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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렬 시인의 인천 짠물論 3- 내 발이 머무는곳이 고향

길샘 2021. 10. 30. 12:05

정승렬 시인의 인천 짠물3

 

내 발이 머물고 있는 곳이 내가 사랑하는 고향

당신의 고향과 자식의 고향을 구분시켜줘야

부모의 고향만 주입하면 자식은 고향 잃어버려

 

 

우리 아버님은 황해도 곡산에서 6·25동란 당시 피난 왔다. 맨손으로 피난 와서 정착한 곳이 인천이며 그래서 인천을 이날 이때까지 벗어난 적이 없다. 학벌도 없고친척도 있을 리 만무하며, 재산도 없는 맨몸으로 식솔을 먹여 살리기 위해 육탄으로 생존경쟁에 뛰어들은 것이다. 이런 고난과 시련 속에서 도무지 있을 것 같지 않은 회한한 노래를 가끔 부르시곤 했다. 약주가 거나하시면 온 집안 식구가 함께 자는 단칸방에서 애들을 모두 깨워 앉혀 놓고는 예의 그 희한한 노래 고향이 따로 있나 정들면 고향이지 봉숭아도 심어 보세 백일홍도 심어보세

약주가 취하신 데다 음치에 가까운 솜씨 때문에 음정과 리듬은 엉망이지만 발음은 똑똑하셔서 지금도 그 노래 가사가 그대로 기억되고 있다. 나는 이 노래 덕분인지는 몰라도 황해도 곡산은 아버지의 고향이고 조상의 뿌리가 있는 곳이지만 나의 고향은 아니라는 생각을 빨리 가졌다. 정작 이 노래를 부르신 아버님은 아직 고향을 잊지 못하고 계신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아버님 인생에 중요한 추억이 모두 담긴 고향인데 어쩌면 아버님이 이런 회한한 노래를 부른 것은 사무치는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고 잠재우려는 고통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소중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꿈이며 보석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값진 추억이며 내가 생존해 있는 존재의 뿌리인 것이다. 반대로 사랑할 고향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삶이 황량하며 그의 가슴에 위로의 바람도 동심의 꽃향기도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당신이 인천에 살며 따로 가슴에 고향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 고향을 버 리기보다는 소중하게 잘 직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것은 어느 누구라도 당신으로부터 빼앗아 갈 권리가 없다. 그 대신 나는 당신에게 당신의 자라나는 자식에게서 자식의 고향을 빼앗지는 말라는 간곡한 충고를 하고 싶다. 내 고향이 충청도 어디라고 해서, 내 고향이 전라도 어디라고해서 자식에게 그 고향을 강요할 권리가 당신에 게는 없다. 만약 당신의 고향을 아이의 고향이라고 주입시켜 놓는다면 당신의 아이는 현실적으로 체험되지도 않는 상상의 고향을 갖게 되며 결국 당신의 아이는 고향이 없는 미아가 되고 말 것이다. 그 아이가 인천이 고향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 때 그 아이에게서 고향은 텅 빈 공허만 남을 것이다. 죽어서 돌아 갈 곳이 없고 살아서 황폐한 삶을 살아야 하는 불행을 당신이 주업시켜 준 것이 되고 만다.

당신이 진짜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당신의 고향과 아이의 고향을 구분지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의 고향은 아이의 고향 앞에 놓인 뿌리 구실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당신의 고향을 송두리째 아이의 고향으로 심어주려 한다면, 그 아이 하나의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천시 전체의 크나큰 불행이 된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당신처럼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과연 전 국토 중에서 사랑 받는 땅이 얼마나 되겠는가? 내가 발붙인 곳은 내 삶의 땅이 아니요 멀리 자주 갈수도 없는 마음속의 땅만 사랑한다면 당신이 딛고 있는 땅의 불행을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이곳은 내 고향이 아니므로 내 알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들로만 가득 찬 인천시라면 누가 풀포기 하나에라도 애정을 쏟을 것인가? 애정을 못 받는 도시, 바로 인천이 그런 약점과 불행을 안은 도시로 전락한다면 당신의 그런 사고방식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내가 밟고 있는 땅, 내 자식이 자라고 성공해서 터전을 닦을 땅, 이 땅을 내 자식의 고향으로 가꾸라고 충고한다고 해서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불쌍한 사람일 뿐이다. 누가 당신을 사랑하는 고향으로부터 떠나게 해서 마음에도 없는 땅에다 처박아 놓았는가? 그 불행을 애매하게 인천 땅에다 들씌우고 박대해서야 되겠는가? 당신이 살고 있는 땅을 자식을 위해서라도 애정을 갖고 돌 볼 때 그리고 자식에게 여기야말로 너에게는 고향이다라고 물려줄 때 자식도 온전한 고향을 갖게 되고 당신도 당신의 고향을 곱게 간직할 수 있는 일이다.

인천에는 많은 향우회가 있다. 각지에서 몰려들어 만든 도시이니 당연한 일이다. 또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친목의 취지를 벗어나서 인천 안에 또 다른 지방색을 입히려 든다면, 인천을 당신네가 떠나온 전근대적인 편협한 도시처럼 전락시키는 일밖에 안될 것이다. 향우회란 고향사람들끼리 인천에 살면서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인천 발전에 함께 기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다른 지방의 향우회도 같이 안정하면서 서로 격려하며 서로 버티어 주어서 인천의 훌륭한 서까래 구실을 해야 한다. 다른 도시와는 달리 인천은 당신과 같은 분들이 여러 지방에서 모여들어 건설한 공존 화합의 도시이며 우리나라 도시 중에서 가장 선진적인 사고방식을 획득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인천을 당신네 지방색에 어울리는 집으로 만들려고 해서도 안 되고 인천의 서까래를 빼어내다 당신네 고향의 서까래로 써서도 안 된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인천에 뿌리박고 살아온 본토백이 인천사람을 귀히 존중활 줄도 알아야 하고 그들이 보존해 준 땅과 유산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서 적어도 당신 자식의 고향으로 손색이 없도록 가꾸어야 한다. 이것이 짠물의 계산법이며 철학이다. 이런 계산을 터득할 때 당신은 사랑을 나누는 기쁨과 함께 이 땅이 당신에게 주는 애정을 깨닫게 될 것이고 당신이 이 땅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환경경영신문,丁 承烈 시인)