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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연재/환경산업의 마케팅전략

특집 탐구-연간 매출 13조 5천억원의 숌부르크그룹

 

특집 탐구-연간 매출 135천억원의 숌부르크그룹

 

3세대 독일기업 숌부르크 (SCHOMBURG) 한국진출

 

방수 ,방식등 건축 소재 판매로 연간 매출 올려

전 세계 57개국에서 최고 품질로 인정

친환경 소재,친환경 운영관리로 최고만을 고집

 

 

 

독일 뮌헨에서 다시 국내 비행기로 1시간을 날아간 후 다시 40여분간 초원을 달리면 인구 8만명의 작은 도시 Detmold(데트몰드)를 만나게 된다.

음악의 도시이며 온 도시가 과거 중세시대의 바로크양식으로 뒤덮인 조용하면서도 청결함, 역사가 살아 숨쉬는 도심 주택가에 창립자인 알베르트 숌부르크의 이름을 딴 숌부르크그룹을 만나게 된다.

작은 도시 델트몬트,그러나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풍요로운 공간을 제공하는 이곳에는 숌부르크 그룹과 구두가죽회사로 유명한 wortmann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차로 이동하면서 고가도로의 현판에는 숌부르크그룹의 간판과 구두회사의 간판이 쉽게 눈에 띈다.

특이점은 공공성을 지닌 간판이란 점에서 이 도시의 주민들은 이들 회사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숌부르크그룹은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건설자재 전문기업.

주로 콘크리트벽면 방수방식과 복원기술,타일시공,산업용 바닥재,콘크리트 혼화재등을 생산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전세계 50여개국에서 유통되고 있으며 생산시설도 14곳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 기업의 특성은 기술개발에 역점을 두는 것으로 본사 직원의 6%가 연구직으로 활약하고 잇다.

이들 연구진들은 80여년간 건물 및 구조물의 방수 및 복원을 위한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제품을 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

이같은 기술력은 전세계 역사적인 건물과 사료적 가치가 높은 유물들이 위협받고 있는 염분과 수분에 오염된 내외부 벽체를 수리하는등 건축 구조물의 외관과 내면을 완벽하게 보수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 결과 현재 숌부르크그룹이 한해 매출은 135천억원으로 단일 분야에서 이같은 매출을 올리는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이 회사의 기술력과 기업현황을 알기 위해 4성급 호텔인 웨스턴 레지던스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상가중심지역에 위치한 맥주와 식사를 파는 음식점 슈트라테 브라우하우스 (Strate Brauhaus) 찾았다.

직접 맥주를 생산하여(브로이라이) 판매하는 곳으로 독일식 정통 향토맥주집(브라우하우수)이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정통 막걸리와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이라고나 할까.

이 가계도 3대째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어 눈길을 모았다.

내부 디자인도 1백년이 넘은 과거의 건물구조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현대화된 지침대를 받쳐 실내를 운영한다. 내부 구조물도 조형미를 살려 과거 디자인과 궁합이 맞게 설계되어 무조건 부수기에 이력이 난 우리 건설구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물론 모든 상점의 간판은 짜임새 있고 디자인측면이 강한 작지만 선명한 자신만의 자취를 짙게 풍기게 하여 우리나라의 간판 풍경과도 대조적이다.

국내에서도 도시디자인에 대한 재검토 바람이 불긴 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암담하다.

환경 전 분야에 찝쩍대다보니 근심과 걱정 그에 맞춰 봐야 할 것들도 너무 많아 눈과 머리가 어지럽다.

일정은 숌부르크그룹의 작업환경과 방수방식의 실사현장을 견학하고 이틀 후 한국 기업인 정태경사장(57)과 합작회사 조인식을 가진 후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잡았다.

 

 

 

 

 

 

숌부르크(SCHOMBURG)그룹의 성장과정

 

가족기업이면서 건설자재만을 생산하는 단일품종의 기업이 어떻게 연간 매출액 135천억원을 넘기고 있을까.

우리나라 환경기업은 30년을 넘기지 못하고 3세는커녕 2세도 넘기지 못하는 판국에 그들의 경영전략과 품질의 우위성을 유지시키는 이유에 대해 궁금증이 더했다.

우리의 환경기업중 3세 경영을 유지시키는 것은 주철관을 주종으로 최근에는 계열사로 화장품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주철이 유일하다.

Albert Schomburg.Sr80여년전인 37년 화학건설 보호제를 위한 무역회사를 설립한다.

