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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재탐구-백제문화속에서 찾는 궁궐의 식수문화 백제 사비도성

길샘 2025. 1. 19. 22:54

문화 재탐구-백제문화속에서 찾는 궁궐의 식수문화 백제 사비도성

 

현대의 물산업 과거속에서 미래를 찾자

 

환경경영신문(환경국제전략연구소, 202364일자)23년 백제시대의 공산성 계단식 식수 댐을 재조명하였다. 우리나라 현대 수도산업도 1백년을 넘기고 있지만 관련된 기관이나 기업들이 역사의 고증을 통한 한국의 물문화에 대해 조명하거나 자료를 조사한적이 없다. 그만큼 옛문화에 대하여 절교하다싶이 외면하는 것이 우리나라 수도산업의 한 일면이다. 의식주에서 의복, 화살,칼등 생활가구, 먹거리 등이 역사적 조명을 하고 있는 반면 생명과 직결되는 물에 대한 역사적 고증이나 연구가 미흡한 실정이다. 매우 부끄러운 민낯이다.

국내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는 계단식 형태의 공주 공산성 우물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물관련 전문가들의 연구분석이 필요하지만 이런 분야에 투자하지 않는 나라도 대한민국이다.

백제문화는 고구려 문화와 함께 아직도 체계적인 연구가 미흡한 실정이다.

역사속으로 들여다 볼 수록 신비롭게 경이로우며 놀라운 물문화를 구축한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옛 물문화를 들여다 본 것은 상수도와 하수도 1백년사를 편찬하면서 잠시 스치듯 문헌을 뒤져본 것이 처음이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심상육 책임연구원이 그동안 연구한 내용 중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사비도성과 식수를 조명한다.

화지산 우물 바닥

 

 

범란이 잦았던 하천을 품에 안은 부여

 

부여 일원 하천의 특징 중의 하나는 서해의 조수간만의 영향을 받으며, 하구둑이 건설되기 전 밀물 때에는 부여 일원까지 강물이 역류하였다. 부여 지역은 금강수계에 포함되며, 금강은 유로 길이가 401km로 우리나라 6대 하천 중의 하나이다. 하천의 양상을 살펴보면, 금강은 공주시와 청양군의 사이를 직선으로 지나다가 부여읍에 이르러 부소산 부근에서 제1차로 ‘C’자형으로 굴곡하고, 남쪽으로 장암면과 석성면 사이의 파진산 협곡을 지나 강경 부근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세도면·임천면·양화면의 남쪽과 전라북도와의 사이에서 제2차로 ‘ C’자형으로 굴곡한다. 전체적으로 부여의 동부 지역을 북에서 남으로 향하여 ‘S’자 형태로 관류하여 흐른다. 공주와 청양의 경계선을 따라 남하한 금강은 부소산 굴곡부에 가로 막혀 범람하여 지천의 하류 지역인 청양군 장평면·청남면의 남쪽에 넓은 범람원을 형성하였고, 그 건너편인 부여군의 은산면·규암면의 북부에도 소규모의 범람원을 형성한다. 이어 부여 관내를 흐르는 금강의 구간을 특히 백마강이라 부르며, 지천·은산천·금천·석성천 등의 하천이 이 백마강으로 유입한다. 금강과 이들 하천이 만나는 지역에는 범람원이 넓게 발달하게 되며, 부여읍 북쪽인 저석리·자왕리·정동리 일대의 금강 연변에는 자연제방과 범람에 의한 충적평야가 넓게 분포하여 이른바 부여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부여 관내를 지나 제2차로 ‘ C’자형으로 굴곡한 금강은 장암면과 석성면 사이의 파진산협곡에서 배수가 되지 않아 크게 범람하여 백마강 양쪽 연안에 광대한 범람원을 형성한다. 부여읍의 남쪽인 규암면·장암면에 이르는 백마강 연안에는 큰 규모의 범람원이 분포하며 자연제방·포인트바·배후습지 등 범람원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지형적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관북리 궁궐터 도수관로

 

한국의 최초의 신도시며 계획도시 백제 사비도성

-궁궐터에서 발견된 기와로 만든 도수관(導水管)-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는 수박·방울토마토·양송이 등 굿뜨래농산품으로 유명한 부여군이다. 이곳은 475년 고구려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옮긴 웅진 왕도(공주)와는 달리, 백제 당시 최첨단 기술을 이용하여 계획적으로 만든 도읍(사비도성)이다. , 사비도성의 둘레는 자연 해자(垓字) 격인 금강과 돌과 흙으로 쌓아 만든 나성(羅城)으로 삼고, 궁궐은 도읍의 북쪽 중앙부에 위치시켰다.

