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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자 에세이 –아흔 무렵에

김현자 에세이 아흔 무렵에

 

금혼식 어떻게 하지,결혼 50년의 고민





 

 

지독히도 무더운 여름,건너 건너 책 한권이 도착했다.

시집이나 수필집등은 자주 접하지만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에세이집은 목차와 한편정도 읽어보고(읽다가 던져 버리기도) 치워버린다. 너무도 상투적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냄새가 지워져 있기 때문이다.

12대 국회의원 시절 여성의원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스치듯 지켜본적은 있지만 글로 대면하기는 처음이다.

인생여정 90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펴낸 김현자(283월생)님의 아흔 무렵에-는 치기적 냄새가 없어 담백한 백김치 맛으로 읽어 내려갔다.

워낙 다양한 경력을 지니고 있어 호칭도 국회의원은 달갑지 않고 정겹게 님으로 표현했다.

국회의원(11,12) 헌정회부회장,YWCA실행위원, 한국전문직 여성클럽 창립회장, 한국여성정치연맹 총재,그리고 수필가이기 때문이다.

김활란 여성지도자상,자랑스런 이화인상,비추미여성대상,YWCA대상등 국가가 수여하는 수상경력보다 민간기구에서 받은 수상경력이 김현자여사가 살아온 인생의 빛나는 매듭들이다.

1부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2부 아흔 무렵에 ,3부 내가 만난 김현자가 소개되고 있다.

글 전체에서 숨김없이 베어져 나오는 김현자의 화두는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 나이며 젊음,끊임없는 자기 연마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다.

치기적이고 상투적인 자랑거리는 될 수 있는 한 절제하고 있는 것도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일테면 화려한 가족관계의 자랑스러움도 궂이 눌러서 흘러가듯 써 내려갔다.

금혼식을 준비하면서 큰며느리의 섭외능력,결혼당시의 청와대 안주인의 방명록싸인,회상의 영상물 제작은 둘째아들 내외가,피로연의 내외장식은 미술공부하는 큰손자등 대가족의 진풍경이 소롯이 베여나온다.

-나는 바지 입은 여자가 좋다.바지 입은 여자는 아름답다.(바지입은 여자- 중에서)

-8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의 정표를 무수히 받았다. 물질로서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많은 사랑의 빚을 지면서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내 자식이나 후대에게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은 미처 못 했었다.(백일반지 에피소드-중에서)

-이제 칭찬하는 말을 집의 아이들에게만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주고 싶다. 사람들의 좋은 점을 찾아내 인정해주는 말을 하고 싶다-(칭찬중에서-)

-일상의 작은 일들을 가지고 인생을 깊이 성찰하고 자기 관조를 하는 수필은 오직 거짓 없는 생활과 따뜻한 마음,열린 태도에서만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수필 공부란 바로 인생 공부가 아닌가 싶다.(수필공부-중에서)등 전반적으로 자기연마에 많은 공과 정렬를 쏟는 모습이 베여 나온다.

그러면서 간간히 늙음에 대한 아쉬움, 흐르는 세월의 어쩔 수 없는 한계점에서 다시금 자신을 옥죄는 모습은 매우 진지하고 간절하기까지 하다.

-더 늦기 전에 내가 할 일이 있다면 더욱 감사하고 더욱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감사하고 사랑할 일은 너무 많은데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중에서)

-나는 이왕이면 활기 있게 살다가 곱게 늙었으면 하는 소원을 갖고 살아 왔다. 그런 기대가 나로 하여금 근거 없이 다른 사람보다 더디 늙을 것이라는 착각을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착각-중에서)

-헤어지는 연습은 좀 천천히 두고 해도 될 듯 싶다.(헤어지는 연습-중에서)

가족농사도 매우 풍성하기만 한 금혼식이란 글에서는 경비는 걱정마세요, 금혼식을 본 일이 없어 그게 걱정이지. 남들은 어떻게 하든 우린 우리식대로 하면 되지 뭐. 간소하게 ,그러면서 멋있게.-(금혼식-중에서)

김활란박사,김정례,윤보선,장성,박마리아,박에스더,정지용,김상용등 당대의 유명한 시인,정치인,종교계와 YWCA의 인사들과의 만남과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남편 오기형교수(별세),오준호(아들),오강호(둘째),오혜련() 그리고 손자와 손녀들과의 어우러지는 단란한 가족풍경을 배면으로 읽게 해준다.

아울러 동반자로 지내온 선후배들인 김옥라,이경숙씨와의 소중한 만남도 흔적을 남겨 놓고 있다.

새로운 도전은 여전히 흥분의 연속이다.가라않지 않는 욕구,배움, 그녀는 지금도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그래서 모두 가는 해를 아쉬워하고 늙음을 슬퍼하는구나.

저 잎사귀들은 봄이 오면 싱싱한 새 잎으로 다시 태어나지만 우리 인간은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자식들이 있지 않느냐고.

자식은 자식일 뿐이고 나는 나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인생인 것을. 그것이 삶의 이치인 것을.(낙엽을 밝으며-중에서)

그렇게 아흔 무렵으로 살아온 여정들이 짙은 색깔로 다시금 봄이 되어 피어나고 있다.(시인-길샘 김동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