2차 세계대전이 반발하기 2년전 회사를 설립하고 전쟁이후인 49년 현재의 데트몰트(DETMOLD)에 제조공장을 설립하고 57년 데트몰트시 근처인 Spork-Eichhholz에 새 공장을 설립한다.

59년에 비투맨이란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61년 두 개 공장을 현재의 데트몰트 시 Spork-Eichhholz에 제조공장과 관리실을 건설하면서 사업을 확산해 간다.

그리고 이웃나라인 스위스 취리히 로보텍에 생산과 유통시설을 설립한다.

66년에는 구조물 실링을 위한 상표 AQUAFIN이란 상표를 도입 현재의 숌부르크그룹의 대표적 상표로 정착시키게 된다.

점차 시장이 확산되면서 폴리머와 비투맨 제품을 위한 새로운 생산시설을 모색하면서 75년에 네덜란드 Hogeveen Beco-Bouwchemie에 또다시 공장을 설립하고 네덜란드, 스위스,독일을 아우루는 중심 물류창고를 건설하고 91년 폴란드 쿠트노에 제조 및 유통회사를 설립한다.

초기 무역회사로 시작한 숌부르크 그룹은 49년 첫 제조시설을 구축한 이후 20여년간 3개공장을 운영하였으며 70년대에 들어와 유럽지역을 중심으로 한 제조공장과 유통센터 및 물류센타등 200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건설하는 역동적인 사업확산을 펼친다.

94년 동독 Saale강 근처에 공장설립,97년 베를린등에 물류센터 구축,99년 현제의 공장을 제고창고를 위한 공장확장을 지속하면서 2000년까지 공장과 물류센터 6개를 건설한다.

사업 후 63년동안 4개의 제조공장과 5개의 물류센터를 만들어 시장성에 따라 현지공장과 생산된 제품의 원할한 유통을 위해 물류기지를 차근차근 만들어간다.

이처럼 고속성장기인 60년간 숌부르크그룹은 제조와 물류기지의 확산을 통한 판매전략에 혼신을 다한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독일 거점으로 한 내수시장에서 세계를 향한 발판을 넓혀가기 시작한다.

 

 

세계를 향한 전초기지 확산과 경영구조

 

밀레니엄 2천년을 맞이하여 숌부르크그룹은 스위스 Birr에 로보텍 숌부르크사를 설립하고 4년후 미국 엘카톤에 부동산을 취득하고 06년 슬로바키아 Bratislava에 공장설립,07년 인도 Hyderabad에 합작회사 MYK-숌부르크 생산공장을 설립하므로서 유럽과 미주 그리고 아시아까지 진출하게 된다.

09년 이탈리아에 합작회사 벤퍼 숌부르크 설립,11년 이탈리아 Bazzano에 벤퍼 숌부르크 공장 인수, 13년 베트남 호지민 시에 숌부르크 베트남을 설립하고 15년인 올 8월에는 대한민국 대전에 숌부르크 코리아사를 설립하는등 세계를 향한 고속성장은 식을 줄 모른다.

결국 창립후 78년동안 총 5개의 유통회사,14곳의 생산시설을 갖춰 평균 4년마다 전 세계 곳곳에 숌부르크의 손길을 닿게 하고 있다.

숌부르크 코리아도 합작회사로 설립되므로서 현지기업과 손을 잡고 숌부르크의 신뢰와 기술을 지속적으로 번지게 하게 되었다.

숌부르크그룹을 급성장 하게 한 최고경영자의 구조는 어떻게 진화했을까.

설립자 알버트 숌부르크는 사업정착기 이후 고속성장기인 60년대 이후에 2세인 아들 Albert Carl Schomburg(38년생)에게 경영수업을 시작하게 한다.

Albert Carl Schomburg 61년부터 창업주에게 경영수업을 하면서 숌부르크그룹의 2세 경영자로 활약했으며 08년까지 47년간 일선경영에 참여한 후 자문위원장으로 물러나게 된다.

숌부르크 2세는 당시 건설산업 중 몰탈, 혼화제, 이형제 등과 같은 보호 코팅 제조에 중점을 두었으며 AQUAFIN방수, 타일, 산업코팅, 콘크리트 보수 제품 개발로 사업을 확장하고 25개 나라의 자매회사를 거느리는 등 순탄한 가업승계와 기업 확장에도 성공하게 된다.

