 배움의 뒤안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