이는 당시 최고 권력자가 북쪽에서 남쪽 백성을 바라보게 설계한 모습이며, 도성 내부에는 산자들의 공간으로 철저히 무덤을 쓸 수 없게 했다. 이러한 모습이 인정되어 사비도성의 주요 구성물인 나성 밖 능원(부여 왕릉원), 둘레인 외곽시설(부여 나성), 도읍 중앙부의 국가 종교시설인 정림사지, 그리고 왕성과 궁궐터인 부소산성과 관북리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2015년에 등재되었다.

부여 석목리 우물

 

백제의 마지막 궁궐터는 부여 관북리 유적으로 부소산의 남사면 끝자락이다. 이곳은 동-서와 남-북의 도로 등으로 공간이 구분되고, 공간 내부에는 경복궁 근정전 건물과 같이 건물 내부 중앙이 넓은 공간으로 이루어진 전면 7칸 측면 4칸의 중층건물터가 넓은 마당을 갖추고 있다. 어느 공간은 작은 건물터가 여러 채 모여 있고 토기 그릇이 다수 확인된 곳 등 용도가 다른 공간이 다수 존재하는 곳이다. 그리고 모든 건물에는 기와를 올렸다. 특히, 주요 전각(殿閣) 건물터에서는 연화문의 와당과 흙을 구워 만든 전돌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곳의 건물터와 와당 등은 다른 도성 내부의 공간에 사용된 것보다 기술 및 장식성 등이 높아, 그 당시 최첨단의 기술이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화지산 우물내벽

 

사비도성 내부에는 우리나라에서 얼마 전까지도 사용했던 공공시설물인 우물이 다수 확인되었다. 이 우물은 지하수가 흐르는 곳까지 땅을 파서 그곳부터 돌이나 나무 등으로 우물 벽을 만들어 용수를 모으는 시설이다. 그런데 백제 궁궐터에서는 당시 이보다는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상수도시설인 우물이 확인되었다. 하나는 돌로 만든 위 우물과 나무로 만든 아래 우물을 나무관으로 연결하여 물을 정화하여 아래 우물물을 용수로 사용한다든지, 하나는 땅에서 직접 샘솟는 우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 수원지에서 물을 지하로 흘려보내 여러 곳의 우물에 물을 공급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방식이다. 이곳에서 물을 지하로 이동하기 위한 도수관로가 확인되었는데, 흙으로 만든 원통형 관로를 여러 개 연결하거나, 수키와를 두 개 겹쳐 관을 만들거나, 암키와 위에 수키와를 올려 물이 흘러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시설은 오늘날 빌라 등의 옥상에 물통을 올려놓고 그 물을 아래로 PVC 관로 등으로 보내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을 채택한 곳은 백제 후기 사비도성의 왕궁에서 왕족의 생활 공간에 해당한다. 2005~6년 발굴조사로 기와 도수관로로 연결된 우물 3개소와 도수관로는 연장 약 100m가 확인되었다.

 

이처럼 무동력 장치로 깨끗한 물을 흙으로 만든 도수관로를 통해 흘려보내 현대의 상수도시설과 같은 우물을 백제 사비도성의 궁궐터에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는 궁궐 밖 귀족 및 민가에서 사용한 지하수를 고이게 하여 사용한 우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첨단의 기술이라 할 수 있다.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심상육 책임연구원)

도수관로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222년 백제의 축제(築堤)기술은 중국 화북지방에서 우경법과 거의 동시에 전해져 백제나 신라의 축성술이 일본보다 앞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댐은 김제군 부량면의 벽골제(碧骨堤)로 백제 비류왕 때인 A.D 330년경에 축조되었다. 벽골제는 높이 4.3m, 길이 3,240m로 대규모 토목공사였다. 측량의 정밀도는 상당히 높았으며 그같은 저수댐 축조기술은 일본으로 전해져 지금도 나라현에는 백제지(百濟池)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벽골제와 같은 지역인 고부의 눌제(訥堤), 익산의 황등제(黃登堤)등도 백제 초,중엽 시기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벽골제, 눌제, 황등제는 삼호(三湖)로 불려졌다, 이 외에도 역사에 기록된 오래된 댐과같은 구조물은 상주의 공검지, 의성의 대제지, 제천의 의림지, 밀양의 수산제등이 있다.

삼국사기 기록으로만 보면 물산업(,관계용수,음용수)이 신라보다 백제에서 왕성하게 축조되고 개발사업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 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