08년부터는 3세 경영시대를 맞는데 새 최고 경영자로 둘째 아들인 Ralph Schomburg (71년생)을 임명한다.

삼성그룹이 막내를 선임한것과 같이 숌부르크 2세는 둘째를 최고 경영자로 선임한다.

Ralph Schomburg는 경영학을 전공한 후 2005년부터 해외 영업과 경영 마케팅 담당을 인수받아 유럽을 중심으로 한 사업 확산을 한다.

내수시장에서 좀더 진취적인 유럽지역의 해외시장 확보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함께 자회사인 Schomburg Gmbh를 통해 직원들에 대한 직접경영참여제도를 도입하는 새로운 전략경영을 도입한다.

한편 첫째인 Albert Johannes Schomburg (67년생)2002년 이후 아시아를 탐색하면서 독자적인 마케팅을 펼쳐 현재 아시아 담당 최고경영자로 활동하며 숌부르크 그룹의 약점을 보완하는등 측면적 지원을 한다.

숌부르크그룹의 가족이 아니면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로는 Alexander Weber (72년생)SCHOMBURG 그룹에서 견습생으로 시작하여 영업분야로 담당을 맡았다. 2003년에는 국가영업매니저로 승진했으며 2010년부터 회사파트너가 되고 2012년부터 회사 전체의 재정, 인사와 모든 마케팅을 담당하는 중심인물로 성장한다.즉 숌부르크그룹 2,아들 2,사내 사원 출신 1명등 4명이 거대한 숌부르크그룹을 이끌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연구과제이기도 하다.

숌부르크의 주식 지분은 숌부르크 2세가 50%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첫째 Albert Johannes Schomburg 20%, 둘째 Ralph Schomburg20% 그리고 마케팅 총괄담당인 Alexander Weber10%의 지분을 지니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영책임자들에 대한 선정은 학력보다는 적극성과 호환성 그리고 진취적인 추진력 및 상호 융합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친족인 두 아들 모두 경영수업을 받았으나 둘째만 경영학사로 마감했을 뿐 큰아들은 학사학위가 없으며 마케팅 및 인사 담당자인 알렉산더 도 학위보다 실행적 견습을 통한 평가를 통해 책임경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 총괄사장 Albert Johannes Schomburg와의 단독인터뷰

 

숌부르크가 3세인 Albert Johannes와의 인터뷰는 데트몰드가 자랑하는 거대한 헤르만 장군동상 헤르만스 뎅크말 (Hermann Denkmal)이 있는 공원의 한 식당에서 이뤄졌다.

우리는 5천년 역사를 지니면서도 역사적 인물의 동상하나 변변하게 앉아 있지 못하다.

서울시에 건의한바 있으나 답변만 궁색하게 돌아와 우리의 역사적 결빙의 하한선을 채득하게 한다.

솜부르크사를 떠나기 하루전날이라 아쉬움도 남는다.

공원의 황혼녁은 아름다우면서 고요했고 고령의 부부가 다정하게 공원을 오르고 있는 모습은 더더욱 고즈녁했다.

비가 그친 이후라서인지 하늘은 더욱 파랗고 숲은 상큼한 향기를 맘껏 풍겼다.

같은 하늘이지만 색의 유희가 이처럼 다른 파장을 일으키는가 새삼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인터뷰하는 동안 옆 좌석에는 20개월 된 딸과 15년 연하의 베트남 부인이 함께 했다.

 

아시아를 사랑하는 숌부르크가 3

 

둘째 동생이 숌부르크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유럽시장을 개척하면서 최고 경영자로 성장했다면 가계의 첫 아들인 Albert Johannes Schomburg(49)보혜미안 기질이 있으면서 부친인 숌부르크그룹 2세와 갈등을 빚다가 22살부터 세계를 향한 여행을 하기 시작한다. 물론 대학수업인 경영학도 중도에 포기한다.

90년대의 그는 잠시 인터넷 텔레콤관련 회사에 근무하기도 한다.

그러나 독일은 좁았고 아버지와의 간격을 넓히기 위해 전 세계를 돌기 시작한다.

스스로 대학수업은 자신의 인생설계와는 관계가 없다는 판단아래 자유의 몸이 되기를 택한다.

스페인등 유럽을 거쳐 지구를 돌기 시작한 그는 점차 아시아의 향기에 물들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독자적인 회사를 설립할 것을 결심한다. 학구적 지식습득보다는 현장경험을 더 중시한 결과물이다.

개척자의 정신이 온몸에 베여 있고 인간과의 관계를 얼마나 절실히 탐구하는지를 엿보게 한다.

그 결과 지금은 베트남에 정착 부인과 딸과 함께 살아가며 아시아 최고 숌부르크 그룹 경영인으로 활동한다.

사실 부친인 숌부르크 2세와는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왔다.

인생철학과 삶의 지표가 다르면서도 기업경영 측면은 또 다른 일치된 일맥을 상통하고 있다.

즉 이질적 대립은 있지만 대립속에서도 기업의 발전을 위한 상생적 전략은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고 있다는 점은 국내 기업들의 부자지간의 갈등으로 인한 분열과는 또다른 양상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경영노선으로 좀더 깊숙한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윈드서핑이 취미이기도 한 그는 비록 방랑자적 기질을 지니면서도 원초적으로 숌부르크 그룹의 핵심소재인 건축자재의 중심에서는 한치도 멀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뇌속에는 습기나 비가와도 또다른 부식이나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소재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버리지 않는다.

 

 

 

아울러 글로벌적 감각과 함께 친환경소재에 대한 탐구와 물색은 어느 경영자보다 쳐지지 않는다.

즉 독일 본사가 협력관계로 소재개발을 하고 있다면 숍부르크 3세는 외각에서 소재개발과 아이디어를 수시로 제공하면서 정신적,전략적 지원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숌부르크그룹의 상품은 이미 30여년전부터 친환경소재로 전환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린숌부르크이다.

지금도 각종 소재중 환경의 위해성이 있는 솔벤트등과 같은 소재에 대해서는 기꺼이 배척하면서 전제품 친환경화를 매우 중요한 기업전략으로 세우고 있다.

즉 편리성,환경성,높은 강도를 최우선하는 것은 변함 없는 기업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신뢰이다. 권력과 자본력보다는 사람을 더 중시한다.

그래서 한국과의 관계도 10여년의 인연 끝에 이번에 합작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시공전문회사를 운영하면서 국내 실정을 뼈저리게 음미한 정태경 사장의 솔직성과 진실성에 숌부르크가 3세도 동의한 결과이다.

향후 최고의 시장 확산은 역시 중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직접적인 거래는 아직 하지 않는다.

중국은 신뢰가 쌓이지 않았고 여전히 짝퉁의 원산지로 불신도가 높기 때문이다.

상품의 가치 확산도 품질만 좋으면 자연적으로 판매량은 증가한다는 논리가 그를 지배한다.

다만 좋은 상품도 그 가치를 유지하려면 인간이 좌우하므로 인간관계의 신뢰를 무척이나 중시한다.

지금 숌부르크그룹의 전체 매출액 135천억원중 70%는 해외에서 거둬들인다.

유럽과 아시아와 미주시장이 중심지역이다.

그는 향후 그룹이 해야 할 중요한 사업으로 그 나라의 정형성을 띄운 가난한 나라에 집을 지어주는 공익사업이다.

숌부르크그룹이 생산한 제품으로 다듬질하여 인간의 수명보다 더 길고 긴 생명을 지닌 싸고도 질긴 주택을 지어주는 일이다.

그에게는 국제사회에서 융합과 소통을 중시한다.

인터넷 세상에서 소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터뷰를 위해 독일 본사로 날아온 지금도 스마트폰과 와이파이를 통한 소통은 지속하고 있다.

숌부르크그룹이 건강성을 잃지 않고 세계를 향한 파장을 지속적으로 일으키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기업정신인 신뢰,정직,최고의 품질을 그는 항시 직시하면서 세계를 향한 개척자의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즉 부친과의 소통적 문제에서 젊은날의 갈등은 지울 수 없지만 기업가의 정신과 개척자의 정신 그리고 숌부르크의 기업정신을 항시 잃지 않고 있다.

역사와 문화가 함께 살아 숨쉬며 노래하고 있는 데트몰트를 떠나면서 숌부르크그룹의 짙은 향기가 인천공항에서도 살아 숨쉬길 기원하면서 기업의 경영전략에서 무엇을 섭취해야 할 것인가 잠시 정돈을 해 본다.

열정적으로 독일어를 통역해 주며 짧지만 강렬한 Detmold(데트몰드) 향기를 들춰준 독일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염혜정씨( 뮌헨한글학교장,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독일 KOWIN Germany 임원)에게도 감사 드린다.(독일특파원/김동환 환경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